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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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운영을 보았을까? 아마도 보았을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한 자운영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꽃을 보지 않더라도 자운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꽃의 생김새가 꽃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그래서 , 난 자운영이 좋다. 학창시절 이 꽃을 유난히 좋아했던 선배가 있었다. 하지만, 그 선배의 모습과 자운영과는 아무래도 연관이 되지 않았다. 선배의 말에 의하면 질긴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했는데 과연 자운영 그런 꽃인지는 잘 모를일이다. 하지만, 공선옥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자운영은 슬픔을 가득 머금은 꽃이었다. 보라색은 슬픔의 색이다. 이 책에서만은 그렇게 느껴진다.

 

흔히들 공선옥을 모성을 주제로한 작품을 많이 쓰는 작가라고 칭한다. 여성이자 엄마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공선옥 스스로도 세상의 모든 여성 작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를 낳아본 엄마로써 새로운 생명을 잉태해본 사람으로써 살아있는 것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여성작가들의 글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상당히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새로운 생명의 잉태는 여성의 고유권한이자 가장 성스러운 행위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땅히 존경받아야 하고 자부심을 갖아야 한다.

 

소설이 아닌 산문집으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얼마전 영란을 읽었을 때 책의 내용보다 작가의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었다. 어느덧 50이 된 작가는 농촌의 평범한 아낙이었다. 손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군데군데 상처도 많고 굳은살도 잔득 박힌 투박한 손이 연상되었다. 그런 손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잘 연계가 되지 않았다. 당연히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다른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 것이 잘못된 일이겠지만 , 공선옥의 첫 인상 만큼은 내겐 꽤 다르게 느껴졌었다. 작가의 글은 투박하고,거칠고,슬픔을 잔득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나약하지는 않았다. 죽음을 위해 목포를 찾은 여주인공 영란이 슬퍼보이고 불쌍해 보였지만, 한번도 나약해 보이지는 않았던 이유와 같다. 이번 작품에 수록된 40여편의 짧은 글들에서도 그녀는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향인 전남 곡성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모습. 그녀의 유년 시절은 곡성이라는 지역이 말해주는 것 처럼 결코 유복하지 않았다. 엄마와 세명의 자매가 보여주는 일생활은 가난하고 힘들었던 6,70년대 우리 누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모든것이 부족하기만 한 그 시절의 삶에서 작가는 따뜻함과 그리움을 이야기 하고 있다. 땅을 좋아하는 작가. 도시의 생활이 무섭다고 말하는 작가. 사람은 흙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고 말하는 작가에게서 , 흙과 자연은 인간의 고향이라는 평범함 진리에 수긍하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가는 잊혀져 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어린시절 힘들었지만 정겹게 느껴졌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며,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자신과 자신의 딸들에게 아쉬운 마음을 표현한다. 그것은 비단 그 들 가족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작가는 전라도 사투리 중의 하나인 '겁난다'라는 표현을 통해 이야기 한다. 사투리로 '겁난다'는 '많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정말 많은 것이 '겁나는'세상이 되고 말았다. 돈이 많은 것도 겁나는 일이고, 사람이 많은 것도 겁나는 일이고 , 음식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겁나는 일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많이 가진것이 풍요의 상징이 되어버린 시대에 많은 것은 정말 겁나는것이 되어버렸다.

 

글을쓰는 엄마답게 저자는 자식들에 대한 끔찍한 애정을 표현한다. 자신의 평범하지 못한 삶에 대해 자식들에게  속 시원히 이야기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글을 생업으로 삼으며, 새끼들 입에 들어갈 땟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의 삶도 이야기 한다.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하다고 말하는 그 녀.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작가로서, 엄마로서 느끼는 강한 자존심이 저절로 느껴지곤 했다.책장을 덮는 순간 , 이 작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 그녀가 눈물을 흘렸던 곳이 자운영 꽃밭 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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