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 (무선 보급판) 디 에센셜 에디션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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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버지니아 울프를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자기만의 방>을 쓴 작가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난해할 것 같고, 심오할 것 같아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디 에센셜> 시리즈로 나온 이 책을 손에 넣고 싶어서 읽기 시작한 버지니아 울프는 상당히 매력적인 작가였다.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았다.

그의 소설 작품도 상당수 실려 있었지만, 이 책의 무게는 버지나아 울프의 산문으로 기울어 있는 듯 하다. 맨 처음에 실린 <유산>이라는 작품도 결말이 상당히 인상 깊었지만, 이 책의 백미는 아무래도 <자기만의 방>인 것 같다.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준비하는 그의 머릿 속 생각을 따라가면 쓴 이 책은, 아주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여성에게 왜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방해받지 않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지 하나씩 짚어준다. 또한 버지니아 울프 이전 시대의 여성 작가들을 조사하고 평가하며, 그의 동 시대 여성 작가들의 작품도 탐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흐름을 읽어내서 조곤조곤 설명해준다.
이 책이 써진 건 1929년이다. 그리고 그는 여성이 어떻게 억압받았는지부터 풀어낸다. 여성은 절대 셰익스피어같은 작품을 쓸 수 없다는 말에 대해서, 그것이 성별의 문제인지, 사회적 억압의 문제인지 당시의 시대상을 설명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 버지니아 울프 이전의 여성 작가들이 처했던 환경을 짚어본다. 아이가 없는 귀족 여성. 그들이 해야 했던 집 안 밖의 이런 저런 많은 일과 반드시 직면해야 했던 남성들의 비난과 조롱, 그리고 그로 인해 그들의 글에서 드러나는 고통과 분노.
이후로 글을 쓰는 여성이 중산층으로 확대되면서, 좀 더 자유롭게 글을 쓰고, 이전 세대보다 조금이나마 해방되는 현상을 짚어준다.



나는 마지막 장을 읽으며 그녀에게 백 년을 더 주자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를 주자, 그녀가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지금 쓴 것의 절반을 빼 버리도록 허용해주자, 그러면 그녀는 조만간 더 나은 책을 쓸 거라고 말입니다. 나는 메리 카마이클이 쓴 <생의 모험>을 서가의 끝에 꽂으며 그녀는 시인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백 년이 지나면 말이지요.
(p. 245)


연간 500파운드는 물론 1929년의 기준이겠지만, 여성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의 글에 전념하게 해 준다. 자기만의 방이 없다면, 하인들이며 가족들에게 지속적으로 방해 받을 것이고, 여성들이 쓸 수 있는 것은 소설에 한정될 것이다.


여러분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그것만이 중요한 일입니다. 그 책이 몇 세대 동안 가치 있을지 아니면 단지 몇 시간 동안만 중요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p. 269)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시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여러분 스스로 충분한 돈을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p. 273)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단조롭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p. 277)



버지니아 울프는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글쓰기를 권하며 <자기만의 방>을 끝맺는다. 사실 글쓰기에 관심이 있어 이런 저런 글쓰기 강의를 듣곤 하는 내게, 그 먼 시간과 거리를 뛰어넘어 버지니아 울프의 응원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난해하고 진지해서 속도가 나지 않을 줄 알았던 그의 산문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 그의 목소리가 위안이 되기도 했고, 충고로 느껴지기도 했으며, 한없는 애정으로도, 응원으로도 느껴졌다.
내가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가 한 것처럼 글을 쓸 수 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나도 버지니아 울프를 따라 자기 자신이 되자고, 쓰고 싶은 것을 쓰자고 중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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