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사계절 1318 문고 8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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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얼어붙은 것들이 녹는 계절이고 마른것들에 물이 오르는 계절이다. 만물이 다시한번 꿈틀거리는 시기인데 사람인들 예외일 수는 없다. 어디선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에는 간지러운 기운을 물씬 머금고 있다. 열세살 섬소년 훈필이가 견뎌내기에 그 봄바람은 너무많은 설레임을 안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섬소년 훈필. 그는 동네의 모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가난이라는 힘든 운명에 길들여 살아야 했다. 반복되는 학교 생활은 배움의 터전이 아닌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의 하나에 불과했다.학교는 희망을 심어주기 보다는 정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반독되는 선생님의 주입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루하루가  견뎌내는 것이 고통스러웠던 그 시절. 비록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 어른과 똑같이 일을 해야 하는 그 들이었지만 , 그들에게서 또래들이 품고있는 희망과 설레임까지 빼앗을 수는 없었다. 훈필은 열세살 소년이었다.

 

가난이라는 이름은 사방이 바다로 막힌 섬마을 처럼 사방을 조여오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졸업 하고 중학교,고등학교를 계속해서 다닐수 있을지에 대한 보장도 없었다. 가난을 끊을 길은 오로지 농업고등학교를 나오는 것이 최선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훈필은 오로지 농업고등학교를 갈 생각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건 희망이 아닌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런 훈필에게 염소는 자신의 미래이자 현실을 살아가는 이유였다. 염소 한마리를 부지런히 키워서 두마리가 되고,네마리가 되어 어느덧 푸른목장을 만들 꿈에 부푼 훈필. 그의 미래는 목장 이름만큼이나 희망적이었다.     

 

열 세살 소년에게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생긴다. 누구나 그렇듯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사춘기라 불리우는 그 시절에 겪어야 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아주 조용히 찾아온다. 세상의 모든 근심거리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고, 주위의 모든 것들이 불쌍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주위의 또래들은 한 없이 어려보이기만 한다. 물론 주위의 모든 어른들은 내 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훈필에게 가장 큰 고통은 사랑이었다. 오랜시간 짝사랑 해오던 은주. 새롭게 나타난 서울 아이.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어른들의 삼각관계와는 또 다른 심각함이 존재한다. 자신의 실리를 위한 사랑이 아닌, 그 순간 감정에 충실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오랜시간 공들인 자신에게 무심한 은주에 대한 서운함. 서울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에 쌓여있어 모든것이 이쁘게만 보이던 서울 소녀. 하지만, 그녀에게도 남 모를 아픔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더욱더 애틋함이 커져만 가는 훈필. 물론 은주와 서울소녀도 훈필에 대한 애틋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단지, 그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렀기 때문에 그 들의 관계는 오래된 실타래 처럼 얽혀가기만 했다.   13살 그들의 풋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춘기 성장통의 고민에 빠져있던 훈필에게 염소의 죽음은 미래의 단절이었다. 자신의 모든 희망이었던 염소. 애처롭게 떠나가는 염소를 그저 바라볼수밖에 없던 훈필. 그 순간 훈필은 자신과 염소사이에 이어져 있던 희망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느낀다.  사랑도 떠나고 미래에 대한 유일한 희망도 없어져 버린 훈필. 그에게 남은 것은 슬픈 현실을 떠나는 일이었다. 주위의 형,누나들이 걸었던 그 길. 서울이라는 좀 더 커다란 도시의 유혹. 불을 찾아 뛰어드는 부나방과 같이 거대한 힘에 이끌려 훈필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게 된다. 멋진 성공후의 금의환향을 다짐하며 길을 떠난 훈필.

 

청소년기의 방황. 그에 따른 가출. 그 시절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현실의 녹녹치 않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의 짧은 방황은 앞으로의 삶에 커다란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울타리에만 갖혀 있던 훈필에게 바깥 세상은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다. 그저 13년을 살아온 날들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는 더이상 좌절하지도 않고 더 이상 슬퍼하지도 않으며 더 이상 고민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에게 있었던 짧은 방황은 또 다른 염소를 키울 수 있고, 또 다른 사랑을 맞이할 준비 과정이었다. 그 에게 봄바람은 때론 옷깃을 여미게도 하고, 때론 웃옷을 벗어버리게도 하는 심술쟁이 였다. 하지만, 그래도 봄은 찾아오고 꽃으 피고 새는 울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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