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심리가 얼마나 나약하고, 그 나약함으로 인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그것이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얼마나 끔찍한 공포로 다가오는지를 보여주는 수작이었다. 또 한 번 같은 표현을 반복하자면, 스티븐 킹은 사람의 심리를 관찰하는 위대한 관찰자다.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표현은 심리적 공포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에 대한 찬사일 뿐이다. 그가 만일 나의 인생을 묘사한다면, 난 벌거벗은 아이로 돌아가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명작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문학작품들을 쓴 작가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인간의 심리를 차분하고, 명쾌한 목소리로, 간단명료하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비록 어려운 철학적 사상을 사용했으나 인물의 행동과 생각, 판단의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표현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밀란 쿤테라도 그랬고, 에세이 ‘민족주의의 단상’에서 민족주의자들이 갖는 논리적 허점과 행동 이면의 심리적 사유를 명쾌하게 표현했던 조지오웰도 그랬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장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악의’도 인간이 갖고 있는 나약한 감정인 ‘질투심’과 이유없는 ‘악의’를 소설속에 표현하고 있다. 스티븐 킹은 ‘샤이닝’에서 잭 토런스의 자라온 배경과 과거의 실수와 같은 이야기 장치를 통해 한 인간이 호텔의 망령에 점점 영향을 받아 변해가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고, 왜 호텔이 그를 하수인으로 선택하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 준다.
이토록 섬세한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명작을 스크린에 담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도 힘든 일이다. 지금까지 읽은 그의 중장편 소설이 모두 그랬다.
만일 내가 그의 입장에서 영화화된 이들 작품을 시사회장에서 보았을 때 들었을 법한 감정을 한마디로 상상해 보았다.
- 쇼생크 탈출, ‘시나리오 작가 녀석, 나 보다 더 멋진 엔딩을 만들어 냈어’
- 미저리, ‘캐시베이츠는 완벽한 애니윌크스지만, 그녀의 능력을 십분의 일 밖에 쓰지 못했어’
- 샤이닝, ‘스탠리, 이 오만한 놈이 내 작품을 어설픈 호러영화로 망쳐놨어, 개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