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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종, 계급 ㅣ Philos Feminism 2
앤절라 Y.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 arte(아르테) / 2022년 9월
평점 :
호색하고 방탕한 누구의 성별이 여성으로 바뀌면, 그는 난잡하고 음란한 잡년slut이 되고만다. 특히나 유색인종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는 더욱 견고하고 유구한것이라, 책에서도 나왔듯 저들이 강간해놓고 흑인여성에게 유혹하는 탕녀의 올가미를 씌웠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성적으로 매력넘치고 개방적인 이미지의 히스패닉 여성과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아시안여성까지 다양하게 입맛대로 즐겨볼수 있는 지구촌세상이 되었다. 젠더와 인종 모두 사실상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취급되는데, 보통 우리가 접해왔던 젠더학은 1세계 위주였고 따라서 인종적 측면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었다는 점에서 이책이 더욱 귀하게 다가왔다.
또한 공산당원으로 활동전력이 있는 저자의 경력답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노동자 간, 노동자-노동자 간 젠더인종계급을 다루는 부분들을 읽으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의 확장을 느끼며 탄복했다.
나는 수많은 의문과 대답을 구할수없는 현실때문에 분노에 휩싸였던 몇십년의 시간을 보내고, 고작 십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접해온터라 내가 알고있는건 대부분 백인중산층여성이 기술한 목소리들이었다. 그나마 록산게이와 국내의 저명한 학자들이 아니었다면 그마저도 새하얗기짝이없었을것이다. 그나마 나의 위치를 자각하고있는 지금도 나는 고작 내이야기만이라도 제대로 하면 다행인수준이다. 내가 그나마 말할수 있는건 비혼,삼십대,노동자,월급쟁이,무주택자로서의 페미니즘이다. 내이야기가 아닌 다른 목소리에 나를 얹는다면 그건 그사람들에게 기만일것이다. 백년전의 백인중산층 여성들이 흑인노동자여성들에게 다짜고짜 참정권을 부르짖었던것처럼.
읽는내내 모든 챕터에서 사고의 전환과 함께 대단한 충격을 받았지만, 특히나 나를 놀랍게 만들었던건 12장-인종주의,출산통제,재생산권 과 13장-가사노동의 다가오는 종말 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도 출산통제는 여성의 당연한 자기신체통제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50년전 흑인여성들에게는 오히려 대단히 끔찍한 인종차별행위로 작용했다는게 충격이었다. 출산통제라는 명목하에 본인이 의도하지않은 불임수술을 자행한 백인들을 보며 사실상 이게 홀로코스트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싶은 생각과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장려정책이라는 미명하 진행되는 주먹구구정책들을 떠올렸다.
📎유색인종 여성들은 임신중지권에 찬성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임신중지를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수많은 흑인과 라틴계 여성이 임신중지에 의지하면서도, 임신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새 생명을 이 세상에 내놓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비참한 사회적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나자신도 타인의 가사노동에 빚지고살면서도, 보통 선진국에서 보편적으로 자행되는 개발도상국 이주여성노동자에 대한 가사노동전담과 대리모산업등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살아왔었는데, 오히려 13장에서 데이비스가 가사노동의 산업화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시각에 눈을뜨게 되었다. 흔히들 가사노동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월급으로 환산하면 얼마다,얼마다 떠들어대지만 결국 정말 이 노동의 값어치를 매기게되면
📎주부에게 지불되는 정부의 급여는 이런 가내 노예제를 더욱 정당화할 것이다.
읽는내내 데이비스의 남다른 시선과 통찰에 감탄하며 나도 새롭게 눈을 뜨는듯했다. 그러나 정희진 박사의 해제에도 언급되었듯, 고전은 경전이 아니다. 40여년전 출간한 책속의 흑인여성이 아닌 20년대를 살아가는 아시안여성으로서 느끼는 나의 페미니즘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다. 어쨌든,
📎이 책의 요지는 여성이 흑인, 노예, 가난한 사람일 때 여성성의 기준과 페미니즘 이론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모두가 서로의 보편성과 차이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것, 그것에서부터 오늘의 페미니즘이 한걸음 나아갈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도서지원을 통해 훌륭한 책을 읽고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르테 출판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