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읽기와 쓰기에 대한 책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글을 쓰는 것도 즐기기 때문이다. 그 책이 전문 작가가 쓴, 작가 자신의 읽기와 쓰기에 대한 책이라면 볼 것도 없이 좋다.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작가들에게는 특히 쓰는 것뿐 아니라 읽는다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책을 좋아하니 작가가 되었을 터이고, 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로 책을 읽어야 하고, 다른 작가의 소설을 공부하기 위해 잘 써진 소설을 읽어야 하고, 또 그냥 좋아서 마음 가는 책도 읽는 듯 하다.
좋아하는 일본 문학 작가 중 한 명인 에쿠니 가오리의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에서는 작가 자신의 읽기와 쓰기, 그 주변부에 대한 에세이와 짧은 소설을 모았다. 한 꼭지 한 꼭지가 인상적이고, 소설의 소재로 등장하는 작가의 고뇌와 작품에 녹아 있는 글쓰기에 대해 생각 등이 재미있었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로 진하게 밑줄을 두 세번쯤 긋고 싶은 문장을 많이 만났고, 그가 읽었다는 책이라면 무엇이든 읽고 싶어져, 어려운 영어 원서도 불사하며 모두 데일리북 프로 앱의 위시리스트에 넣었다.
그가 말하는 읽기의 즐거움에 크게 공감이 갔다. 그는 일평생 소설가로 살면서 현실 속에서 사는 것보다 이야기 속에서 더 오래 있었다고 말한다. 소설을 쓰거나, 또는 읽거나 하면서. 삶의 80%는 이야기 속에 있었으니 소설을 쓴 20여 년 중 5년 밖에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현실 감각이며 시간 감각 마저도 없어져 버렸다는 그가 말하는 이야기의 매력. 역시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멋진 책 한 권을 읽었을 때의,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마저 읽기 전과는 달라지게 하는 힘, 가공의 세계에서 현실로 밀려오는 것, 그 터무니없는 힘.
(p. 212)


그가 책과 활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열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자신이 작가이면서도 자신의 책보다도 더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싶을 정도로 푹 빠진 책을 소개할 때. 그의 글에서는 반짝반짝 하는 빛이 나오는 듯 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곳으로 떠나는 일이고, 떠나고 나면 현실은 비어 버립니다. 누군가가 현실을 비우면서까지 찾아와 한동안 머물면서,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게 되는 책을, 나도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p. 129)


몇 권 읽은 그의 소설도 참 좋았지만, 이 에세이가 무척 마음에 와 닿는다. 작가의 진솔한 일상과 그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삼삼했다. 에세이이지만 무언가 마술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책이었다. 읽기와 쓰기를 좋아한다면, 꼭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하지 않아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l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