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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평점 :
진짜진짜진짜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읽는내내 계속 페이지를 접어대다가 리뷰를 쓰기전에 다시 접은 페이지만 펴서 읽었더니 거의 책을 다시 읽는 수준… 정말정말 좋았다.
한해의 마지막은 항상 우리를 들뜨게 만든다. 정작 나의 크리스마스는 대개 고요하지만 그냥 그 설렘과 따스한 열기가 좋다.
작가님의 말마따나 먹고 사랑하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일년을 닫는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어서야 잠시 전할 수 있는 작지만 결코 의미는 작지 않을 서로의 진심. 정말 좋았다. 일곱 편의 소설속 마냥 행복한 연말은 아닌 그들을 보면서도 마음 한켠은 따듯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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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부터 그냥 호두처럼 살기로 했던 것 같아. 그래도 살다보면 가시박 줄기들이 엉겨서 큰맘 먹고 매번 잘라내야 해. 그래야 산다.”(236p)
📎”이상하지. 당신 개 좀 보자고 해서 사람들을 만나면 자꾸 내 얘기를 듣게 돼. 나라는 인간이 분명해져.”(249p)
당신개좀안아봐도될까요를 읽으며 세미의 마음을 생각했다. 사비와 키위가 무지개다리를 건넌지 반올림하면 십년인데도, 아직도 가끔 늦은밤 귀가할때면 신나게 쳇바퀴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을때가 있다. 고슴도치도 tv소리 없는 조용한밤 복도를 걸으면 토독토독하는 하찮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데, 늦게까지 깨어있는 밤이면 종종 케이지를 탈출해 내방으로 오던 녀석들이 그립다. 이럴줄 알았으면 사진이나 많이 찍어둘걸 그랬다. 내기억속엔 아직도 전기담요속에서 녹은 치즈같이 퍼져있던 녀석들이 눈에 선한데.
오래 아팠던 사비와 기색도 없이 홀연히 무지개다리를 건넌 키위 모두 고슴도치 치고는 제법 오래살았다 했지만, 초등학교 입학도 못했는데 뭐가 호상이야. 나도 세미의 엄마처럼 그렇게 생각했다. 시애처럼 나도 내가 너무 미웠고, 시애가 세미에게 건넨 설기처럼 살라는 위로에 괜시리 내안의 응어리까지 풀리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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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정말 어떠한지를 곰곰이 따져보는 이 밤은 어떤 용서도 구원도 ‘수거’도 필요하지 않은 그저 흔한 은하의 크리스마스였다.(64p)
암투병후 고독을 곱씹던 은하가 크리스마스 밤 조카와 안부를 주고받는 어느 따듯한 성탄절 밤과 상한 사람 곁에는 있지말라던 할머니의 말을 떠올리는 한가을의 나이트 오프날 크리스마스 아침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당신개…다음으로 정말 좋았던 월계동옥주 를 읽으며 내안의 어떤 호수를 떠올리기도 했다.
📎베이징에 돌아온 뒤로도 옥주의 날들은 그리 평안하지는 않았다. 자기 자신이 완전히 볼품없는 인간이 된 듯해 좌절했고 사람들과는 늘 가까워졌다 멀어지며 오해를 쌓아갔다. 그래도 그해 예후이와 함께 보았던 호수를 생각하면, 세상 어디에서는 호숫물로 등잔을 밝힐 수도 있다는 얘기를 기꺼이 믿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상심이 아물면서 옥주는 옥주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금 월계동 옥주로, 속상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못난 자신이 갸륵해질 때까지 걷는 중랑천의 흔하디흔한 사람으로.(136p)
하바나눈사람클럽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이어질 진희와 찬성의 재회를 상상해보기도, 막내작가 소봄처럼 여덟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크게 울음을 터트리는 내 술꾼 친구도 생각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연작의 시작이자 끝인 크리스마스에는을 읽으며 우리가 서로 맞닿아 이루는 패치워크의 무늬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작은 궁금증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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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난 이번 크리스마스 아침에 짜증을 낼것이다. 전날 친구를 만나고 늦은 시간까지 놀다가 겨우 잠들고 출근을 위해 일어난 어스름한 새벽부터 짜증과 졸음이 덕지덕지 묻어있을테고, 나는 일하고 있는데 누구는 왜 신나게 놀고있는거야 원망스러워 하다가, 그래도 역시 남들 노는날에 느긋하게 일하는게 낫지하며 수긍하고 근무하다가, 신난다 크리스마스 저녁이다! 하며 즐겁게 퇴근하겠지. 올한해도 이렇게 짜증과 즐거움과 무료한 순간순간이 모여 이렇게 지나간다. 이번 크리스마스 저녁에는 이 책을 들고 어느 한적한 카페로 기어들어가야지, 그리고 내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모두다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라고 축복해야겠다. 왠지 크리스마스는 그러고싶은 날이니까.
스위치창비의 가제본이벤트로 책을 제공받고 읽고 제 감상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