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 -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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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채식주의자>로 국제적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켰던 한강 작가. 그의 또 다른 책 <바람이 분다, 가라> 역시 동리문학상 수상작이다. <채식주의자>와는 다른 주제이지만, 어쩐지 결이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충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정희는 절친한 사이인 인주의 죽음을 맞닥뜨린다. 그것도 새벽 4. 미시령에서 인주의 차는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죽음은 인주와 어울리지 않았다.
먼저 죽었어야 할 사람은 나다.
인주는 내 죽음을 잘 살아 넘겼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슬픔이나 숙연함 따위는 숨기고, 영원히 안으로 숨기고, 겨드랑이에 작은 날개를 감춘 사람 같은 특유의 걸음걸이로 거리를 걸어 내려갔을 것이다. 조금씩 저는 왼다리를 아무도 의식 못할 만큼 활기차게, 지금도 걸어 가고 있을 것이다.
(p. 27)


그 사건 이후 강석원이라는 사람의 연락을 받는다. 그는 그림을 그렸던 서인주를 불멸의 화가로 만들겠다며, 유고전을 준비하고, 인주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주장하는 책을 쓴다. 그러나 정희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인주는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인주의 아이인 민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정희는 온몸으로 강석원을 막는다.
그러나 정희가 강석원의 책을 반박하기 위해 화가 서인주에 대한 책을 쓰는 과정에서 자료 조사를 하는 동안, 정희가 몰랐던 인주가 드러난다. 항상 반짝반짝 빛나는 웃음을 짓던 인주의 어두운 과거와 음습한 뿌리가 드러난다.
정희는 결국 강석원의 정체를 알아낸다. 그리고 그 날. 인주가 눈이 쏟아지는 미시령에 가서 어떻게 죽었으며, 그 때 강석원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전율을 하며 알아낸다.
인주와 정희가 어린 시절 친해지게 된 과정이며, 인주가 육상 선수로 활약하던 이야기, 인주의 삼촌이 그림을 그리던 추억, 그 화실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이야기며, 인주 삼촌이 앓던 병, 삼촌이 인주와 정희를 돌보던 이야기 등 아기자기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한강의 책은 중간 중간 전율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인주 엄마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장면과, 강석원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가장 압권이었다.

그는 미쳤고 동시에 미치지 않았다. 내가 미쳤고 미치지 않은 것처럼. 어떤 생각의 소용돌이가 그의 행위로 이어지는지 추측해내야 한다. 그의 분노, 그의 헌신, 그의 집중력이 움직이는 방향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그가 되어야 한다.
그가 되어야 한다.
(p. 355)


정희와 인주의 오래된 우정. 그들을 차례로 찾아오는 불행. 그리고 인주의 마지막까지. 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책이 아니었음에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한강 작가의 저력이 엿보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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