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 연습 - 돌기민 장편소설
돌기민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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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지구에 불시착한 식인외계인이라는 소재만 보고 좌충우돌 블랙코미디 정도를 예상했다. 이책은 어느 외계인의 외로운 표류기였다. 팝핑캔디를 예상하고 펼친 책은 비리고 시큼한 냄새가 풍기는 이야기였다.

무무는 성기만 스무개쯤 되는 젠더플루이드로 필요에 따라 신체를 변환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식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데, 지구에 불시착한 그는 인육만을 가장 잘 소화시킬수 있었기때문이다. 그는 데이팅앱을 통해 맛있어보이는 상대를 물색하고 상대의 취향에 맞춰 변환하고 만나서 자고 먹는다.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사회는 거북스러우면서도 흥미롭다. 무무는 이해할수 없는 인간사회의 규범들을 생존을 위해 익히고 체득한다. 무무의 사냥은 은밀해야함으로 그는 눈에띄지않는 결함없는 인간으로 가장해야한다.
다리가 세개인 그는 낯선 이족보행을 익히고 그마저도 인간사회에서 으레 인식하는 성역할에 따라 걷는 방법까지 연습해야한다. 왜냐면 이곳 인간사회는 관습적인 성역할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괴물취급 하기 때문이다. 무무는 기준따윈 없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 기준이 있는 척하는 법을 배운다.

(124~125p)규범은 유리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규범을 떠받들어 떨어뜨리지 않는 이상, 그것은 깨지지 않고 굳건히 유지됩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사기를 치면서 이곳의 생태계에 조금씩 적응해나갔습니다.

(109p)이곳에 불시착하기 전까지는 사냥해서 연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접시 위에 올라간 고기만 상대하면 됐으니까.

(112~113p) 처절한 비명이 제거된 죽음으로 인간과 사물의 경계를 흐려버립니다. 그들이 자신의 죽음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확신하는 한, 나는 그들을 얼마든지 배 속에 집어넣고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 나의 차이를 부각할 때 식육에 대한 부담은 줄어듭니다. 그들이 나와 같다면 난 그들을 못 먹습니다.

창피하게도 나는 비거니즘에 대한 책을 여러권 읽었지만 아직도 육식생활을 청산하지 못했다. 도살장은 내시야밖에 있고 마트엔 예쁘게 손질되어있는 고기들이 반긴다. 동물권에 대한 영상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기굽는냄새만 맡아도 침을 꿀꺽 삼킨다. 무무도 그랬다.

띠지에 박혀있는 가장 전위적인 서사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퀴어와 젠더, 페미니즘, 비거니즘, 연령차별주의, 장애와 신체권을 막론하는 작가의 이야기솜씨를 보고 놀랐다. 외계인 무무의 거침없는 이야기는 분명 껄끄럽고 거북하다. 왜냐면 이 사회가 그렇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마냥 즐겁게만 읽은 소설은 아니지만 인상깊은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근시일내 다시 이 책을 펼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나무 출판사의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읽었고 제 주관적인 감상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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