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사계절 1318 문고 8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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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얼어붙은 것들이 녹는 계절이고 마른것들에 물이 오르는 계절이다. 만물이 다시한번 꿈틀거리는 시기인데 사람인들 예외일 수는 없다. 어디선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에는 간지러운 기운을 물씬 머금고 있다. 열세살 섬소년 훈필이가 견뎌내기에 그 봄바람은 너무많은 설레임을 안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섬소년 훈필. 그는 동네의 모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가난이라는 힘든 운명에 길들여 살아야 했다. 반복되는 학교 생활은 배움의 터전이 아닌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의 하나에 불과했다.학교는 희망을 심어주기 보다는 정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반독되는 선생님의 주입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루하루가  견뎌내는 것이 고통스러웠던 그 시절. 비록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 어른과 똑같이 일을 해야 하는 그 들이었지만 , 그들에게서 또래들이 품고있는 희망과 설레임까지 빼앗을 수는 없었다. 훈필은 열세살 소년이었다.

 

가난이라는 이름은 사방이 바다로 막힌 섬마을 처럼 사방을 조여오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졸업 하고 중학교,고등학교를 계속해서 다닐수 있을지에 대한 보장도 없었다. 가난을 끊을 길은 오로지 농업고등학교를 나오는 것이 최선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훈필은 오로지 농업고등학교를 갈 생각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건 희망이 아닌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런 훈필에게 염소는 자신의 미래이자 현실을 살아가는 이유였다. 염소 한마리를 부지런히 키워서 두마리가 되고,네마리가 되어 어느덧 푸른목장을 만들 꿈에 부푼 훈필. 그의 미래는 목장 이름만큼이나 희망적이었다.     

 

열 세살 소년에게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생긴다. 누구나 그렇듯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사춘기라 불리우는 그 시절에 겪어야 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아주 조용히 찾아온다. 세상의 모든 근심거리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고, 주위의 모든 것들이 불쌍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주위의 또래들은 한 없이 어려보이기만 한다. 물론 주위의 모든 어른들은 내 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훈필에게 가장 큰 고통은 사랑이었다. 오랜시간 짝사랑 해오던 은주. 새롭게 나타난 서울 아이.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어른들의 삼각관계와는 또 다른 심각함이 존재한다. 자신의 실리를 위한 사랑이 아닌, 그 순간 감정에 충실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오랜시간 공들인 자신에게 무심한 은주에 대한 서운함. 서울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에 쌓여있어 모든것이 이쁘게만 보이던 서울 소녀. 하지만, 그녀에게도 남 모를 아픔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더욱더 애틋함이 커져만 가는 훈필. 물론 은주와 서울소녀도 훈필에 대한 애틋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단지, 그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렀기 때문에 그 들의 관계는 오래된 실타래 처럼 얽혀가기만 했다.   13살 그들의 풋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춘기 성장통의 고민에 빠져있던 훈필에게 염소의 죽음은 미래의 단절이었다. 자신의 모든 희망이었던 염소. 애처롭게 떠나가는 염소를 그저 바라볼수밖에 없던 훈필. 그 순간 훈필은 자신과 염소사이에 이어져 있던 희망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느낀다.  사랑도 떠나고 미래에 대한 유일한 희망도 없어져 버린 훈필. 그에게 남은 것은 슬픈 현실을 떠나는 일이었다. 주위의 형,누나들이 걸었던 그 길. 서울이라는 좀 더 커다란 도시의 유혹. 불을 찾아 뛰어드는 부나방과 같이 거대한 힘에 이끌려 훈필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게 된다. 멋진 성공후의 금의환향을 다짐하며 길을 떠난 훈필.

 

청소년기의 방황. 그에 따른 가출. 그 시절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현실의 녹녹치 않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의 짧은 방황은 앞으로의 삶에 커다란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울타리에만 갖혀 있던 훈필에게 바깥 세상은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다. 그저 13년을 살아온 날들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는 더이상 좌절하지도 않고 더 이상 슬퍼하지도 않으며 더 이상 고민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에게 있었던 짧은 방황은 또 다른 염소를 키울 수 있고, 또 다른 사랑을 맞이할 준비 과정이었다. 그 에게 봄바람은 때론 옷깃을 여미게도 하고, 때론 웃옷을 벗어버리게도 하는 심술쟁이 였다. 하지만, 그래도 봄은 찾아오고 꽃으 피고 새는 울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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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 언니 - 반양장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 창비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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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참 힘들게 썼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읽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마음이 참 진솔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책에 나오는 몽실이를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당연히 저자가 만들어낸 인물이니 저자와 많이 닮았겠지요. 그래서 ,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꾸밈이 없습니다. 뛰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그 모습이 볼 수록 아름답습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글들이 마구 춤을 추는 듯 합니다. 아름답다, 예쁘다와 같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몽실이는 온갖 고생을 다하고 다리마저 저는 보잘 것 없는 인물이지만, 그 모습을 상상해 보면 한 없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제 누이 같고, 애인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정말 미련하다고 손가락 질 할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요즘의 기준으로 판단해 보면 미련하기만 하고 현실감이라고는 도통 없는 그런 사람일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각박한 현실을 버티기 힘들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몽실언니가 사랑스러운 이유입니다.

 

일제 강압기가 끝나고 한국전쟁이 터집니다. 모두가 힘든 시기에 몽실이가 있습니다. 자기 앞가림조차 하기 힘든 시기입니다. 더군다나 일곱 살 난 어린 소녀에게는 언니라는 이름조차 버겁기만 합니다. 자기 입에 들어갈 곡기조차 단속하기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 원인은 누구 때문이었을까요? 아마도 어떤 나뿐 사람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몽실이의 말대로 그게 국군이든 인민군이든 상관은 없습니다. 그저 나뿐 어른들이 만들어낸 정말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으니까요. 국군중에도 나뿐 사람이 있고, 인민군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책에서 몽실이에게 사상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누구를 위한다는 거. 진정으로 인민을 위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갓 태어난 검둥이 아기가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지만, 몽실이는 그 아이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잘못이 뭐가 있겠습니까? 굳이 따지자면 난리통에 부모 잘못 만난 죄 밖에는 없겠지요. 그 아이를 버린 부모도 욕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부모가 갓 태어난 아이를 버렸을까요? 그 누군가를 원망합니다. 하지만, 하염없이 그 누군가를 탓하지 않습니다. 몽실이는 절대 울지 않겠다고 약속한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합니다. 동생들과 헤어졌을 때에도, 길 거리에서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 했을 때에도 몽실이는 울지 않습니다. 서양에는 캔디가 있습니다. 외로워도 슬프지 않는 들장미 소녀 캔디가 있습니다.안소니와 같은 왕자같은 남자 친구가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몽실이는 그 어느누구보다 강인한 생활력을 보여 줍니다. 두 명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 일곱살 소녀가 겪기에는 참 버거운 현실 이었습니다. 젖 먹이 아이를 업은 채 동냥을 해야 했던 소녀. 의붓 아비의 폭행때문에 평생 절름발이로 살아가야하는 소녀. 태극기를 걸어야 하는지, 인공기를 걸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 철부지 소녀가  겪었을 고통이 상상이 돼지 않습니다. 그저 엄마의 품에서 어리광 이라도 한 번 부려봤으면 좋았을것 같습니다. 잘못했다고 크게 야단치는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몽실이에게는 엄마도 아버지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몽실이가 기대고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부모라는 울타리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몽실이를 힘들게 하는 사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몽실이는 단 한번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런 몽실이가 참으로 바보 같아 보입니다. 슬픔은 슬픔을 몰고 옵니다. 아픔은 더 큰 고통을 수반합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행은 더 이상 몽실이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런 상황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심지어는 몽실이에게 그렇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작가가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어 갑니다. 몽실이의 고통은 바로 우리들의 아픔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가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인도 모를 고통에 아파해야 하는 몽실이 처럼 우리의 부모도 똑 같은 아픔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습니다. 책 속의 몽실이와 같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잘 견디고 있습니다.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이젠 우리가 살아가야 할 때 입니다. 몽실언니가 업어서 키운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시기입니다.  몽실언니를 아프고 힘들게 했던 그 누군가들은 지금도 잘 살고 있겠지요. 아마도 그럴것 같습니다. 강추위가 몰아치는 지금에도, 몹쓸 병으로 생명과 같은 소,돼지가 죽어가는 지금에도 누군가들은 잘 살고 있을 겁니다. 자신의 주린 배는 채우지 못할 망정, 생쌀을 씹어 암죽을 끓여주던 몽실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항상 배부르고 등따시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몽실언니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젠 더 이상 잊지 않는 것 만으로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을 다 했다고 말하지는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영원히 우리 곁에 살아있는 몽실언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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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이민규 지음 / 더난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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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접하고 잠시 생각을 해본다. 과연 끌리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타인에게 끌린다는 것은 나 보다는 혹은 주위의 대다수의 사람 보다는 뭔가가 특이 하다는 것일 것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이켜 생각해 본다. 내가 평상시에 남다르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과연 나와 무엇이 다른가?  나와 다른 그 1%가 무엇인가? 책을 접하면서 시종일관 그 생각을 접목해 보니 그 또한 유쾌한 작업이었다.




1.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끌림이 있다.

- 아마도 너무나도 평범한 진리일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혹은 시장에서 조그마한 상품을 하나 선택하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끌림이 있다.   거기에서의 끌림은 애착이고, 애정이다.   한 번 선택해서 그 것이 마음에 들면 그 것이외에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인간관계 또한 가만히 생각해 보면 , 내가 좋아하는 사람 ( 혹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을   만나게 된다.   물론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어찌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수잇겠는가? 하지만 내가 싫어하면서도 어쩔수 없이 만나는 관계는 그야 말로 형식적인, 사회생활이라는  연극무대에서의 약속된 만남일 수밖에 없다.   그 연극이 끝나고 나면, 바로 남남이 되어 버리는 일종의 계약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선택에서 끌림을 유도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8가지를 제시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첫인상’에 대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첫인상 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물론 그렇기에 우리는 첫인상 때문에 많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너무나도 좋은 첫인상 때문에 그 사람의 본질을 놓쳐 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서는 중요한 첫인상 만큼이나, 더욱 더 중요한 마지막 인상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을 하고 있다.  시작이 중요한 만큼 그 끝 또한 중요한 것은 자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첫인상은 외형적인 것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신은 너의 내면을 보지만, 사람들은 너의 겉모습을 먼저 본다” 사람들을 신으로 착각하지 말자.    내면도 중요하지만 외모도 중요하다.   외모는 내면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본문 42 쪽 )

 

흔히 외모에(천성적으로 타고난 신체적 조건이나, 혹은 옷차림) 별로 자신이 없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사람의 외모가 뭐 그리 중요한가 ?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됨됨이고, 내면이 얼마나 실속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물로 옳은 표현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을 처음 대했을때 외모를 더욱더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나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중매체에 너무나도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그러기에, 남.여 사람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기준 또한 대중매체에 자주 노출되는 연예인의 그것들과 자주 비교하게 된다. 우리는 연예인이 아니다.  연예인들은 그 들의 분야에서 1%라도 더 끌리기 위해 외모에 대해 특별히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해서 우리의 외모를 판단하는 것은, 조기축구회원에게 호나우두와 같은 화려한 플레이를 바라는것과 다르지 않을 듯 싶다. 하지만, 조기 축구에서도 반드시 부동의 스트라이커는 존재하는 법이다. 첫인상이 중요한 만큼 그 것을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이 책에서는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처음 에펠탑 건설에대해 파리의 미관을 헤친다고 그렇게 반대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난 지금은 파리의 가장 위대한 명물로 자리잡은 에펠탑을 자신들의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 에펠탑이 가져다 주는 관광수입에 대한 메리트도 있겠지만, 눈만 뜨면 보이는 에펠탑에 어느덧 그들도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것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단지 남,여 관의 애정관계를 놓고만 하는 말은 아닐것이다.

단지 자신이 필요할 때에만 친절하고 그 사람을 찾는다면, 더 이상의 발전적인 인간관계를 바라기는 힘들것이다. 말 그대로 평상시에 잘 해야 한다.




2.끌림을 유지하는 1%의 차이




-좋은 첫인상으로 끌림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 다음은 그 끌림을 유지하는 것이다.

  뭔가 남과 틀리게 끌리는 것이 있어서, 그 사람과 만남을 가지게 되었는데, 만나다 보니

  별반 다를것이 없더라.   심지어는 좋은 첫인상과는 반대로 나쁜것들이 더 많이 보이더라.

  하면 이건 말 그대로 “이건 아니잖아! , 이건 아니잖아!”가 되고 마는 것이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 자신에 대해 애정을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인 것 같지만, 간단하고. 기본적인것이기에   가장 지키기 힘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비하 혹은 지나친 겸손 이런것들이 자기 자신에게 가져다 주는 피해는 상상 이외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친 자기도취는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킬수도 있다.

 

 사람들이 스티븐 호킹 박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금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걷지도 말하지도 쓰지도 못하는 루게릭이라는 병에 시달리면서도 자기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 101 쪽)




대인 관계에서 중요한 또 한가지는 타인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나와 같지 않다는 것은 나쁜것이라는 생각. 한가지 사실에 대해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각자의 경험과 욕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자기와 같지 않다는 이유로 막연하게 상대방을 배척하는 경우가 있다. 거기의 밑바탕에는 자기 자신이 모두 옳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의견에도 경청할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입이 아니라 귀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움직이려면 그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의 마음을 열려면 이쪽에서 먼저 귀를 열어야 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입이 아니라  귀에서 나온다.(본문 123쪽)




이 책에서 재밌는 표현이 한 가지 나온다. 바로 ‘뒷담화’라는 말이다.우리가 흔히 ‘뒷다마’ 혹은 ‘호박씨 깐다’말로 쓰여지는 뒤에서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뒷담화’가 좋지 않다는 것은 다들 알것이다. 또한 ‘뒷담화’만큼 술자리에서 좋은 안주거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열심히 떠든 뒷담화가 언젠가는 눈덩어리처럼 커져서 내 눈앞으로 굴러온다는 사실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3. 끌리는 사람은 이렇게 관계를 유지한다.




-마지막으로 관계의 유지를 위해 아래와 같은 비법을 제시하고 있다. 상대방의 콤플렉스를 건드리지 말아라. 뜻밖의 작은 배려가 친밀감을 더 해준다.사과는 먼저, 변명은 나중에 하라. 당연한 일에도 감사할 일을 찾아보라. 퍼주고 망한 장사는 없다.끝은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다.



그렇다. 끝은 절대로 끝이 아니다. 정말로 더 큰 새로운 일의 시작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끝 이라는 단어에서, 하나의 결말을 보려하고 , 그 결말에 의해 그 일을 종결하려고 한다. 결과치만을 너무 중시하기 때문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때의 마음이 어찌 같을수 있겠는가?하지만, 우리는 평생을 화장실에 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들어갈 때와 나올때의 마음의 차이를 최대한 좁히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화장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다른 사람들도 많이 언급했듯이 이 책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저자의 에필로그에서이다.

바로 이말, ‘아는 것’이 ‘힘’은 아니다.그동안 진리라고 생각했던 그 말.‘아는 것이 힘이다’

물론 잘못된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실천이 뒤 따르지 않는 단순한 지식은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이다.


아는 것은 행동으로 실천했을 때만 힘이된다.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이다. 실천이란 현재의 이곳에서 원하는 그곳으로 건너게 해주는 교량이다. (본문 259쪽)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 만큼 나는 아는게 많아 졌다.그렇다고 해서 힘이 세진 것은 아닐것이다. 내 두뇌는 수많은 지식이라는 고 단백질로 점점 채워져 가고있다. 하지만 적절한 웨이트 트레이닝이 뒤 따르지 않는 다면, 단순한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것이 지방과 뭐가 다를 것인가? 건강한 삶의 S라인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실천이라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 듯 싶다. 우리 다같이 멋들어진 S라인을 한 번 만들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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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용 2015-11-1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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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과 책의 소개에 실린 글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5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은 정말 이 책을 읽는 대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다. 책이 무겁고 두껍다는 선입견은 그 책을 시작하는데 아주 커다란 제약이 되기는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줄어드는 분량에 점점 안달이 날 지경이 된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성장소설의 백미라고 불리우는 연을 쫓는 아이.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들었지만 이제서야 읽었다. 많이 늦었지만,정말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읽은 것이. 더불어 할레드 호세이니의 또다른 장편 '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반드시 읽으리라 다짐을 한다. 그렇다면, 전작이 되는거겠지? ^^

 

작가의 이름도 낯설고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나라도 생소하다. 끊임없이 전해지는 전쟁의 소식만이 아프카니스탄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종교와 인종차별문제.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전세계의 가장 큰 아픔들이 고름이 되어 있는 곳.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국가를 사랑할 시간조차도 허락받지 못하고 있었다. 소련의 침공. 그 후 벌어지는 인종차별의 아픔들. 911테러이후 무자비하게 이루어진 미국의 침략. 그 들은 세계사의 가장큰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프카니스탄에도 평화로운 시기가 있었다. 소련의 침공이 있기 전. 모든 것이 평화롭던 그 시기에 두 아이가 태어났다. 모든 것을 가진자 아미르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 하산. 그들의 운명은 태어날 때 부터 정해져 있었다.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고질적인 인종차별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을 날리는 아이와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연을 쫓는 아이로 생을 살아가게 된다. 한살 터울인 아미르와 하산. 어린시절 엄마의 부재로 인해 두 아이는 한 유모의 젖을 먹고 마치 형제처럼 자라게 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이름난 부자였던 아버지 바바로 인해 부족함이 없던 아미르. 그에게 하산은 친구이자 동생이자 동지였다. 하산 또한 아미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충실한 하인이자 동생이자 친구였다. 하지만, 그 들 사이에는 아주 고약한 운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연을 날린다는 것과 연을 쫓는 다는 것은 결코 같은 행위가 아니다. 두 사람에게 주워진 똑 같은 연이었지만 그 속에는 신분과 운명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무서운 존재가 자리잡고 있었다. 아미르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하산 역시 그 운명에 순응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 그렇게 하겠다"하산의 약속은 마치 길고 질긴 연줄과 같이 평생토록 아미르의 발목을 잡게 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연날리기는 겨울철 최고의 놀이이자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래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부각 할 수 있는 최고의 등용문이다. 모든것이 남자답지 못하지만 연날리기 만큼은 자신있는 아미르. 아미르를 위해서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연을 잘 쫓을 수 있는 하산. 두 사람의 조합은 아프카니스탄 최고의 파트너였다. 어느 해 겨울. 마침내 아미르는 마지막 경쟁상대의 연마저 어디론가 날려버린다. 이제 남은 것은 전리품인 마지막 연을 쫓는 일 뿐. 연을 쫓는 일에는 비범한 재주를 가진 하산은 어느 누구보다 먼저 연을 쫓는데 성공한다. 두 사람은 드디어 연 날리기로 얻을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다. 연과 함께 찾아온 환희는 그 후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아픔으로 바뀌게 된다. 아미르를 위해 연을 쫓던 하산은 평상시 두 사람을 눈에 가시처럼 생각했던 아세프 일당에게 붙잡혀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그 모습을 목격하게 된 아미르는 공포감에 휩싸여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게 되고, 그 사건이후 커다란 죄책감에 시다릴게 된 아미르는 형제와도 같던 하산과의 이별을 선택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가장 훌륭한 연줄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 두 사람은 결코 연을 날리지도 연을 쫓지도 못하게 된다. 

 

아미르에게 하산은 치유하지 못할 불치병이었다. 평생을 마음의 병으로 안고 살아가는 아미르. 연을 날리던 소년에게 찾아온 아픔처럼, 아프카니스탄도 이제는 더 이상 평화로운 땅이 아니었다. 소련의 침공과 계속된 탈레반에 의한 내전으로 죽음과 공포의 땅으로 변하게 된다. 살기위해 고국 아프카니스탄을 떠나 미국으로 가게 된 아미르와 아버지 바바. 아프카니스탄 최고의 부호이자 존경받던 인물 바바는 낯선 땅 미국에서는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자유의 도시 미국에서 아미르는 나름대로의 성공을 하게 된다. 소설가로서의 지명도와 함께 사랑도 찿게 된 아미르. 이젠 더이상 하산에 대한 죄책감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지 않아도 되며,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아미르에게 먼저 찾아온 것은 자유로움이 아닌 과거속에 뭍혔던 진실과  그에대한 속죄의 기회였다. 그건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더이상 하산을 만날수는 없었지만 아미르에게 나타난 것은 하산과 똑같이 생긴 그 의 아들 소랍이었다.  끊어진 연줄의 매듭을 찾아 아미르는 죽음의 땅 아프카니스탄으로 돌아온다. 소랍을 찾기위해.  그에게 자유를 선물하기 위해. 아니였다. 아미르는 지울 수 없는 자신의 과거앞에 당당히 무릎꿇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건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다. 하산 과 아미르 사이에 맺여졌던 질긴 운명은, 그의 아들 소랍에게 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  자신에게 무한한 사랑과 영광을 주었던 하산이었다. 하지만, 영광스러운 줄을 끊어버린 사람은 바로 아미르 자신이었다. 그는 이제 그의 아들 소랍을 통해 어디선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연 줄을 다시 이어주고자 한다.  칼날이 되어 버린 연 줄. 운명보다 질 긴 연 줄에 의해 손바닥이 베어 피가 철철 흐르기도 한다. 때론 도저히 풀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꼬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미르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영혼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소랍의 손을 결코 놓지 않는다. 두 사람은 과연 오래 전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넓은 하늘에 자신들의 연을 날릴 수 있을까 ? 그렇다면 그 순간 연을 날리는 사람은 누구이고, 연을 쫓는 사람은 누가 될 것인가? 

 

두툼한 분량을 정신없이 읽었다. 그리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눈물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아미르,하산,소랍,바바,라힘 칸 ... 이 들이 만들어 간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푸른 하늘 높이 떠 있는 연을 바라보자. 스스로 날고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늘고 긴 실에 매달린 채 바람에 몸을 의지하고 있을 뿐이다. 순간의 실수로 인해 그 줄이 끊어졌다면 주저없이 연을 쫓아가도록 하자.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해 보자.' 내 잘못으로 니가 이렇게 먼 곳 까지 날아왔구나. 미안해!!!' 그리고, 다시 줄을 이어 연을 날리면 된다. 그러지 못하면 평생 그 연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오랜시간 마음 속 깊이 후회를 가득 안고  연을 그리워 할 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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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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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운영을 보았을까? 아마도 보았을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한 자운영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꽃을 보지 않더라도 자운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꽃의 생김새가 꽃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그래서 , 난 자운영이 좋다. 학창시절 이 꽃을 유난히 좋아했던 선배가 있었다. 하지만, 그 선배의 모습과 자운영과는 아무래도 연관이 되지 않았다. 선배의 말에 의하면 질긴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했는데 과연 자운영 그런 꽃인지는 잘 모를일이다. 하지만, 공선옥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자운영은 슬픔을 가득 머금은 꽃이었다. 보라색은 슬픔의 색이다. 이 책에서만은 그렇게 느껴진다.

 

흔히들 공선옥을 모성을 주제로한 작품을 많이 쓰는 작가라고 칭한다. 여성이자 엄마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공선옥 스스로도 세상의 모든 여성 작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를 낳아본 엄마로써 새로운 생명을 잉태해본 사람으로써 살아있는 것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여성작가들의 글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상당히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새로운 생명의 잉태는 여성의 고유권한이자 가장 성스러운 행위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땅히 존경받아야 하고 자부심을 갖아야 한다.

 

소설이 아닌 산문집으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얼마전 영란을 읽었을 때 책의 내용보다 작가의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었다. 어느덧 50이 된 작가는 농촌의 평범한 아낙이었다. 손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군데군데 상처도 많고 굳은살도 잔득 박힌 투박한 손이 연상되었다. 그런 손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잘 연계가 되지 않았다. 당연히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다른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 것이 잘못된 일이겠지만 , 공선옥의 첫 인상 만큼은 내겐 꽤 다르게 느껴졌었다. 작가의 글은 투박하고,거칠고,슬픔을 잔득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나약하지는 않았다. 죽음을 위해 목포를 찾은 여주인공 영란이 슬퍼보이고 불쌍해 보였지만, 한번도 나약해 보이지는 않았던 이유와 같다. 이번 작품에 수록된 40여편의 짧은 글들에서도 그녀는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향인 전남 곡성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모습. 그녀의 유년 시절은 곡성이라는 지역이 말해주는 것 처럼 결코 유복하지 않았다. 엄마와 세명의 자매가 보여주는 일생활은 가난하고 힘들었던 6,70년대 우리 누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모든것이 부족하기만 한 그 시절의 삶에서 작가는 따뜻함과 그리움을 이야기 하고 있다. 땅을 좋아하는 작가. 도시의 생활이 무섭다고 말하는 작가. 사람은 흙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고 말하는 작가에게서 , 흙과 자연은 인간의 고향이라는 평범함 진리에 수긍하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가는 잊혀져 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어린시절 힘들었지만 정겹게 느껴졌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며,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자신과 자신의 딸들에게 아쉬운 마음을 표현한다. 그것은 비단 그 들 가족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작가는 전라도 사투리 중의 하나인 '겁난다'라는 표현을 통해 이야기 한다. 사투리로 '겁난다'는 '많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정말 많은 것이 '겁나는'세상이 되고 말았다. 돈이 많은 것도 겁나는 일이고, 사람이 많은 것도 겁나는 일이고 , 음식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겁나는 일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많이 가진것이 풍요의 상징이 되어버린 시대에 많은 것은 정말 겁나는것이 되어버렸다.

 

글을쓰는 엄마답게 저자는 자식들에 대한 끔찍한 애정을 표현한다. 자신의 평범하지 못한 삶에 대해 자식들에게  속 시원히 이야기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글을 생업으로 삼으며, 새끼들 입에 들어갈 땟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의 삶도 이야기 한다.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하다고 말하는 그 녀.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작가로서, 엄마로서 느끼는 강한 자존심이 저절로 느껴지곤 했다.책장을 덮는 순간 , 이 작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 그녀가 눈물을 흘렸던 곳이 자운영 꽃밭 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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