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 뇌인지과학이 밝힌 인류 생존의 열쇠 ㅣ 서가명강 시리즈 25
이인아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7월

기억이란 무엇일까? 내가 기억하고 인지하는 것이 실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 머리 속에만 있는 것일까? 인공지능이 갖고 있는 지능은 사람의 지능과 어떻게 다른가? 인공지능이 이상적으로 구현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뇌과학에 평소 관심이 많았고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사실 이런 문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뇌인지과학과 이인아 교수가 이런 질문들에 차근차근 대답해준다.
뇌인지과학이란 신경과학의 하나로서 뇌가 인지와 행동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아내는 분야다. 학창시절 생물 시간에 배웠던 시냅스와 뉴런에 대한 이야기서부터 뇌에 칩을 심어 생각만으로 컴퓨터 게임을 하는 원숭이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는 인지 과정의 다양한 면모를 하나 하나 설명해간다. 뇌의 인지작용은 아주 복잡한 과정이기도 해서 사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뇌는 생존을 위해 학습한다. 학습이란 꼭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양이 사자에 잡아 먹힐 뻔 한 경험을 한 후, 사자를 피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에 가깝다. 정글의 동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뇌의 인지 기능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으면 사람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간질 때문에 해마를 제거한 환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해마는 일화기억, 즉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한다. 이로 인해 사람을 알아보고, 물건을 알아보고, 자신의 인생에 있었던 일을 기억한다. 이런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쁜 사람에게 쫓겨 달아나는 와중에도 자신이 왜 달리고 있는지 모르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야말로 생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일화기억과 달리 절차적 기억은 기저핵이 담당하고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익숙한 일을 하게 한다. 자전거를 타거나, 컵을 집거나, 문을 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법은 설명할 수 없으나 무의식적으로 이런 것을 하는 방법을 기억해 자동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파킨슨병 환자처럼, 이런 절차적 기억에 문제가 생기면 컵 하나 집어 들고, 양치 한 번 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기억은 어떻게 뇌에 기록되는 것일까? 하나의 기억은 뉴런들이 흥분하는 하나의 패턴에 대응된다. 수많은 뉴런들이 흥분하는 패턴은 아주 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고, 그렇기 때문에 뇌는 제한된 뉴런을 이용해 많은 기억을 저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이 뉴런들이 흥분하는 패턴을 전기자극을 통해 조작한다면, 거짓 기억을 심는 것도 가능하다. 놀랍고도 무서운 이야기이다.
이 책은 공상과학 영화들이 그리는 미래의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와 지금의 인공지능의 전망을 설명하며 끝난다. 앨런 튜링과 같이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해서 사람의 뇌의 작동방식을 모두 파악해 정확히 같은 동작을 하는 기계를 만들려 한 사람이 있는 반면, 뇌와 컴퓨터를 물리적으로 접속시켜 뇌의 작동방식을 다 파악하지 않고도 성과를 내는 연구자도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아직 사람의 뇌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아무리 많은 빅 데이터로 기계학습을 한 인공지능이더라도 학습한 데이터에서 조금의 변형이 있다면 이 머신은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또한 학습한 머신은 자신의 판단에 대해서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기계는 자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학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응도 하지 못한다. 사람은 한 번 본 것을 총체적으로 영원히 기억하기도 하지만 기계는 절대 그럴 수 없다.
뇌의 기억과 인지 작용을 샅샅이 해부하여 설명하고 더불어 인공지능의 전망과 현황에 대해서 설명한 이 책은 뇌과학과 컴퓨터공학에 모두 걸쳐있다. 또한 그 중에서 특별히 인지 작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외국에서는 뇌인지과학이 이미 익숙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학과 명이 낯설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책으로 뇌인지과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대중을 위해 쉬운 비유와 그림이 첨부된 설명을 통해 뇌인지과학에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쓴 책이다. 뇌과학에 관심이 있거나 인공지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독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