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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ㅣ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18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 길(도서출판) / 2009년 7월
평점 :
읽게 된 계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떻게 해서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는지 거의 잊어버리긴 했지만 별로 대단한 건 없었을 것이다. 나는 폴라니라는 이름을 전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워낙 집중하는 시간도 짧고 두 권짜리 장편소설에도 허덕대는 스타일이라 두꺼운 책은 좀 피해주고 싶었으나...이런, 전문가와 독자들의 평이 너무 좋았다. 다들 신자유주의의 진정한 대안이라고 하니...(군중심리 발동 -.-;) 게다가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회오리 바람 속의 연인들].
아, 생각났다.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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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전혀 도달할 수 없는 적나라한 유토피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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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용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던 거다. 거대한 전환은 시장 자유주의, 즉 나라 단위의 사회들과 지구 경제를 모두 자기조정 시장을 통해 조직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믿음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 본 것들 중 가장 강력하고 근본적인 비판을 제공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문제를 밑바닥부터 다시보게 해주는 게 좋다. 처음 접했을 땐 머릿속에서 에밀레종처럼 아주 큰 종이 '딩~'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폴라니의 인생
188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폴라니는, 192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 중유럽의 으뜸가는 경제금융주간지인 '오스트리아 경제'의 주요 편집자로 일했다. 이 기간에 그는, 요즈음에는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들로 불리며 당시에는 시장자유주의 이념의 정당성을 복원하려 애쓰던 미제스와 그의 제자 하이에크의 주장을 접하게 되었다.
요즘에야 미제스와 하이에크의 주장들이 주류 경제학계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때만해도 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사회주의의 호소력 등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으니, 그들의 주장은 당시엔 별 영향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1920년대에 벌써 폴라니는 미제스의 주장에 직접적으로 도전했으며, 시장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그의 중심적, 이론적 관심사로 남게 되었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게 되자 폴라니의 사회주의적인 사상이 문제가 되고, 결국 그는'오스트리아 경제' 의 편집자직을 사임하고 영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옥스포드와 런던의 여러 대학의 학교 외곽 조직이었던 노동자교육협회에서 강의를 준비하다가 그는 영국 사회 경제사의 자료들에 파묻힌다. 본서 '거대한 전환'의 2부 시장경제의 흥망에서 영국산업혁명과 스피넘랜드법, 당시 학자들의 논쟁 등에 대한 풍부한 지식은 거의 그 시기에 얻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런 역사적 자료들을 (오늘날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미제스와 하이에크의 견해에 대한 자신의 비판과 융합시킨다.
이 책을 실제로 집필하게 된 것은 그가 미국 버몬트의 베닝턴 대학에 초빙학자로 머물던 1940년대 초의 일이다. 그는 연구 지원비를 받고 집필에만 몰두할수 있는 환경 속에서 여러 다른 흐름으로 펼쳐져 있었던 자신의 주장들을 하나로 합칠 수 있었다.
2차대전 후에는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직을 갖고 학생들과 함께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의 화폐, 교역, 시장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에 몰두했다. '거대한 전환' 2부 시장경제의 흥망에서 3장-삶의 터전이냐 경제개발이냐, 4장-사회와 경제체제의 다양성, 5장-시장패턴의 진화 부분은 이 시기에 얻은 지식들이 상당부분 녹아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의 고향 헝가리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부다페스트에서 빈과 영국으로, 미국으로 망명하는 가운데 학자로서의 도덕적 책임의식을 잃지 않았다. 덕분에 유럽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으로서의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기에 그의 여러 차례의 망명은 개인적으로는 비극일지언정 학자로서는 풍부한 사유의 틀을 제공해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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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과 노후의 폴라니 사진
거대한 전환은 어떤 책인가?
칼 폴라니의 첫 저술이자 대표작인 '거대한 전환'은 1944년, 그의 나이 57세에 출간되었다. 이런 걸 대기만성이라 해야할까. 이 책은 그의 일생에 걸친 고민과 연구와 사색이 어우러져 나온 것이며 향후 20년간 정력적으로 몰두했던 '실체 경제학'이라는 혁신적이고 지적인 프로젝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p.605)
이 책은 시장경제라는 거대한 전환을 함께 겪은 '동시대'의 '서구인'들을 위해 쓴 것으로 거의 70년이 지난 후의 한국인이 읽기엔 매우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요즘은 한두달 겨우 서점에서 버티다 사라지는 책들도 부지기수이니까. 그런데 이런 70년 '묵은' 이런 두꺼운 하드커버 경제학술서가 이토록 생생하고 매력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니!
그러나 안타깝게도 출간 직후엔 생생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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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술이 처음 출간된 1944년 직후 미국과 소련 사이에 냉전이 격화되면서
폴라니의 기여가 갖는 의미가 흐려지고 말았다. 자본주의 옹호자들과
소련식 사회주의 옹호자들 사이의 지극히 양극화된 논쟁에서는 폴라니의
복잡하고도 섬세한 논리의 주장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p.32, 프레드 블록의 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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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폴라니의 연구 스타일과 후대 학자들에게 끼친 영향
이 책이 복잡하다, 섬세하다, 때로는 난해하다는 오해까지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그가 행한
연구방식이 다른 학자들과 달랐기 때문인 것 같다.
(번역이 잘 되어서인지 나는 경제지식이 바닥인데도 생각보단 어렵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경제사는 경제+역사 분야를 참조하고,
정치경제는 기껏해야 정치+경제+역사 분야 정도를 참조하며 연구를 진행하는데
이 사람은 이 책을 쓰면서 경제, 정치 뿐 아니라 역사, 사회, 인류 등 경제학자로서는
흔치 않은 분야의 지식을 끌어모아 자신만의 이론을 재구성하였다. 국제/국내법이나
행정 등의 역사적 변화를 주로 보면서 연구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건 그가 인간과 그가 가진 사상 사이의 중요성의 비중을 새롭게 평가(
p12, 로버트 매키버의 발문에서)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독특한 사유방식을 설명해주는
'묻어 들어 있음'(embeddedness)의 개념 때문이기도 하다. 경제란 경제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 종교, 사회 관계들에 종속되어 있다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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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환]은 15세기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동안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중요한 언급을 담고 있다. 또 이 저서는 전근대 사회에서 상호성(reciprocity)과
재분배(redistribution)의 역할, 고전파 경제사상의 한계들, 자연을 상품화 하는 것의
여러 위험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독창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수많은 현대의 사회과학자들-인류학자들, 정치학자들, 사회학자들, 경제학자들-이
폴라니의 주장으로부터 이론적 영감을 얻어왔다. 오늘날 이 [거대한 전환]에서의
핵심 인용구들에 따라 틀이 잡혀 있는 책과 논문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p.37-38, 프레드 블록의 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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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만 거의 100페이지 이상이라, 아직도 그 많은 해제와 발문들 중 일부는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남아 있지만, 그 내용들은 여러모로 21세기를 사는 동양인 독자의 입장에선 매우 쓸모가
많았다. 1940년대에 출간된 책이 현재를 고민하는데 훌륭한 디딤돌이 되어주었으니.
1944년 출간 당시 원서
나는 이 글의 제목을 '독서후기'라 하였지만 사실상 '해제후기'라 해도 될만큼,
조지프 스티글리츠, 프레드블록, 루이뒤몽, 홍기빈 등의 발문이나 해제들은
모두 뛰어나다. 자신들의 경제학적 성취를 바탕으로 폴라니를 이해하는 것이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폭넓은 시각으로 이책을 보도록 도왔고,
경제관련 지식에선 완전히 문외한인 내게 하나같이 이 책이 현재성을 가지고
미래를 구상하게 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