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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내가 근무하는 직장 기준으로 공동간병실의 1일간병료는 75000원, 직장과 연계된 개인간병업체의 경우 환자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십만원 내외다. 친척할머니가 VRE로 접촉격리를 했을때 간병인분께 십오만원을 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 보통 한달 간병료가 최소 이삼백만원 남짓, 평범한 직장인의 월급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가족의 돌봄노동은 비용지불은커녕 당연한 일로 취급된다.
병원 특성상 고령의 환자가 많고 거동이 어려워 보호자가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배우자(95%쯤 아내), 딸, 며느리. 구순을 앞둔 남편의 간병을 위해 상주할수 있는 사람이 팔순의 아내밖에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만큼 돌봄노동이라는 것이 고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비용 지불에 대해선 국가든 개인이든 인색해질수 밖에 없는 현실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미성년자가 베드리든 환자를 돌보느라 자신의 일상을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있어서는 안되는일인데, 시안이 6년째 돌봄노동을 하며 또래의 평범한 일상을 포기할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문제의 시작이다. 소정의 보조금과 주변사람들의 공치사가 무슨의미가 있을까. 당장 어머니가 쓸 기저귀값만 한달에 족히 십만원은 들어갈텐데. 시안은 그 보조금마저 자신의 옷,간식,문제집이 아닌 가족의 생필품과 엄마의 간병용품에 쓴다.
불행함에 있어 경중이 어디있겠냐만은, 나는 성장소설이라고 해서 펼친 이 소설에 그때 그나이 또래의 흔한 고민들로 가득한 풋풋한 행불행의 이야기를 생각했지, 이런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무겁고 힘든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시안의 거대한 불행 앞에서, 해원의 평범한 불행은 작아지고 마치 없는것처럼 느껴지지만 손톱밑가시도 통증은 통증인걸. 시안의 부탁을 제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들어주려고 애쓰며 용서를 구하는 해원의 모습에 코가 시큰해졌다. 정말이지 애초에 이 거대한 불행이 어린아이들을 짓눌러서는 안되는데.
6년동안 저의 삶을 온전히 엄마에게 쏟느라 일상이 매몰되었던 시안이 다시 해원을 만나며 좋은 방향으로든 좋지못한 방향이든 조금씩 살아나는 것 같아 보는내내 울컥하다가, 결국 스스로 관계를 끊어냄으로써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진짜 뭉개진 크림빵처럼 한참을 울었다.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나면 표지 속의 양지바른곳에 나와 햇빛을 손으로 가리고 있는 시안의 앞날이 영원히 눈부신 햇살만 가득하길 간절히 바라게되었다.
청소년문학이라고 한정짓기에는 더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글이다. 이백여페이지의 짧은 성장소설이 던지는 화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코로나 전과 후의 우리의 일상이 영영 다를수 밖에 없듯이, 이소설을 읽기전과 읽은 후가 다를수밖에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changbi_insta @switch_changbi 의 스위치서평단 이벤트를 통해 책을 읽고 제 감상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