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 알던 거인 분도그림우화 6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미림 옮김 / 분도출판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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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 오스카 와일드] 

1854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저명한 안과 의사이자 고고학자였고, 어머니는 유명한 시인이었다. 1874년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뉴디기트 시문학 상을 수상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탐미주의 운동을 주도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1884년 결혼한 뒤, 단편집 [행복한 왕자](1888)와 유일한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1893)등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1895년 동성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년 동안 레딩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외설죄의 증거물로 제시되었다. 1897년 석방되자 망명길에 오른 후 파리에서 몇몇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난하게 살다 1900년 사망했다. 그가 죽은 지 거의 100년이 지난 1998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라는 이름의 동상이 세워지면서 그의 명예는 회복되었다. 이후 그의 삶과 문학 세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으며, 특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영국 세기말 문학을 대표하는 탐미적인 내용과 독특한 개성을 가진 주인공들로 인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출처 : 인터파크 도서

 

오래전 헌책방 나들이 중 한 묶음의 책을 발견했다. 아주 얇은 책들이었는데 그 중에 눈에 확들어오는 작가의 이름들이 보여서 주저없이 사들과 왔다. 바로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분도그림 우화시리즈' 이다. 세계 각국의 전래동화와 국내의 민담 . 그리고 권정생 선생님의 창작동화까지 여러가지의 책들이 묶여 있는 아동 도서이다. 우화집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이지만 성인이 읽기에도 전혀 유치하지 않는 유익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직까지 글이 많은 책을 읽어주는 것에 거부감이 많은 우리 딸 나라에게 서서히 '이야기란 이런것이다'라는 취지로 책을 읽어주려고 한다. 물론 이야기의 흐름이나 내용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집중할지는 의문이지만 쉬운것부터 서서히 해나갈 생각이다. 무수히 많은 세계명작동화 시리즈도 좋지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유익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는 창작집들 또한 훌륭한 읽을거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분도출판사가 기독교 관련 책들을 많이 출판하고 내용에서도 간혹 종교적인 글들이 많이 있지만 그리 유념치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첫번 째 읽은 책은 '저만 알던 거인'이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우리가 알고있는 유명 작가들의 동화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야기는 정말 단순하면서 아름답다. 어느 마을에 아주 아름다운 커다란 정원이 있었다. 그 곳은 동네 아이들의 운동장과도 같은 곳이다. 일년내내 아이들의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 정원에는 항상 나무와 꽃, 나비들로 가득찬 살아숨쉬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오랜 외출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거인은 정원에 가득찬 아이들을 보면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고는 정원에 커다란 담장을 쌓고 아이들의 출입을 제한 시킨다. 그러자, 바로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항상 웃음과 꽃으로 가득찼던 정원은 아이들이 떠난 순간부터 얼어붙은 땅으로 변모해 버린것이다. 항상 눈과 우박 ,바람이 가득했고 아름답던 꽃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얼음밖에 없는 죽음의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봄이 오고 여름,가을이 되었지만 변하지 않는 자신의 정원을 보며 거인은 그 원인을 알지 못한다. 주위의 모든 정원에는 신록이 가득한데 유독 자신의 정원만은 사시사철 겨울만이 존재할뿐이었다.  거인이 내 쫒은 것은 비단 아이들뿐만이 아닌, 살아숨쉬는 모든 것들을 함께 쫒아 버린것이다. 하지만 거인은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다운 새의 지저귐에 놀라 밖을 내다본 거인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자신의 정원에 담장 사이로 난 구멍을 통해 들어온 아이들로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나무위에 올라가 놀고 있었고, 그런 나무들은 의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었다. 거인은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봄을 보며 감격에 겨워한다. 하지만, 정원의 한 구석 나무 한 그루에는 아직까지 봄이 찾아오지 않은 채 눈이 쌓여있었다. 유독 키가 작은 아이 하나가 나무에 올라가지 못한 채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인은 친절히 작은 아이를 나무에 올려주자, 그 나무 역시 아름다운 꽃이 피기 시작했다. 비로소 거인의 정원에 잃어버린 봄이 찾아온 것이다.  그 후로 거인은 아이들의 출입을 제한하지 않았고, 정원 또한 아름다운 웃음소리와 향기로운 꽃내음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하지만, 거인은 자신이 올려준 작은 아이를 볼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 또한 그 아이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유난히 작은 아이를 그리워 하던 거인은 어느덧 나이가 먹어 노인이 되어갔다. 어느덧 자연의 섭리를 알게된 거인은 변함없이 찾아오는 겨울을 너그럽게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유난히 눈이 많 던 겨울. 눈 꽃이 피어있어야 할 정원의 나무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었다. 그 모습을 기이하게 여긴 거인은 나무로 다가간다. 그 곳에는 거인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작은 아이가 서 있었다. 오랜만의 재회. 어린 아이의 손과 발에는 못이 박힌 상처가 있었다. 깜짝 놀란 거인은 아이에게 상처에 대해서 묻는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놀란 거인에게 웃음으로 답을 한다. '이건 사랑의 상처에요' 그 순간 작은 아이 앞에 무릎을 꿇는 거인..... 작은 아이는 오래전 거인이 자신을 나무 위에 앉혀 주었던 것처럼, 이젠 거인을 자신의 정원으로 초대한다. 거인은 나무 밑에서 하얀 꽃잎을 덮은채 깊은 잠에 빠져 든 것이다.

 

짧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마지막에는 나름대로 종교적이며 거룩한 반전까지 있다. 우리 아이가 이 이야기를 정확히 이해 할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타인을 배척하면 서로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에서 존재하기 힘들다는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사는 세상. 그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느끼는 사랑이야 말로 이 세상 어떤 꽃보다 아름답다는 기본적이며 중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뒷장에는 친절하게도 원서가 수록되어 있다.물론 원서를 읽기는 매우 힘들지만 길지 않은 분량이기에 영어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도전해 볼만한 일이다.  오랜만에 동심에 세계에 빠져든 행복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분도출판사의 책 읽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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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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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에 발 맞추어 고령화 가족의 등장은 필연이다. 일흔이 넘은 노모와 40대 중후반의 삼남매가 한 집안에 다시 뭉쳤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48세. 충분히 고령화가족이라 부를만 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훈훈한 대가족의 풍경을 연상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면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 보면 책의 표지그림 만큼이나 황당한 가족의 진면목을 볼수 있다. 
 
지금부터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이 소설의 화자인 주인공은 이 가족의 가장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일만큼의 고학력과 떳떳한 직업의 소유자 였다. 전직 영화감독이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영화 한편으로 충무로를 전전하다 급기야 술이라는 빠져나오기 힘든 중독성 짙은 영화와의 동거에 들어간 48살의 중년 남자. 어린시절부터 연필보다는 벽돌과 연장을 가방에 챙겨다니던 끝에  폭력과 강간의 전과를 단채 52살이라는 나이로 백수의 길을 걷고 있는 형.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전선에 뛰어 든 것이 하필이면 술장사. 주체할수 없는 바람기로 인해 몇 번의 이혼끝에 중학생 딸아이와 함께 금의는 없이 환향만 한 45살의 여동생. 마지막으로 칠순이 넘은 나이에 화장품 외판을 하며, 고령화가족의 중심에 우뚝서 있는 어머니. 여기까지만 보면 고령화가족이라고는 할수 있어도 굳이 콩가루 가족이라고 하기까지는 조금은 억측이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기상천외한 활약상과 그들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는 어떤 아침드라마 보다도 자극적이다.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 아니 막장 소설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어느 날 차례차례 들이닥친 장성한 자식들을 묵묵히 거두어 들이는 어머니.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줄 알았다는 듯이 그들을 위해 한끼도 거르지 않은채 고기를 굽고,지지고 볶는다. 아마도 보통의 부모 같았으면 고기를 지지고 볶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을 지지고 볶다가 그것도 모자라 오뉴월 개패듯이 두들겨 패서라도 내쫒았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정상적인 부모의 반응일것이다. 하지만  콩가루 가족의 어머니는 그 모든것들을 초월한다. 모든것이 다 애미가 부족한 탓으로 돌린다. 과연 진정한 한국의 어머니상을 보여주는 것일까?  하지만 이것 자체가 이 소설이 슬금슬금 밝히고 있는 콩가루집안의 비밀중 하나이다. 막장 드라마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중 하나인 출생의 비밀부터 살펴보자. 나를 기준으로 봤을때 일단 형은 아버지가 같지 않다. 또한 동생과는 어머니가 같지 않다. 여기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외도가 똑같이 밝혀진다. 젊은 시절 아버지를 떠나 이웃집 전파사 주인을 따라 집을 나갔던 어머니의 외도. 그 외도의 끝에 있던 여동생. 정말 유전의 힘이라는 것은 놀라운 것일까? 자식들 어느하나 아주 평범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 그것 또한 어머니는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동생의 친부가 등장한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니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 평생을 자신의 가슴 한켠에 고이 묻어 두었던 연정의 대상과 결합을 선언한다. 여기서 또 한번의 눈물겨운 스토리가 펼쳐진다. 세번 째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은 평생 처음보는 친부의 팔을 잡고 신부입장을 한다.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 인가? 이산가족의 만남과도 같은 극적인 순간이다.  작가가 어떤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철저히 막장으로 가고 싶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막장의 양대 산맥중 하나인 시한부 인생까지도 포함시키고 싶었다고 밝혔다. 나또한 책을 읽으면서 이 쯤에서 누군가의 불치병이 나타나서 눈물겨운 가족들간의 극적 화해 같은 것이 펼쳐지기를 은근히 기대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콩가루집안의 막장보다 더한 막나가는 이야기를 읽는 내내 유치하다거나 뻔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그렇게 놀랍지도 않았고, 반전같지 않은 반전이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그럴수도 있겠거니 하게 되었다. 이 책이 막장이면서도 말종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품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철저히 주관적이며 또한 합리적이다. 자신의 현재 삶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자신앞에 펼쳐진 세계는 자신으로 인한 것이지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예외가 될수는 없다. 멀리서 바라본 고령화 가족 자체가 슬픔은 아니다. 그 안에서 고령화를 부축이고 있는 나 자신이 슬픈 것이다. 고령화 자체가 아픔이 아니다. 자신의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아픔의 근원만을 탓하며 고령화 되어가는 현실이 아픔이고 고통인 것이다. 그런 아픔과 고통이 없기에 이 책의 가족은 비록 동네 아낙들의 가십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능한 고령화가족일지는 몰라도, 말종의 인간 군상은 아니다.
 
작가의 취향이 제법 많이 반영된듯한  헤밍웨이에 관한 단상들은 적절한 양념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나이 많은 삼촌과 어린 조카와의 기싸움또한  눈물겹도록 재미난 이야기 거리이다. 무수히 많은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런 중에서도 각자 자신만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나는 과정또한 이 책을 놓을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이다.  
 
천명관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 이다. 제법 유명하다는 '고래'도 아직 읽지 못했다.  제법 유쾌한 이야기꾼을 만난것 같고, 그 만남은 당분간 계속될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 시대의 새로운 이야기꾼과의 만남으로 이 책의 마지막장을 기뿐 마음으로 덮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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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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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 서지 않는다. 박민규라는 작가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기존에 읽었던 몇 편 되지 않는 그의 작품과는 또다른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에 대한 판단을 조금은 유보해야 할 것 같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책을 덮고 싶은 생각도 굴뚝 같았다. 그럴 때 마다 중간 중간에 끼어 있는 반짝이는 작품들이 나의 성급한 판단을 보류하게끔 만들었다. 참 알수없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5년만에 나온 단편집. 다른 확연히 다른 구성. side A,B 두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은 예전 LP판의 더블앨범을 연상케 한다. 물론 작가의 의도또한 그랬다고 한다. 표지는 복면을 쓴 사내의 옆모습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있다.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책이 두권으로 나오는 것은 어차피 요즘의 트랜드인듯 하다. 굳이 1,2 혹은 상,하권이 아닌 SIDE A,B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 별 차이는 없다. 그렇다고 A와B 두 책이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거나 , 연작소설의 구분을 짓고자 하는 것도 아닌듯 하다. 그저 그냥 출판사의 마켓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의 책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을 굳이 두 권으로 만들어내는 출판사의 상술을 나는 정말 싫어한다. 그런 책을 굳이 사서 읽는 나 자신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굿바이,제플린 / 깊 / 끝까지 이럴래? / 양을 만든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 / 축구도 잘해요 / 크로마,운 /루디/아스피린 과 같은 작품은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작품이었다.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SF적 환상소설이라고 할수도 있겠고, 포스트모던 기법이 뛰어난 세련된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평을 하는 듯 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작품들이 싫다. 산만하고 삼천포로 잘 빠지고, 하고 싶은 얘기를 애둘러 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지 않다. 상상력의 부족 혹은, 사고의 부족탓일지도 모른다. 

근처  / 누런 강 배 한 척 / 낮잠은 각각 죽음을 앞둔 사내의 마지막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낮잠은 이미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던 작품이었다. 그당시에는 상당히 박민규 답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작품집에서는 오히려 박민규 스럽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굳이 '리얼리즘'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현실의 아픔을 잔잔하게 그려 낸 모습들이 내게는 꽤 진실되게 다가왔다. '근처'의 뻔한 결론은 예사이 되었기에 더욱 현실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용용용용 과 아치 두 작품은 '더블'이라는 책을 중간에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었으며, 박민규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단편의 최대 장점인 한번에 몰아치기, 한번에 끌어당기기가 확실한 작품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현대판 무협지를 연상시키는 용용용용에서는 예전의 박민규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신랄한 말솜씨가 탁월했던 작품이었고, 아치또한 한강다리 위에서 버러지는 투신자와의 대치장면을 기막히게 그려낸 수작으로 평하고 싶다. 정말 긴박하면서도 재미난 작품이었다.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는 마치 온탕과 냉탕을 수시로 넘나드는 듯한 인상이 강한 작품이었다. '이게뭐야'로 시작해서 '허허'거리며 끝 맺음을 한 작품이었다. 아무튼 5년이라는 시간동안 열심히,치열하게 써온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자 꾸준히 노력하는 작가의 실험정신에도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을 온것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내 자신이 아직 많이 부족한 모양이다. 오래전 더블 앨범을 구입했을 때에도 그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에 만족을 하지 않았듯이 이번 작품집 또한 개중에 몇 작품만 마음에 들어도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것이 단편집의 매력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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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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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관한 책은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내가 특정 종교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온갖 교리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선입관. 어쩐지 책을 읽고 나면 그 주장에 나도 모르게 휩싸일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종교에 관련된 책은 가까이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예외인 책들이 있다. 법정스님의 책이나 이해인 수녀님의 책같은 경우는 종교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대중적인(?) 책이 되어있다. 아마도, 자신의 종교관을 떠나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한가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방일기는 꽤나 유용한 책이었다. 이미 불교계에서는 법정스님의 책들과 함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와 있던 책이라고 한다. 한 때 절판되었다가 이 번에야 새로운 모습으로 보다 많은 이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게 되었다.  저자인 지허 스님에 대해서는 알려진바가 거의 없다. 정확한 출가와 입적년도도 없으며 출가전의 활동상과 출가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명확한 사실이 없다. 단 이 글이 1973년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었다는 것과, 출가 전 서울대를 졸업했다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종교,철학,문학 전반에 걸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그런 부분이 지금의 사람들에게 스님의 학력을 추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님들은 일년에 두 번 안거 생활을 하게 된다. 여름철에 행해지는 하안거와 겨울철에 행해지는 동안거. 이 기간동안은 외부 출입이 전혀 통제되며 선방에 들어가 용맹정진하는 일만이 있을 뿐이다. 스님들의 공부철인 샘이다. 이 책은 스님이 오대산 성원사에서 동안거 기간중의 일들을 기록한 23편의 짧은 글들을 모아놓고 있다. 제목처럼 선방일기인 셈이다. 일기인 만큼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것이 동안거 중에 일어나는 스님들의 일상이기에 참으로 경건하고 소박할 뿐이다.  속세를 떠나 기나긴 수행생활을 하는 스님들에게는 삼부족이라는 것이 필수적이라 한다. 식부족,의부족,수부족으로 불리우는 삼부족은 먹고,입고,자는 것에 대한 지극한 절제를 의미한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먹고,입고,자는 것이 가장 원초적인 욕구일진대 그것에 대한 절제를 한다는 것 만으로도 가장 큰 수행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반대로 의.식,수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인간의 욕심은 그 한계를 벗어난다는 의미일수도 있다. 가장 기본적인것이 가장 세속적인 것이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정한 수행의 결과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 스님들 또한 엄연한 인간(대중)일지라, 앞에서 말한 세가지 것에 결코 초연할 수는 없다. 기나긴 겨울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몰래 먹는 감자구이와 보름날 만 특별히 먹을수 있는 별식인 찰밥과 만둣국에 대한 예찬은 보는 이 또한 군침을 넘기게 만든다. 또한 그것에 대해 집착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며, 그 진솔함이 정겹기 까지 하다. 20세가 되지 않은 젋은 스님들 사이의 올깨끼와 늦깨끼에 대한 완력다툼. 그것 또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한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서로를 자극해서 좀더 빠른 수행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격려의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조직이 있고 권력이 있는 곳에서는 자신의 욕심을 먼저 채우는 것이 인지상정인 요즘 시대에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일이기도 하다.

 

화두,선문답 등으로 대변되는 고승들의 이야기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책 또한 중간중간 나오는 화두에 대한 논쟁은 어떠한 철학정 논쟁보다 심오하고 치열하다. 하지만, 자신의 잘남을 과시하기 위한 현학적 태도도 아니며 중생을 구제한다는 오만함도 아니다.그저, 나또한 중생의 일원으로서 다 같이 해탈의 길을 걷고자 하는 자각이며 격려이다. 이 책이 아름다운 이유다. 서걱서걱한 나뭇잎을 밟으며 시작한 선방일기는 소복히 쌓인 하얀 눈을 맞으며 맺음을 한다. 기나긴 동안거를 끝낸 스님들의 발길에서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한마디. '성불하십시오'라는 말이 오랫동안 가슴깊이 울려펴지는 책이다. 우리 다같이 성불하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자주만나 괴롭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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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잇는 250원의 행복한 식탁
고구레 마사히사 지음, 김우영.선현우 옮김 / 에이지21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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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남도 자신과 같은 식생활을 하겠거니 생각하기 쉽지만, 하루 세끼를 꼬박 먹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세계의 상식은 아니다. 최빈국에서는 하루 식사가 학교 급식뿐인 아이들도 많다. 그들에게 급식은 마치 생명의 양식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급식을 먹기 위해 학교에 가는 것이다.(197)

 

아주 평범한 진리에 많은 깨달음을 하곤 한다. 내가 항상 굶주리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 또한 나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 나보다 더 잘먹고 잘 사는 사람들만을 바라보며 나의 현실에 대해 가졌던 불평 불만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잘 먹으면 누군가는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들. 여러매체를 통해 보아온 기아라는 것이 결코 멀리서 일어나는 나와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 들. 이젠 더이상 외면하기에는 나 스스로가 너무도 염치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굶주림이라는 것은 이젠 현실이다. 내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또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가슴아픈 현실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이제 똑똑히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들을 더이상 동정어린 시선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은 결코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이다.

 

저자는 1997년 일본에서 TFT( TABLE FOR TWO) 를 창립하여 현재 사무국장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회사업가이다. 일단은 TFT라는 말자체가 상당히 흥미롭다. 한끼의 식사가 차려진 테이블에 두명이 앉아서 밥을 먹는다는 발상. 기부에 대한 기존 관념과 거기에 따른 거부감을 일소에 해소할 수 있는 아주 기막힌 방법이다. 세계인류중 10억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으며, 10억은 비만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한다. 두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TFT의 헬시 메뉴이다. 한끼에 1000원하는 식사 메뉴가 있다면 거기에 250원을 더하여 1250원짜리 건강식단을 만드는 것이다. 그걸 먹는 사람들은 비만 과 대사증후군같은 너무 잘먹어서 발생할 수 있는 현대병을 해소할 수 있고, 250원이 더해진 금액은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급식비용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250원은 아프리카 아이들의 한 끼 급식에 소요되는 비용이기도 하다. 과연 250원의 효과는 어떠할까? 나 자신의 건강도 돌보면서 급식 한 끼가 하루의 유일한 식사일수도 있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사용되어진다는 사실을 알면 그 가치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주머니와 책상 한 구석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작은 금액이지만, 그 것들이 모여 자신들의 운명과도 같은 빈곤과 싸워 이길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은 그동안 주위의 현실에 무관심했던 우리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 준다. 저자가 기부,구호의 대상으로 빈민층 아이들의 급식을 선택한 것은, 아이들이 배워야만 자신들의 현실을 이길수 있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확신에서 였다. 나 또한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우리 주위에는 그들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전쟁,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난민들은 저마다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또한 반드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사업이라는 분야에서도 틈새시장은 유효한 듯 하다. 일본인으로써 국내의 구호 문제에도 분명히 시선을 돌려야 하겠지만, 그 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져 있기에  상대적으로 관심의 취약부분 이었던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선택하게 된것이다. 나 또한 한비야같은 NGO활동가의 저서를 읽으면서 굳이 해외에 있는 난민들에게 구호활동을 펼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 우리 국내에도 결식아동을 비롯한 수많은 도움의 손길을 요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굳이 머나먼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구호 활동을 펼치는 것은 오지랖 넓은 이의 앞서가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일말의 불만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사실들이 나의 좁은 견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배를 곯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걸 어쩌다 알게 됐고 불쌍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도와줄수도 없으니까 눈을 좀 감아 두자.....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지 않다도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모르거나 솔직하게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이 창피할 뿐이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게 아니라 '이렇게 하면 무리하지 않고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구조를 준비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분명 모두가 기뻐하며 그 구조를 사용할 것이다. (본문 200-201쪽)

 

위의 글은 평상시 내 생각을 가감없이 표현한 글이다. 누구나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천을 못 할뿐이다. 변명일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정말 그 방법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또한 창피하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길을가다 만난 구세군 냄비를 애써 외면하는 행위또한 그와 같다. 괜히 잘난척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TFT의 방법은 정말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내 아내는 매 해 아프리카 신생아들을 위해 털모자를 떠서 보내고 있다. 일년에 단 한번 하는 일이지만 나는 항상 존경스러운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곤 한다. 물론 돈과 어느정도의 시간투자가 필요하지만, 아이를 돌보면서 틈틈히 모자를 뜨는 아내의 모습은 어떠한 행동가 보다 뛰어나다. 실천이란 바로 이런것이다.

 

이 책에서 또 한가지 신선한 내용은 사회사업에 대한 저자의 신념이다. 사회사업을 하는 기업도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이익금이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사회사업 단체는 존립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훌륭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곳에 종사하는 인재또한 유능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정말 당연한 논리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의 일반적인 견해는 사회사업가는 단순히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윤추구 부분에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정말 구도자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우리 현실이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 이윤추구를 포기한 채, 타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사회사업(NGO)은 한계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NGO단체의 유능한 인재라면 그 연봉이 다른 기업의 연봉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더 많은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문화적 차이 일수는 있다. 대부분이 타인의 기부에 의해 운영되는 비영리단체에서 그에 소속된 직원들이 엄청난 연봉과 흡족한 복리후생의 혜택을 받는다면 대번에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사업을 하는 조직도 뛰어난 영업력으로 그에 걸맞는 사업수익을 올린다면 그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 또한 마땅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사업가라는 직업이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사회적 풍토가 하루 빨리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은 채 읽어간 책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나와 동갑이 저자의 결단을 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내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 돈 250원으로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이 있다는 것. 비단 그것이 TFT활동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이제는 더 이상 내 주변에 존재하는 구원의 손길을 외면하지 말아야 겠다는 결심을 갖게 되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분노했다면, 이 책을 읽은 지금은 그 분노가 실천이라는 확신으로 거듭나게 된 것 같다. 정말 유용한 책이었다.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힘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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