할머니의 요리책
최윤건.박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유난히도 따뜻한 마음들이 전해지는 레시피북이었다.

손녀를 아끼는 할머니의 마음,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손녀의 마음.

두껍지도 않고 대부분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 장 한 장 마음으로 아껴 읽게 되는 책이었다.

 

 

할머니의 기록은 때때로 무슨 말인지 알아 보기도 힘들고, 마치 그 옛날 밥아저씨의 그림 그리기 강의처럼 설렁 설렁 '이거 넣고 저거 넣고 하면 되지~' 하는 식이지만 삐뚤빼뚤한 할머니의 글자체를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울컥하는 마음이 들며 코끝이 찡해진다.

 

할머니는 하나의 요리 방법을 적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을 들이셨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쓰면서, 쓴 것을 읽고 다시 읽어 가며 적었다. 그러다가 깜빡 졸기도 하셨다. 졸다가 깨기를 반복하면서 마저 적으셨다. 하나의 요리 방법을 적는데 어떨 때는 한 시간이 넘기도, 두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간혹 레시피뿐만 아니라 그날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기록한다든지

'~하면 되지~' 하고 손녀한테 말을 건네듯 적힌 글귀들에서 따뜻함이 모락모락 풍긴다.

 

 

할머니의 설렁설렁 레시피는 손녀의 그림으로 재탄생한다.

손녀의 레시피는 아주 직관적이라서 그림만 잘 살펴보아도 요리를 해나가는 과정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귀여운 손녀의 그림체를 보는 것 또한 이 책의 묘미다.

 

 

 

할머니는 몇몇 레시피의 말미에다 시간들을 기록해 놓으셨다.

2014년의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까지. 왜 그렇게 세세하게 시간을 기록해두셨을까?

손녀에게 메모를 남기는 지금 이 순간을 하나하나 붙잡아 두시고 싶으셨던 걸까?

말미에 기록된 특정 시간을 생각하다 보면 어쩐지 할머니가 더 그리워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만 같다.

 

 

"할머니, 된장찌개 어떻게 만들어?"라는 질문에 "쉬워. 된장 넣고 두부 넣고 보골보골 끓이면 되지."라고 할머니는 참 쉽게 대답하셨다. 우리 동네는 오후 4시쯤 '댕~댕~.'하고 뜨뜻한 두부가 실린 트럭이 왔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할머니가 5층에서 내려가는 사이에 두부 아저씨가 그냥 떠날까 봐 나는 책상 위로 올라가 창문을 열고 "두부 아저씨 기다려 주세요!"라고 소리치고는 했다.

 

 

나는 우리 할머니의 요리나 음식에 관해서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할머니는 집안 온갖 구석의 일거리를 찾아내어 없는 일도 만들어 하시는 분이었지만 부엌살림은 거의 엄마의 손에 맡기셨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가나다라를 보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나는 할머니께 가나다를 배웠는데, 가나다라를 읊을 때 할머니 특유의 음률이 있었다.

그래서 가나다라를 보면 자연스레 할머니의 목소리, 그 음률을 떠올리게 된다.

 

작가 박린에게는 할머니께서 해주셨던 맛난 음식들이 나의 가나다라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된장찌개를 먹다가도, 생선구이를 먹다가도, 문득문득.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 나리라.

그 마음을 엮어 책으로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짙은 그리움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 순간.

이 레시피북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사랑스러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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