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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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관한 책은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내가 특정 종교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온갖 교리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선입관. 어쩐지 책을 읽고 나면 그 주장에 나도 모르게 휩싸일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종교에 관련된 책은 가까이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예외인 책들이 있다. 법정스님의 책이나 이해인 수녀님의 책같은 경우는 종교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대중적인(?) 책이 되어있다. 아마도, 자신의 종교관을 떠나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한가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방일기는 꽤나 유용한 책이었다. 이미 불교계에서는 법정스님의 책들과 함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와 있던 책이라고 한다. 한 때 절판되었다가 이 번에야 새로운 모습으로 보다 많은 이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게 되었다.  저자인 지허 스님에 대해서는 알려진바가 거의 없다. 정확한 출가와 입적년도도 없으며 출가전의 활동상과 출가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명확한 사실이 없다. 단 이 글이 1973년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었다는 것과, 출가 전 서울대를 졸업했다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종교,철학,문학 전반에 걸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그런 부분이 지금의 사람들에게 스님의 학력을 추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님들은 일년에 두 번 안거 생활을 하게 된다. 여름철에 행해지는 하안거와 겨울철에 행해지는 동안거. 이 기간동안은 외부 출입이 전혀 통제되며 선방에 들어가 용맹정진하는 일만이 있을 뿐이다. 스님들의 공부철인 샘이다. 이 책은 스님이 오대산 성원사에서 동안거 기간중의 일들을 기록한 23편의 짧은 글들을 모아놓고 있다. 제목처럼 선방일기인 셈이다. 일기인 만큼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것이 동안거 중에 일어나는 스님들의 일상이기에 참으로 경건하고 소박할 뿐이다.  속세를 떠나 기나긴 수행생활을 하는 스님들에게는 삼부족이라는 것이 필수적이라 한다. 식부족,의부족,수부족으로 불리우는 삼부족은 먹고,입고,자는 것에 대한 지극한 절제를 의미한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먹고,입고,자는 것이 가장 원초적인 욕구일진대 그것에 대한 절제를 한다는 것 만으로도 가장 큰 수행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반대로 의.식,수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인간의 욕심은 그 한계를 벗어난다는 의미일수도 있다. 가장 기본적인것이 가장 세속적인 것이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정한 수행의 결과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 스님들 또한 엄연한 인간(대중)일지라, 앞에서 말한 세가지 것에 결코 초연할 수는 없다. 기나긴 겨울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몰래 먹는 감자구이와 보름날 만 특별히 먹을수 있는 별식인 찰밥과 만둣국에 대한 예찬은 보는 이 또한 군침을 넘기게 만든다. 또한 그것에 대해 집착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며, 그 진솔함이 정겹기 까지 하다. 20세가 되지 않은 젋은 스님들 사이의 올깨끼와 늦깨끼에 대한 완력다툼. 그것 또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한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서로를 자극해서 좀더 빠른 수행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격려의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조직이 있고 권력이 있는 곳에서는 자신의 욕심을 먼저 채우는 것이 인지상정인 요즘 시대에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일이기도 하다.

 

화두,선문답 등으로 대변되는 고승들의 이야기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책 또한 중간중간 나오는 화두에 대한 논쟁은 어떠한 철학정 논쟁보다 심오하고 치열하다. 하지만, 자신의 잘남을 과시하기 위한 현학적 태도도 아니며 중생을 구제한다는 오만함도 아니다.그저, 나또한 중생의 일원으로서 다 같이 해탈의 길을 걷고자 하는 자각이며 격려이다. 이 책이 아름다운 이유다. 서걱서걱한 나뭇잎을 밟으며 시작한 선방일기는 소복히 쌓인 하얀 눈을 맞으며 맺음을 한다. 기나긴 동안거를 끝낸 스님들의 발길에서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한마디. '성불하십시오'라는 말이 오랫동안 가슴깊이 울려펴지는 책이다. 우리 다같이 성불하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자주만나 괴롭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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