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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는 건 나야
조야 피르자드 지음, 김현수 옮김 / 로만 / 2021년 1월
평점 :
절판

불을 끄는 건 나야 | 로만
글. 조야 피르자드
480페이지가 넘는 책을 덮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주인공 클래리스의 일상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지만
클래리스 그녀는 이제 더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님을 알기에..
저자는 이란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으로 이란에서는 입지를 굳힌 유명한 소설가이다.
사실 이란도 아르메니아인도 생소해서 지식인에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했다.
소설의 배경도 1979년에 일어난 이란 혁명이 전 상황들이고,
책에 가끔 등장하는 기념일, 지역이름을 비롯해 생경한 단어들이 많아
따로 수록된 용어설명과 단어설명들을 도움받아 공부하며 읽어내려갔다.
이란에 대한 지식이 1도 없었는데 책 한권을 읽으면서
아바단에 사는 클래리스 삶뿐만 아니라 이란의 역사까지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물론 이런 생경한 단어들은 소설을 읽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었고,
외국소설이 그러하듯 살짝 이질감이 드는 정도였다.
첫장을 펼치자마자 벌어지는 정신없는 상황.
여느 부모가 그러하듯 하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하는 상황은 참 난장판이다.ㅋㅋ
클래리스의 아이 셋과 친구 한명을 포함해 넷이 한꺼번에 들이닥쳤으니 그럴법도 하지만..
쌍둥이 딸 아이들이 친구라고 데리고 온 아이는 쌍둥이들보다 3살 많은 에밀리.
최근 G-4호에 이사온 이웃인 에밀의 딸이다.
그녀의 등장으로 클래리스와 G-4호 새로운 이웃의 연결고리가 이루어진다.
그 이웃이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자신을 마주보게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집에 놀러온 에밀리를 데리러 온 에밀의 어머니와의 만남으로 교류가 시작되었다.
가부장적인 남편과 정신없는 세명의 아이들,
매일 찾아와 살림을 잘하라고 잔소리 하는 어머니,
은근히 클래리스를 깔보고 생각없는 말을 내뱉는 여동생 앨리스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클래리스. 그녀는 이들의 요구를 거절없이 들어준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누구도 들어주지 않고, 그녀 역시 특별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부당하더라도 속으로 참고 만다. 그리고 아무도 없을때 혼잣말로 자기자신과 싸운다.
가족들만으로도 힘든데 이사온 새로운 이웃인 에밀의 엄마, 시모니안 부인은 헉! 최강이다.
감정기복이 심하고, 도대체가 종잡을수 없고, 무례하기는 이루 말할수가 없다.
물론, 책을 읽을수록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게 되지만..
책을 중반까지 읽는동안 아~~~ 고구마 100개 먹은듯한 갑갑함이 밀려와서 힘들었다.
어쩜 이렇게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넘치고, 무례하고 일방적일까 싶어 화도 났다.
늘 누군가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며 자신을 잃어가던 클래리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이웃인 에밀이 나타난다.
자신의 남편과 같은 석유회사에 다니는 그는 문학과 정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그녀와 문학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가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별일이 있었던것도 아니다. 그저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몇번했고
그녀의 일을 도와줬고, 그녀와 이야기를 몇번 나눴을뿐이다.
단지 이뿐인데 클래리스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게 그에 관한 것인지 그녀 자신에 관한것인지 감이 잡히진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시모니안 부인이 털어놓은 삶의 지친 그녀자신의 이야기가
클래리스 자신과 닮아있어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나 자신을 알 만큼 나이를 먹자마자 나는 늘 참으며 살았어요.
처음에는 아버지를 위해 참았고, 그다음에는 남편을 위해 참았고,
이제는 아들과 손녀를 위해 참고 살아요.
나를 위해서 뭘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이제서야 그녀는 자신만 헌신하는 삶이 부당하다는것을 알게된다.
매년 참석했던 4월24일 기념일도
여성인권과 자유에 관한 강연도 이제 다르게 느껴졌다.
그럴즈음 에밀과 맹랑한 비올레타의 결혼소식이 전해지고
자신의 유일한 편을 잃은것 같은 클래리스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고, 드디어 그녀는 모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조금씩 곁에있던 사람들이 달라진다.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던 남편이 그녀를 돌아보기 시작했고
신경질적이고 다혈질이었던 여동생 앨리스가 믿기지않게 부드러워졌다.
(물론 여동생에겐 오랫만에 사랑이 찾아왔기 때문일테지만..)
에밀을 통해 알게된 자신의 진짜 모습들.
자신이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걸 잘하는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되고
시모니안 부인과 여권운동가인 누롤라히씨를 통해
자신이 어떤 목소리를 내야하는지를 깨닫게 됐다.
이제 G-4호의 이웃은 더이상 없지만
그들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고
진짜 자신과 마주할수 있었다. 이제야 클래리스는 성장하게 된것이다.

책장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클래리스는 분명 전과 같은듯 다른 삶을 살게 될것이고,
더이상 공허함을 느끼지도 혼잣말을 하지도 않게 될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제목만큼은 완전히 이해가 되지않는다.
글 속에 불을 끄는 것이 언급된건 내가 알기론 딱 한번 뿐이었는데
그걸 어떤 입장으로 이해해야될지 알수가 없다.
불을 끄는 게 나여서 행복한건지
불을 끄는 게 나여서 불행한건지 말이다...
오롯이 독자의 몫이라면 불을 끄는게 나여서 행복하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