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미스터리 2022.가을호 - 75호
박광규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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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미스터리를 펼치고 제일 먼저 만날수있는 펴낸이의 말을 읽다보면 이번엔 어떤 부분을 제일 재밌게 읽을까,하며 미리 두근거림을 느끼곤한다. 아 이번엔 소설로 승부를 보는건가!

뭐랄까 장르물은 보통 약속된 재미를 느낄수 있는 믿고먹는 든든한 국밥집같은 느낌이지만, 삼시세끼 국밥만 먹다보면 쉽게 물리곤만다. 그럴땐 정형화된 장르의 규칙과 클리셰를 깨버리는 어떤 작품을 만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번호는 이모든즐거움을 한꺼번에 즐겨보세요! 라고 외치는 듯했다.


여섯편의 단편소설 모두 제나름대로의 독특함으로 무장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구세군과 나의 작은 천사를 가장 재밌게 읽었는데, 개인적으론 망령의 살의도 화자인 보살의 다음 범죄자문이 기다려지는 이야기였다. 오형사와 처음 이렇게 자문을 시작하게 만든 에피소드라든지, 더이상 유명해지면 닥쳐올 살의들 때문에 곤란해진다는 그의 말은 대체 어떤 삶을 살고있는건지 정말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구세군은 근미래SF의 보장된 빨간맛, 마지막 결말까지 딱 마음에 들어서 아 이렇게 끝나야 좋다는걸 알면서도 괜히 나혼자 저세계에 미련이 남아 눈길을 던지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솔직히 이게 마냥 상상속 이야기가 아닐거라는 생각에 조금 착잡해지는 글이기도 했다.

나의 작은 천사는, 나의 작은 천사들을 떠올리게 했던 글이었다. 나의 작은 천사들은 고슴도치였는데 나는 녀석들이 케이지를 탈출해 집밖으로 떠돌 걱정보다는 어딘가 집안의 작은 틈새에서 내가모를 죽음을 겪게될까봐 걱정하곤 했다. 나의 전전긍긍했던 과거의 마음을 담아 열심히 읽었던 소설은 시원하게 통수를 갈기며 같이 동조하며 읽은 나의 마음에도 무참한 스크래치를 만들었지만 꽤재밌는 소설이었다.


북유럽 미스터리를 다룬 이번 특집도 흥미로웠다. 한때 서점가를 점령했던 북유럽 추리소설의 늪에 빠졌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재밌게 읽었다.
항상 재밌게 읽고있는 미스터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연재글도 좋았다. 내가 아주 환장하는것 중 하나인 오컬트를 한국적 미스터리의 장르적 확장과 함께 다뤄 더욱 재밌게 읽었다. 로컬라이징된 한국 오컬트의 흐름을 따라가며 그때 그 우리가 열렬히 읽었던 퇴마록! 그리고 영화 검은사제들과 사바하, 곡성을 분석하며 오컬트가 취하게된 미스터리적 문법의 결과를 쉽게 이해하게 되었다. 아 나도 미스터리 좋아했네? 헤헤😆

DP와 지옥을 기획한 프로듀서의 인터뷰와 이번 특집중 하나였던 작가들의 대담도 재밌었다. 남편과 이혼한 넬레노이하우스같은 삶을 살고싶다는 말에 엄청 웃었다.
항상 계간미스터리의 대미를 장식하는 트릭의재구성 읽을때마다 안굴러가는 머리 굴리느라 두통이 왔었는데 이번호도 역시나 그랬다. 그래도 이번엔 머리에 기름칠이 되었는지 흥미진진하게 트릭을 풀수있었다!

이번호는 특히나 다양한 장르와 주제의 소설들로 무장해서 그런지 휙휙 빠르게 책장이 넘어갔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부쩍 추워진 저녁내내 열심히 계간미스터리를 읽으며, 괜시리 나도 트릭을 풀기위해 애쓰는 탐정이 된것같아 조금은 신나는 가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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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종, 계급 Philos Feminism 2
앤절라 Y.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 arte(아르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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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색하고 방탕한 누구의 성별이 여성으로 바뀌면, 그는 난잡하고 음란한 잡년slut이 되고만다. 특히나 유색인종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는 더욱 견고하고 유구한것이라, 책에서도 나왔듯 저들이 강간해놓고 흑인여성에게 유혹하는 탕녀의 올가미를 씌웠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성적으로 매력넘치고 개방적인 이미지의 히스패닉 여성과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아시안여성까지 다양하게 입맛대로 즐겨볼수 있는 지구촌세상이 되었다. 젠더와 인종 모두 사실상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취급되는데, 보통 우리가 접해왔던 젠더학은 1세계 위주였고 따라서 인종적 측면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었다는 점에서 이책이 더욱 귀하게 다가왔다.
또한 공산당원으로 활동전력이 있는 저자의 경력답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노동자 간, 노동자-노동자 간 젠더인종계급을 다루는 부분들을 읽으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의 확장을 느끼며 탄복했다.

나는 수많은 의문과 대답을 구할수없는 현실때문에 분노에 휩싸였던 몇십년의 시간을 보내고, 고작 십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접해온터라 내가 알고있는건 대부분 백인중산층여성이 기술한 목소리들이었다. 그나마 록산게이와 국내의 저명한 학자들이 아니었다면 그마저도 새하얗기짝이없었을것이다. 그나마 나의 위치를 자각하고있는 지금도 나는 고작 내이야기만이라도 제대로 하면 다행인수준이다. 내가 그나마 말할수 있는건 비혼,삼십대,노동자,월급쟁이,무주택자로서의 페미니즘이다. 내이야기가 아닌 다른 목소리에 나를 얹는다면 그건 그사람들에게 기만일것이다. 백년전의 백인중산층 여성들이 흑인노동자여성들에게 다짜고짜 참정권을 부르짖었던것처럼.

읽는내내 모든 챕터에서 사고의 전환과 함께 대단한 충격을 받았지만, 특히나 나를 놀랍게 만들었던건 12장-인종주의,출산통제,재생산권 과 13장-가사노동의 다가오는 종말 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도 출산통제는 여성의 당연한 자기신체통제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50년전 흑인여성들에게는 오히려 대단히 끔찍한 인종차별행위로 작용했다는게 충격이었다. 출산통제라는 명목하에 본인이 의도하지않은 불임수술을 자행한 백인들을 보며 사실상 이게 홀로코스트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싶은 생각과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장려정책이라는 미명하 진행되는 주먹구구정책들을 떠올렸다.

📎유색인종 여성들은 임신중지권에 찬성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임신중지를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수많은 흑인과 라틴계 여성이 임신중지에 의지하면서도, 임신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새 생명을 이 세상에 내놓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비참한 사회적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나자신도 타인의 가사노동에 빚지고살면서도, 보통 선진국에서 보편적으로 자행되는 개발도상국 이주여성노동자에 대한 가사노동전담과 대리모산업등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살아왔었는데, 오히려 13장에서 데이비스가 가사노동의 산업화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시각에 눈을뜨게 되었다. 흔히들 가사노동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월급으로 환산하면 얼마다,얼마다 떠들어대지만 결국 정말 이 노동의 값어치를 매기게되면
📎주부에게 지불되는 정부의 급여는 이런 가내 노예제를 더욱 정당화할 것이다.

읽는내내 데이비스의 남다른 시선과 통찰에 감탄하며 나도 새롭게 눈을 뜨는듯했다. 그러나 정희진 박사의 해제에도 언급되었듯, 고전은 경전이 아니다. 40여년전 출간한 책속의 흑인여성이 아닌 20년대를 살아가는 아시안여성으로서 느끼는 나의 페미니즘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다. 어쨌든,
📎이 책의 요지는 여성이 흑인, 노예, 가난한 사람일 때 여성성의 기준과 페미니즘 이론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모두가 서로의 보편성과 차이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것, 그것에서부터 오늘의 페미니즘이 한걸음 나아갈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도서지원을 통해 훌륭한 책을 읽고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르테 출판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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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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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저물어가지만 뒤늦게라도 오늘의 운세를 한번 확인해볼까.
머리맡에 놓여있던 책을 들고 아무페이지나 펼쳐본다. 오늘은 7월 17일이니까 열일곱번째 줄이 오늘의 운세다.

[그러고는 낮에는 보이지 않던 변화들이 연이어 다가오며, 하나의 질서를 분명히 하는 듯하다.]

심오하군.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다행인 것은 종이책에는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가 함께 있다는 사실! 이번엔 오른쪽 페이지 열일곱번째줄을 확인한다.

[그가 건초 일은 제대로 할거야]

그가 누군데. 애매모호한 운세다. 오늘이 다 저문 다음에 확인해서 다행이다. 아침에 봤더라면 뭔소린가 싶어 더 심란한 하루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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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읽고나니 나도 강치우처럼 괜스레 책점을 치고싶어졌다.
이렇게 매일 책점으로 오늘의 운세를 점치고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좋아하는 까칠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치우의 정체는 사실 딜리터다.

딜리팅은 물건이나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 기술이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딜리터라고 하는데 보통 물건이나 흔적 따위를 지우지만 소수의 하이클래스들은 사람조차 지워버릴수 있다…그리고 강치우는 자신의 연인을 여기 이세상에서 지웠다, 라는 설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순식간에 다 읽었고 말초적인 재미로 꽉찬 소설이었다. 마치 영화를 보듯 망막아래로 씬들이 슉슉 지나갔다. 작가의 전작인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에서도 다뤘던 딜리팅이라는 흥미로운 초능력 설정은 읽는내내 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물건을 지우고 싶었을까 하는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

책을 다읽고 딜리팅의뢰서를 앞에두고서 나는 무엇을 지우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물건을 지우자니 나쁜 기억에는 항상 즐거운 추억도 같이 얽혀있어 차마 없애버리기 아깝다. 사실 나는 원래도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기억이나 흔적 자체를 지우자니 그조차도 왠지 아깝다. 내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을 지워낸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지금과는 분명 다른 모습일거라 생각하니 언짢다. 이것도 기각.
사람은…지우고 싶은 놈들이 너무많아서 문제다. 그런식으로 한놈한놈 말소시키다보면 나도 언젠간 누군가에게 말소될게 뻔히 보이는 인간상이기 때문에ㅎ… 결국 의뢰서는 쓰다가 멈추고 말았다.

이대로 보내기는 너무너무 아쉬운 이야기다. 이왕 한번 썼던 설정 다시 쓰셨으니 연작으로 계속 달려달라고 하면 욕심이려나ㅎ
순식간에 달리고나서 마무리된 강치우와 소하윤의 결말이 꽤 맘에 들었지만 조금 아쉬웠다. 짧아…더줘…더쓰세요…

나는 강치우보다 조이수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지우고 덮는 사람보다는 모든것을 보고 찾아내는 사람이 더좋았다. 레이어와 레이어 사이를 헤집고다닐 픽토르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다. 그리고 일단 낮밤없이 잠못자는 퀭한 얼굴의 선글라스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여성…설정과다로 너무 좋아서 정신이 혼미하다. 그런 그가 보는 세계를 함께 따라가고 싶다.
탐정 배수연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그가 꾸려나가는 실종자 가족모임인 Missing & Finding의 결성계기도 알고싶고, 왠지 결국 언젠간 딜리터라는 존재들을 알아차릴것 같은 그의 앞으로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결론은 후속작의 후속작도 쓰셨으면 하는게 독자의 심정…. 작가가 밝혀지지 않았던 가제본 읽었을때부터 전작을 읽었어서 김중혁 작가임을 짐작했었는데 역시나 싶은 글빨과 흥미로운 이야기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여름밤 흥미진진하게 읽을만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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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ntbooks_official 의 가제본 서평단의 활동으로 읽고 제감상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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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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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직장 기준으로 공동간병실의 1일간병료는 75000원, 직장과 연계된 개인간병업체의 경우 환자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십만원 내외다. 친척할머니가 VRE로 접촉격리를 했을때 간병인분께 십오만원을 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 보통 한달 간병료가 최소 이삼백만원 남짓, 평범한 직장인의 월급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가족의 돌봄노동은 비용지불은커녕 당연한 일로 취급된다.
병원 특성상 고령의 환자가 많고 거동이 어려워 보호자가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배우자(95%쯤 아내), 딸, 며느리. 구순을 앞둔 남편의 간병을 위해 상주할수 있는 사람이 팔순의 아내밖에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만큼 돌봄노동이라는 것이 고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비용 지불에 대해선 국가든 개인이든 인색해질수 밖에 없는 현실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미성년자가 베드리든 환자를 돌보느라 자신의 일상을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있어서는 안되는일인데, 시안이 6년째 돌봄노동을 하며 또래의 평범한 일상을 포기할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문제의 시작이다. 소정의 보조금과 주변사람들의 공치사가 무슨의미가 있을까. 당장 어머니가 쓸 기저귀값만 한달에 족히 십만원은 들어갈텐데. 시안은 그 보조금마저 자신의 옷,간식,문제집이 아닌 가족의 생필품과 엄마의 간병용품에 쓴다.

불행함에 있어 경중이 어디있겠냐만은, 나는 성장소설이라고 해서 펼친 이 소설에 그때 그나이 또래의 흔한 고민들로 가득한 풋풋한 행불행의 이야기를 생각했지, 이런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무겁고 힘든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시안의 거대한 불행 앞에서, 해원의 평범한 불행은 작아지고 마치 없는것처럼 느껴지지만 손톱밑가시도 통증은 통증인걸. 시안의 부탁을 제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들어주려고 애쓰며 용서를 구하는 해원의 모습에 코가 시큰해졌다. 정말이지 애초에 이 거대한 불행이 어린아이들을 짓눌러서는 안되는데.

6년동안 저의 삶을 온전히 엄마에게 쏟느라 일상이 매몰되었던 시안이 다시 해원을 만나며 좋은 방향으로든 좋지못한 방향이든 조금씩 살아나는 것 같아 보는내내 울컥하다가, 결국 스스로 관계를 끊어냄으로써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진짜 뭉개진 크림빵처럼 한참을 울었다.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나면 표지 속의 양지바른곳에 나와 햇빛을 손으로 가리고 있는 시안의 앞날이 영원히 눈부신 햇살만 가득하길 간절히 바라게되었다.

청소년문학이라고 한정짓기에는 더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글이다. 이백여페이지의 짧은 성장소설이 던지는 화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코로나 전과 후의 우리의 일상이 영영 다를수 밖에 없듯이, 이소설을 읽기전과 읽은 후가 다를수밖에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changbi_insta @switch_changbi 의 스위치서평단 이벤트를 통해 책을 읽고 제 감상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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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비밀계정 - 주눅 든 나를 일으켜줄 오늘의 편지
김도치.서반다 지음 / 이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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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내가 빚지고있는 사람이 참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적단 불과 단님, 우리의 앞길을 먼저 걷고있는 멋진 여성 선배들, 이번에 펜타에서 여성슬램존을 꾸린 불여우단 정말정말 좋았지… 그리고 읽는페미님.
가끔 이유모를(사실 이유안다) 무력감이나 우울감이 들때면 내게 부채감을 안겨주는 고마운 이들을 떠올리며 다시 기운을 얻곤한다.

91년생의 INTJ인 나와 동갑이자 ENTP인 읽는페미님과의 거리는 어느정도일까. 같은 시대를 살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하루하루 밥벌이 고달프다 생각하면서도 남는시간엔 책을 읽고. 나는 책을 읽고나서 이런저런 생각만 하고 기분은 가라앉고 혼자 주저앉아 골똘히 다시 생각만 했는데, 읽는페미님은 글을 쓰고 게시글을 올리고 거지같은 놈들의 말에 하나하나 대꾸하고 블락하고 누가 밀어내도 다시 일어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읽는페미님은 별것아닌 일이라했지만 몇년째 꾸준히 글을 읽고쓰며 목소리를 내는 그의 계정을 보면 나와 우리모두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그건 정말이지 대단한 일인걸.

읽는페미 김도치님과 동료 서반다님의 서간문을 모아펴낸 이책은 부제-주눅든 나를 일으켜줄 오늘의 편지-에 걸맞게 읽는내내 내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하고 응원하는 느낌의 글이었다. 우린 잘못되지 않았어, 우린 옳은 길을 가고있어.

여성의 모든 신체부위를 상품화하는 세상에서 나의 의식조차 온전할수 없는데, 텔레비전을 보며 가족과 조잘조잘 대화하다가도 화면속 어떤인물에 대한 가족의 무신경한말에 나혼자 불편한 마음으로 날선 대꾸를 하다가 뒤에선 어느순간 맘속으로 ‘그래도 건강을 위해선 저정도는 아니지않나’하며 누군가를 평가하는 나, 처진 두뺨을 한껏 위로 잡아당기며 남들처럼 이제라도 병원에 다녀봐야 하나 하다가 화들짝 그생각을 지워보는 나, 며칠간의 식도락 여행을 다녀오고 집에 돌아와 체중계에 슬그머니 올라서서 당분간 식단관리를 해야하나 고민하는 내가 하나둘 차곡차곡 죄책감이 되어 쌓이고쌓여 나를 짓누른다.

식폭행이라는 말을 쉽게하는 너, 피부과에 큰돈을 결제했다고 하는 너, 소개팅을 위해 가방을 렌탈했다고 하는 너, 아직도 만나는 남자 없냐고 만날때마다 물어보는 너.
우린 일년에 두세번은 꼭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게 대학서부터 지속되었던 너와 나의 오랜 습관이었고, 기쁨이었다. 나는 예전에 우리의 개같이 힘든 이 직업이 그래도 우리를 재정적으로 오롯이 서게하는 직업이라 좋다고 썼다. 나는 이렇게 영원히 혼자살거니까 언제든지 같이 룸쉐어 하고싶으면 함께 살자고도 썼다. 해마다 너에게 보낼 선물상자를 꾸리며 그해 내가 가장 재밌게 읽었던 소설과 함께 슬쩍 네가읽을만한 페미니즘 인문서도 넣곤했다. 물론 기대했지만 넌 읽지않은것 같았다. 언니의 비밀계정을 다읽고 너에게 줄 책을 한권더 샀다. 이번에는 꼭 읽어봐, 너랑 나처럼 친구끼리 편지를 주고받은걸 모아서 책을냈대.

읽는내내 힘이났고 정말좋았는데 막상 읽으면서 들었던 이생각저생각을 쓰다보니 우울한 감상문이 나오고말았다.
그래도 진심으로 네가 꼭 이책을 읽어줬으면 좋겠다. 어느땐 연락두절에 내킬때만 답장하고 말주변도 없이 툭툭 던지는 모난 말만 하는 나에게 항상 먼저 연락하고 네가 참좋다고 말해주는 네가 나도 참 좋으니까. 내가 좋아하는걸 너도 같이보고 함께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친구야.



읽는페미님의 인스타그램 서평이벤트를 통해 책을받고읽고 제감상을 썼습니다. 정말 돈주고 사서 읽어야되는데 게시글에 응원댓글달고 책을 받아버려서 민망하고 죄송했어요. 대신 칭구칭긔들에게 선물로 뿌리려고 책주문을 했지,,,, 읽는페미님 항상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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