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저물어가지만 뒤늦게라도 오늘의 운세를 한번 확인해볼까.머리맡에 놓여있던 책을 들고 아무페이지나 펼쳐본다. 오늘은 7월 17일이니까 열일곱번째 줄이 오늘의 운세다.[그러고는 낮에는 보이지 않던 변화들이 연이어 다가오며, 하나의 질서를 분명히 하는 듯하다.]심오하군.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다행인 것은 종이책에는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가 함께 있다는 사실! 이번엔 오른쪽 페이지 열일곱번째줄을 확인한다.[그가 건초 일은 제대로 할거야] 그가 누군데. 애매모호한 운세다. 오늘이 다 저문 다음에 확인해서 다행이다. 아침에 봤더라면 뭔소린가 싶어 더 심란한 하루가 되었을 것이다. ...책을 다읽고나니 나도 강치우처럼 괜스레 책점을 치고싶어졌다. 이렇게 매일 책점으로 오늘의 운세를 점치고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좋아하는 까칠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치우의 정체는 사실 딜리터다.딜리팅은 물건이나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 기술이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딜리터라고 하는데 보통 물건이나 흔적 따위를 지우지만 소수의 하이클래스들은 사람조차 지워버릴수 있다…그리고 강치우는 자신의 연인을 여기 이세상에서 지웠다, 라는 설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순식간에 다 읽었고 말초적인 재미로 꽉찬 소설이었다. 마치 영화를 보듯 망막아래로 씬들이 슉슉 지나갔다. 작가의 전작인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에서도 다뤘던 딜리팅이라는 흥미로운 초능력 설정은 읽는내내 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물건을 지우고 싶었을까 하는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책을 다읽고 딜리팅의뢰서를 앞에두고서 나는 무엇을 지우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물건을 지우자니 나쁜 기억에는 항상 즐거운 추억도 같이 얽혀있어 차마 없애버리기 아깝다. 사실 나는 원래도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그렇다고 기억이나 흔적 자체를 지우자니 그조차도 왠지 아깝다. 내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을 지워낸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지금과는 분명 다른 모습일거라 생각하니 언짢다. 이것도 기각.사람은…지우고 싶은 놈들이 너무많아서 문제다. 그런식으로 한놈한놈 말소시키다보면 나도 언젠간 누군가에게 말소될게 뻔히 보이는 인간상이기 때문에ㅎ… 결국 의뢰서는 쓰다가 멈추고 말았다.이대로 보내기는 너무너무 아쉬운 이야기다. 이왕 한번 썼던 설정 다시 쓰셨으니 연작으로 계속 달려달라고 하면 욕심이려나ㅎ 순식간에 달리고나서 마무리된 강치우와 소하윤의 결말이 꽤 맘에 들었지만 조금 아쉬웠다. 짧아…더줘…더쓰세요…나는 강치우보다 조이수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지우고 덮는 사람보다는 모든것을 보고 찾아내는 사람이 더좋았다. 레이어와 레이어 사이를 헤집고다닐 픽토르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다. 그리고 일단 낮밤없이 잠못자는 퀭한 얼굴의 선글라스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여성…설정과다로 너무 좋아서 정신이 혼미하다. 그런 그가 보는 세계를 함께 따라가고 싶다.탐정 배수연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그가 꾸려나가는 실종자 가족모임인 Missing & Finding의 결성계기도 알고싶고, 왠지 결국 언젠간 딜리터라는 존재들을 알아차릴것 같은 그의 앞으로의 이야기도 궁금하다.결론은 후속작의 후속작도 쓰셨으면 하는게 독자의 심정…. 작가가 밝혀지지 않았던 가제본 읽었을때부터 전작을 읽었어서 김중혁 작가임을 짐작했었는데 역시나 싶은 글빨과 흥미로운 이야기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여름밤 흥미진진하게 읽을만한 소설!...@giantbooks_official 의 가제본 서평단의 활동으로 읽고 제감상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