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모자를 쓴 아이들
김은상 지음 / 멘토프레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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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모자를 쓴 아이들 / 멘토프레스

글. 김은상

 

 

 

 

 

 

'남편을 살해했습니다'라는 힘든 고백으로 책은 시작한다.

강렬한 시작만으로도 충분히 한 여자의 세월이 녹록치 않았음을,

그동안 너무도 힘들고, 아프고, 지쳤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편을 여러번 몇십년에 걸쳐 마음속으로 살해하고 또 살해해야 견딜 수 있었던 여자.

온갖 구박과 폭력과 폭언을 견디며 그래도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식' 때문이었다. 여자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엄마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삶.

보는 내내 우리내 할머니, 어머니들도 견디고 견뎠을 세월이

마음아파서 울컥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이 글은 김은상 작가의 자전소설로 자신의 불우했던 가족사를 소설로 써내려갔다.

하지만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 아니라

헌신을 강요했던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자식을 위해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던 어머니다.

 

이야기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독백으로, 한편 한편 교차로 답변하듯 완성되어진다.

그 시대의 여자들은 시집을 간 순간부터 처절하게 지옥을 경험했던것같다.

몰락한 양반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여자와 북어는 두드려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의 아버지와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되고..

벗어나지 못할것 같은 가난과 갖은 폭행을 견디며 지옥속에 내던져졌다.

그래도 오로지 견딜 힘을 주는 건. 자식들.

아홉을 낳았고, 둘은 가슴에 묻어야했다.

 

어머니의 독백에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일찍 철든 자식들의 따뜻함이 깃들어있다.

자식들이 한명 한명 소개 되어지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이런 자식들을 뒀으니 견뎌야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챕터 한챕터 기구한 사연이 소개 되어질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어려서 몇번이나 책장을 덮고 숨을 몰아쉬어야했다.

 

어머니는 원치 않는 결혼으로 자신을 죽이고 자식들을 키워냈다.

지지리 궁상맞은 가난속에서도, 서러운 구박속에서도, 무서운 폭력속에서도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그 남자와 살았고,

그 남자가 쓰러지고 나서는 폭력 대신에 고난이 얹혀져 28년을 지냈다.

그것 역시 자신이 아니면 자식들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갈 짐이었기에

자식들을 위해 견뎌냈다.

 

아버지는 그 시대의 온갖 편협한 가부장의 특징들을 한 데 모아둔 남자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가정은 뒷전인..

능력없지만 절대 큰소리는 빠지지 않는,

씨를 뿌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존경받는다 생각하는,

북어와 여자는 두드려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그런 남자다.

하지만 28년의 병상으로 이제는 가족과 아내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글을 다 읽고 책을 덮을 즈음엔 그 남자인 아버지가 나쁜것이 아니라

아마도 그 시대의 그런 사회분위기와 가난이 나쁜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과 고난 속에서 포기하는게 많아진 일곱 자식들..

하지만 누구 하나 부모를 원망하는 이도, 형제 자매를 원망하는 이도 없다.

너무도 따뜻한 바람막이가 되어주신, 헌신하며 견뎌내신 어머니 덕분이었을거다.

가족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더 단단하게 똘똘 뭉친다.

그 고난과 역경의 중앙에 서서 더 많은 고난을 얹혀준 

아버지마저 용서하고 따뜻하게 품는다.


 

'빨강 모자를 쓴 아이' 의 사연을 들었을땐 눈물이 펑펑 흘렀다.

어머니의 독백을 듣고 있자면 뭔가 숨겨놓고

속시원히 꺼내놓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듯 했는데..

바로 빨강 모자를 씌운 자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날도 어머니는 가난과 폭력으로 얼룩진 하루를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사과가 먹고싶다고 떼를 쓴 아이를 쓰러질때까지 때렸다.ㅜㅜ

처음으로 아이를 때리고 어머니는 너무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닮은 빨강 모자를 선물해서 씌워준다.

어머니께 맞은건 말갛게 잊고 아이는 모자를 받은게 좋아서 행복해했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자신이 보는 눈 앞에서 교통사고로 죽고만다.

그 비극은 어머니가 스스로에게 내린 평생을 짊어져야 할 형벌이었다.


'참, 오래 살았습니다.

평안을 느끼기까지 80년을 뒤척였습니다.

늘 함께, 늘 혼자서 걸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는,

혹은 내일 아침 직장을 향해 출입문을 여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손을 흔든 후에는

나의 시간 역시 완벽하게 멈추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자신들의 생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살아야 할 날보다 산 날이 더 많으니 언제 어떻게 가족들과 헤어지게 되더라도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를 매순간 하고 있다.

슬프지 않게 먼저 간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이 글을 읽고 있자면

유교와 가부장제도, 농경사회, 전통에 의해서 여성에게 헌신을 강요했던 과거에 비해

여성의 자리가, 여성의 권위가 크게 나아진것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여전히 여성차별은 존재하고 있고, 현재 다른 방식으로 사회문제로도 도래되고있다.

어두운 곳에서는 아직도 힘없는 여자들이, 어머니들이

폭행과 폭언, 보이지 않는 폭력에 방치되어있고

어쩌면 어딘가에 여전히사랑만 받기에도 부족한 

빨강 모자를 쓰고 있는 아이들이

존재하고 있을거라고 얘기하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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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18-10-20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평안하신 주말과 휴일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