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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안셔스
연여름 지음 / 황금가지 / 2022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성이란 무엇일까. 쉽게 대답할순 없지만 우린 그것이 어떤건지 안다. 나를 진정 인간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들.
표제작 리시안셔스에서 주인 규희는 과거의 인간성이란 타인에게 공감하고 연민하며 함께하려는 태도일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인공신체가 없으니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반려인 진은 그런 모호한 답을 잘 이해할 수 없어하지만 결국 이 작품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인간다운 인물은 진이었다.
이 소설집은 인간이 인간다울수 있는 여러 지점들을 주목한다. 조명받지 못했던 작은 인물들과 그리 열렬할 필요없는 느슨한 관계들 속에서 피어나는 어떤 모호하고 따듯한 감정들을 관찰한다.
반려인과 주인, 자살기도자와 보호사, 안드로이드 승무원과 승객, 트친과 동호회회원, 직장동료, 바텐더와 손님. 굳이 말한마디 섞을 필요도 없는, 그저 한시절 스쳐지나가는 인물정도로만 남을 수 있는 엷은 인연의 끈들이 소박한 불씨를 밝혀 뭉근히 끓여나가는 그 마음의 온도들이 정말 좋았다. 읽는내내 내 마음도 따듯하게 데워졌다.
변두리의 존재를 조명하는 소설이라고 했는데 정말이었다. 반려인과 자살기도자, 안드로이드, 재계약에 실패한 취준생, 좀비증환자, 무명의 음악가와 평범한 직장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바텐더까지. 본인의 인생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순간이 드물 존재들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내는게 먹먹하고 좋았다.
이 소설집은 SF라기보다는 판타지에 더 가까운 작품들도 많았는데 사실 어반판타지 너무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짜 꿈같은 선물이었다.
오프더레코드를 읽으며 분명 소설집의 마지막장을 내려놓았는데 아직 나는 이세계에 잠겨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바텐더씨에게 받은 영롱한 칵테일의 기억이 머리까지 찰랑이는 듯한 느낌. 하필 오늘도 긴소매의 플란넬셔츠를 입기에 적당할 4월이라 거리에서 그리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찾아헤멜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엔과 클로이의 세계에 살고있는 나는 비아패스파인더를 읽으며 어딘가 있을 소난의 세계를 그리며 몽글몽글 희망이 차올랐다. 서로가 서로의 바람을 증명하는 결말. 정말 좋았다.
좀비보호구역 진짜진짜 좋았는데 결말 특히 완전 좋았다. 이후의 이야기 너무 궁금한 소설이었다. 좀비이야기가 이렇게 소박하고 따듯한 전개로 갈거라고 생각해본적 거의 없었는데, 제목부터 독특했던 좀비보호구역 진짜 읽는내내 좀비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글은 제오류는아주심각한것같아요 였다. 안드로이드의 인간을 닮고싶어하는 학습버그가 예전방식이라 폐기해야한다는 말은 조금 놀랍고 서글펐다. 미레이의 오류를 함께 곱씹으며 인간과 닮아서 문제라는 인간들의 모순을 슬퍼했다.
안드로이드, 좀비, 셰이프시프터.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누구보다도 더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아홉편의 소설들을 읽는내내 가슴이 저렸다. 모든글들이 따듯했다. 한동안 작가님의 글속에 깊게 잠길것 같은 기분이다.
황금가지 출판사의 서평단에 선정되어 읽은책으로 주관적인 감상과 생각이 듬뿍 담긴 글입니다. 읽는내내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