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 세계적 북 디렉터의 책과 서가 이야기
하바 요시타카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북 디렉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바로 병원, 백화점, 카페, 기업에 서가를 만드는 직업이었다. 볼일을 보러 나가서, 서점이나 서가를 만나면 반가워지곤 해서 한 두 권씩 뽑아 들고 읽곤 했는데, 바로 그런 서가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하바 요시타카는 서가를 만드는 데 있어서, 오프라인 환경인 만큼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선물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서점에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책을 가지고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일을 한다.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 세상에서 몰랐던 책과 우연히 만나는 기회를 일상 속 여기저기에 흩뿌리고 싶어서다.
(p. 9)


그가 만든 서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치매 환자 병원에 있는 도서관이었다. 치매 환자에게 책이 필요할까 싶지만, 그는 그림책, 사진집 등 그냥 아무 데나 펼쳐서 잠시 동안이라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서가에 두었다. 그것도 치매 환자의 기억을 자극할 수 있는, 옛날에 모두가 쓰던 물건을 찍은 사진집 등을 놓아두었다. 그 도서관은 일상에 지친 환자의 가족에게도 환자가 진료를 보는 사이 이런 저런 책을 들추는 달콤한 20분 간의 휴식을 선사했을 것이다.
몸을 씻어도 되는 책. 기노사키 온천에 비치한 책도 흥미있었다. 기노사키에서만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소설의 배경에 기노사키 온천이 들어간다. 또한 놀랍게도 표지를 타월지로 만들고, 본문 용지도 물에 젖지 않는 스톤페이퍼를 사용했다. 그래서 온천을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고 몸도 씻을 수 있다
(!)
북 디렉터의 독서관이나 책에 대한 생각, 책을 향한 열정은 어떨까. 어린 시절, <점프>가 서점에 들어오는 날, 몇 부 안 되는 책이 다 팔리기 전에 사려고 자전거를 타고 논길을 달려 동네 작은 서점에 가는 레이스를 동네 소년들과 했다는 저자는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독서는 몇 시간 공상 속을 여행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읽은 책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라도 마음에 깊이 꽂혀서 피와 살이 되고 하루하루 실제 생활에 작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 아침에 십 분 일찍 일어나려는 마음이 들었다거나 저녁 반찬 레시피를 떠올렸다고 하는, 사소하지만 일상을 만드는 조각에 책이 관계하면 좋겠다.
(p. 12)


그가 한 이색적인 일 중 하나는 도쿄 국제문예 페스티벌을 도운 일이었다. 소설가, 만화가, 번역자, 편집자, 북 디자이너가 등장해 낭독과 대화, 라이브 소설을 펼치는 축제로 세계 삼십 개국, 팔십 개 도시에서 개최되는 책 축제였다. 그는 책 따위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다가가기 위해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좁히는 시가지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백화점 구내방송에서 뜬금없이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삼 분 정도 낭독했다.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주의를 기울여 듣곤 했다. 축제 마지막 날에는 백화점 지하 이 층 매장에서 사전 공지 없이 게릴라 라이브 낭독을 하기도 했다. 이 날의 행사는 성황리에 개최되었으며 낭독을 들은 사람들이 책을 사가기도 했다.
신간 서적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동네 서점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사람들이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그는 마지막 남은 보루처럼 책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애쓰고 있었다
.

독서의 핵심은 많은 책을 독파하는 것도 아니고 서가를 자랑하며 많은 책을 가지런히 장식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내면에 콕 박혀 계속 빠지지 않는 한 권을 만나는 행위다. 그런 당신의 책 찾기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p. 275)


어쩌면 이 시대에는 그 같은 사람들이 좀 더 필요한 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마트폰만 보던 사람들도 자신의 내면에 콕 박히는 책을 만나볼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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