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의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존 롤스(John Rawls)정의론이 생각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의지향적 도덕성과 정의로운 공동체를 주장한 콜버그(Kohlberg)가 생각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어린 시절 즐겨보던 만화에서 자주 나오는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그럴듯한 대사를 읊조리며 악을 제압하는 멋진 주인공의 모습이 떠오르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와 저자인 마이클 샌델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렸을 적 즐겨보던 만화에서의 정의는 단순했다. 주인공은 정의의 편이었고, 악당은 말 그대로 악의 편이었다. 정의의 사도는 고난을 겪을 때도 있지만 결국은 언제나 승리했다. 선과 악의 구분도 간단했다. 악의 무리로부터 정의를 지켜내는 주인공은 항상 절대적인 선이고, 적은 절대적인 악이었다. 하지만 만화와는 달리, 현실에서의 정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의 정의는, 때론 선과 선이 부딪히기도 하고 악과 악이 부딪히기도 한다. 선과 선을 놓고 최선을 찾아야 할 때도 있고, 악과 악 중에서 차악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때론 선과 악의 적절한 타협도 필요하다. 아니, 이쯤 되면 이미 이니 이니 하는 것의 상대적 구분조차 모호하다. 만화와는 달리, 복잡하고 다원화된 현실 사회에서의 정의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우리 사회에서 정의를 말하면 비웃음을 샀다. 심지어, 가장 순수하다는 청년학생들조차 정의를 말하지 않았다. 때로 진지하게 정의에 대해 이야기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그래 너 잘났다라거나 나는 관심없어’, ‘어차피 이상일 뿐이지라는 냉소적인 말 뿐이었다. 그런 어려운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 화제를 돌리기에 바빴던 그런 때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정부’ 10년을 거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우리 사회는 부쩍이나 정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느니, ‘경제정의가 땅에 떨어졌다느니 하는 말들은 만화 속에 있던 정의란 말을 현실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포퓰리즘사회정의의 논란 속에서, 사람들은 정의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제목부터 정면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이 책은, 하버드대학교에서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로 꼽힌다는 광고 문구까지 더해져 순식간에 누구나 한번 쯤 읽고 싶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기 위해 크게 공리주의, 즉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관점과 자유주의의 관점, 그리고 미덕의 관점, 이렇게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들을 들어 공리, 자유, 미덕의 관점에서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해볼 수 있게 이끌어간다. 독자가 어떤 견해를 가졌든 샌댈은 멋지게 독자를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린다. 독자는 당연하다라고 생각했던 기존의 사고방식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어느새 샌델이 이끌어 가는대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있고 철학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마치 풀릴 듯 풀릴 듯 풀리지 않는 퍼즐처럼, 정의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성찰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정의에 대해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 정의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보고 싶은 사람, 또는 자신의 견해에 절대적인 자신을 갖는 사람, 그것도 아니면 세계적인 인재들이 모여 있다는 하버드대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강의로 꼽히는 강의를 간접적으로나마 한 번 들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망설이지 말고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단, ‘정의란 무엇인지를 책을 통해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이 책은 물음표로 시작해서 느낌표로 끝나는 책이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런 저런 논리와 근거를 들어 정의란 이것입니다라고 답을 내려 주는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물음표로 시작해서 물음표로 끝나는 책이다. ‘정의라고 하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이리 저리 살펴보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가게 하는 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마치 탐정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정의의 다양한 면모를 하나 둘씩 찾아가는 지적 유희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마이클 샌델이라고 하는 뛰어난 교수이자 철학자의 안내가 있어 그 과정은 그렇게 혼란스럽지 않다.

 책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서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와 시장주의, 칸트와 존 롤스의 자유주의적 평등주의까지 정의에 관한 철학들을 두루 살펴보면서 정의가 무엇인지 세밀히 탐구할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마지막에는 정의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살짝 언급하며 마무리하고 있다. 만약 저자의 생각을 읽고 나서도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거나, 저자의 생각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고 빈틈이나 잘못 된 곳은 없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면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런 책이다.


 누군가는 쉽게 얘기할지도 모른다. 정치에서의 정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고, 경제에서의 정의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용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다면, 그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 고민해 오진 않았을 것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논리에서는 희생된 소수의 행복은 고려되지 않는다. 기업경제가 아닌 국가경제에서는 최소 비용 최대효용의 논리로는 책임질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최소의 비용으로 낸 최대의 효용이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집중되는 경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정의논리와 충돌하기도 한다.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내 일이 아니라며 정치인들에게만 맡겨 놓을 일도 아니다. 스스로 삶을 결정하는 문제다. 내 삶과 직결되는 문제인 사회정의를 소수의 정치인이나 권력층의 논리에만 맡겨놓을 때, 정의는 땅에 떨어지고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찬 사회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제, 스스로 정의를 찾을 때다.

 우리나라처럼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정치의 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정치적이란 말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어감이 실려 있다. 학생회도, 공무원도, 교사도, 종교도 모두 비정치적이길 요구한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그 주체가 정당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다. 정치적 문제에 대해 일상적으로 토론하고 의견을 표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진보보수에 대해 자기 정체성을 얘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치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수준이 아니라, 이건 거의 혐오에 가깝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이러한 불신과 혐오가 이번 대선에서 정치의 길을 걸어오지 않은 새로운 후보에 대한 관심으로 표출되고 있다. 서평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말할 생각은 없지만,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개인과 조직이 철저하게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자기 삶의 문제를 결정하는 문제이며, 공동체의 운명을 실현하는 가장 큰 장이다. 모든 사람이 철저하게 정치적이 될 때, 우리 정치는 훨씬 발전할 것이고, 우리 삶에 더 가까운 정치가 실현될 것이다. 각자가 생각한 정의에 따라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고, 서로 토론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면서 개인과 국가의 운명을 함께 결정해나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정치가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민주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정의에 대해 깊게 고민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국 개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가치관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같다. 결국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로 갈 것인가 ''로 갈 것인가를 결정해주는 좌우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어떤 철학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고 반동적인 철학일 수도 있고, 어떤 철학은 시대를 앞서가는 혁명적인 철학일 수도 있다. 자신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일관된 철학으로 정립하는 것, 이것이 바로 개개인의 정의. 결국 정의란 무엇인가의 답은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수만큼 많을 것이다.

 서평을 마치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정의를 짧게 적어보려 한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란 구성원들의 개인적 정의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기에 개인의 가치관은 정의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사회는 개인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사회정의에 대해서는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합의의 전제는 자유롭고 평등함을 전제로 한 충분한 토론과 설득이다. 현대 사회에서 얘기하는 숙고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EBS에서 제작한 마이클 샌델의 실제 수업 모습을 담은 영상을 찾아봤다. 하버드 대학교의 수업을 직접 듣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들게 하는 영상에서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들에 자신의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정리해서 토론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그런 수업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수업이었다. 이 모습은 교육적으로도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그런 열정적이고 흥미진진한 수업을 책으로, 영상으로 체험하게 해준 마이클 샌델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정의롭지 못한 시대에 사는 우리가, 이제 정의를 외칠 때이기에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어려워 보인다고 망설이지 말라. 시간이 없다고 외면하지 말라.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철학의 소중함을 깨닫고 정의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인생의 가치관을 세우는 가장 중요하고도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 '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을 찌르는, 제2판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자본주의 경제 체제하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대한민국의 경제 체제로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자본가의 이윤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혹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착취가 존재할까?’라는 질문에 이르면, 자본주의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다 할 명쾌한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무기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을 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말이 있었다. ‘전과 14범이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위장전입을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bbk 주가조작을 했으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말 들이다. 그 어떤 도덕성이나 이념을 다 떠나서 그저 경제라는 이미지 하나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정부를 비꼰 말이었다. 어쨌든,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선점한 이명박 정부는 그 많은 논란에도 결국 청와대를 차지했다.

 그만큼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경제에 관한 문제는 정치에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였고,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다. ‘경제라고 하는 것이 결국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 즉 삶과 가장 깊숙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의 기본 구조인 자본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일반 시민이 많지 않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 그것은 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소수의 권력자나 자본가들에게 전적으로 맡겨놓을 수밖에 없게 되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낳게 된다.

 그래서일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얼마 후부터 자본론’, 이나 마르크스에 대해 다룬 책들이 많이 출판되었고, 그 판매 부수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라 여겨졌던 월가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를 보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낀 사람들이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류역사상 최고의 지성 중 한명으로 꼽히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일반인에게 결코 쉬운 책이 아니었다. 3000쪽에 달하는 분량, 어려운 수식과 생소한 용어들은 자본론에 용기 있게 도전했던 많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 나온 책이 바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다. 책 제목만 보면 이걸 읽고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본론 읽는 것을 포기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 까닭에, ‘내가 원숭이보다 못하다는 말이냐라는 은근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며 책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하는 성과도 달성했다.

 서평을 쓰고 있지만, 이 책을 특별히 추천해주고 싶은 독자는 없다.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살고 있는 모두는 자본론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하고, 이 책은 그 입문서로서 매우 훌륭하게 쓰인 책이므로 모든 국민들이 꼭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지적한 자본론에 대한 오해 중에 한 가지가 사회주의를 다룬 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론은 그 이름부터 이미 자본주의에 대해서 철저하게 분석한 책이다. 그러므로 본인의 성향이 진보이든 보수이든 관계없이, 자본주의가 어떤 경제 체제인지를 가장 정확하고 날카롭게 분석해 낸 자본론은 누구에게나 필독서일 수밖에 없다. 그 자본론을 원숭이도 이해할 만큼쉽게 풀어 써낸 이 책의 저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를 나눌 때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생산관계이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주-농노의 생산관계를,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는 영주-농노의 생산 관계를 가졌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지배적 생산관계가 자본가-노동자가 되는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의 개념을 생산관계로 정리하고 난 후 제기되는 문제는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착취가 발생하는가?’하는 문제이다. 노예주-노예의 생산관계와 영주-농노의 생산관계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착취가 눈에 보이게 드러난다. 그러나 얼핏 자본가-노동자의 생산관계에서는 착취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자본주의를 심도 있게 분석하면서 자본가-노동자 사이의 은폐된 착취구조를 밝혀내는 데에 자본론의 충격적 진실이 있다.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용가치’, ‘교환가치’,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 ‘필요노동’, ‘잉여가치’, ‘이윤율’, ‘착취율’, ‘자본의 유기적 구성등 어렵고 생소한 용어들을 쉽고 간결하게 풀어내고 있다. 또한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수식과 공식들을 빵 공장에서 빵을 생산하는 예를 이용해 한결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내고 있다. 강의형식으로 구성된 책의 내용에 맞게,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빌어 독자가 어려워 할 수 있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자연스럽게 짚고 넘어간다. 다행히 조금만 머리를 쓰면 누구나 자신이 원숭이보다 못하진 않다는 사실에 나름 감격(?)할 수 있을 정도로 핵심만 잘 정리해 놓았다.

 더 대단한 점은, 자본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잉여가치론을 밝힌 이후에 더 나아가 자본론에만 머물지 않는 다양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체가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인지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 것은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만하다. 더 나아가 제국주의에 대해 얘기하고, 국가 기구의 중립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베네수엘라의 혁명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완벽한 체제가 아니고, 바꿀 수 없는 것도 아니며, 민중들의 힘과 실천으로 더 나은 대안적 경제 체제를 찾아내고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자본론을 맹신하여 모든 자본주의적 현상에 일관되게 적용하려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자본론이 나오고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본론만큼 자본주의에 대해 적확하게 분석하고 있는 책을 찾기 어려운 것은 맞다. 하지만 자본론이 나올 때와 지금의 자본주의는 근본은 같으면서도 그 양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달라졌다. ‘자본론만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현대의 자본주의에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만 주의한다면 자본론으로 현대의 자본주의를 해석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으리라 판단된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통해 자본론을 읽으면서 자본주의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무서운 점은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라는 것이다. 그것도 피착취자는 자신이 착취를 당하는지도 모른 채 착취당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의 습성처럼 자기 자신조차 자본가에게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각종 스펙쌓기에 열 올리고 있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이 그려진다.

 그러나 더 무서운 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온전히 개인의 탐욕과 이기심 때문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자본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노동자를 더 많이 착취해야만 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을 넘어 인간이 인간을 착취할 수밖에 없는자본주의 사회의 처절한 본성은 차라리 슬프기까지 하다. 이에 내가 내린 하나의 확신은 인간이 인간을 착취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경제체제는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구조는 선량한 자본가의 은혜로운 자비를 구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기부문화도, 유럽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할 대안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희망은 역시 민중의 주체적 실천에 따른 혁명에 있다. 역사는 그 사회의 생산을 담당하는 계층, 즉 노동자와 민중의 권리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이것이 역사 발전에서 증명되는 합법칙성이다. 그러나 법칙을 발견하고 설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을 어떻게 변혁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사회는 법칙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민중의 힘에 의해 변혁한다.

 노예와 농노들에 비해 현대의 노동자들은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있다. 이는 역사의 변혁에 나서는 민중들의 힘과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전적 자본주의에서 수정자본주의를 거쳐 신자유주의로 변모해 오면서 그 모순점들이 한계에 달한 자본주의의 대안을 생산하고, 혁명을 통해 바꿔나가는 것은 오직 깨어있는 민중의 단결된 힘과 사상에 의해 가능하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이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깨어 있는 힘으로 실천할 때, 우리의 역사는 또 한걸음 성큼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자본론이라는 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도전해 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자본론의 핵심을 찌르면서도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모순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면서도 미처 자본론에 도전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민주주의 색깔을 묻는다 - 불안의 시대를 건너는 청춘들에게
손석춘 지음 / 우리교육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민주주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당신은 민주주의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그리 어렵고 생소한 용어는 아니다. 현행 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사회교과, ‘정치분야에서 제일 처음으로 민주주의라는 용어와 개념을 배우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해서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 온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매우 친숙한 용어일 것이다.

 하지만 친숙하다라는 느낌과 이라는 지식은 그렇게 큰 연관이 있진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민주주의가 올바른 정치체제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에 대해 물어보면 저마다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와 친숙하고 가깝게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민주주의가 어떻게 우리 삶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고 우리의 인생을 규정지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과 고민을 해보지 않고 살아가는 듯하다. 이 책은 우리가 너무도 쉽게 생각했던, 아니 당연하게생각했던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것이 우리의 삶과 인생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민주주의가 나와는 동떨어진 정치인의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민주주의를 단지 투표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 혹은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이 책을 권하고 싶다.

 故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 되었을 때, ‘반세기만의 역사적 정권교체라는 감격과 환희가 전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당시 아무 것도 모르는 초등학생이었던 나조차도, 부모님과 함께 밤늦게까지 선거개표 방송을 지켜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로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의 10년을 우리는 흔히 민주정부라고 부른다. 혹자는 그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도 부른다. 누가 어떻게 표현하든, 10년 동안은 움츠러들었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드디어 꽃을 피웠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비록 완벽하게 아름다운 꽃은 아니었더라도, 적어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꽃이 필수 있도록 흙을 갈고,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준 고마운 시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그 꽃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처절히 시들어버렸다.

 민주주의는 공기와 같다. 있을 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서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다가도, 없어지면 우리의 생명과도 같을 만큼 소중한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민주정부에 들어와서야 그나마 누릴 수 있었던 민주주의적 권리와 가치들이,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다시 철저히 자본과 권력의 손에 넘어가버렸다. 민주주의의 여러 빛깔들이 조금씩 제 색을 찾아 빛을 발하려고 하다가 결국 다시 흑과 백의 색깔들로 덧칠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미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직접 만들어왔던 국민들의 의식은 높아져 있었다. 2008, ‘국민주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던 수백만의 촛불들은 우리 안에 아직 빛을 잃지 않고 있는 민주주의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였다.


 ‘민주주의’, ‘색깔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깔이 무엇일까. ‘빨간색이 떠오르면서 무수한 이념논쟁과 색깔공세가 펼쳐지는 모습이 생각나는 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 색깔을 묻는다라는 다소 선동적(?)인 책 제목을 가지고서, 민주주의의 색깔이 아닌 빛깔을 묻고 있다. ‘색깔빛깔이 국어사전에서 어떻게 정의되어 있는지는 던져두고라도,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감의 차이는 분명 이해가 될 것이다. 서평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책 제목이 민주주의 빛깔을 묻는다였다면 이 책을 읽어보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민주주의, ‘인생, 싸움, 대화, 정치, 경제, 주권, 사랑이라는 7가지 빛깔로 표현하며 민주주의와 우리 삶의 연관성을 뿌리 깊게 밝혀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삶을 규정짓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자기계발1과 제1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 깊게 느껴진 이 책의 장점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 연관되는지를 교육, 노동, 언론, 정치, 사회, 경제,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민주주의를 단지 정치체제정도로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민주주의가 경제도 될 수 있고 역사도 될 수 있으며 때론 싸움이었다가 대화이기도 하며 주권그 자체인 동시에 사랑을 얘기하는 우리의 인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많은 충격을 받을 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민주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인생과,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성립되기 전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은 어떻게 달랐는지 깊이 성찰해 보면서 민주주의는 결국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으로 민주주의의 첫 번째 빛깔을 드러낸다. 그러한 민주주의를 얻는 과정은 싸움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상대방의 입을 막아버리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토론과 대화의 장이 열리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빛깔이라 표현한다. 아울러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만들어진 법으로 실현되므로 정치이며, 민주주의가 말 그대로 '민중의 자기 통치'라면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사회에서는 마땅히 민중이 잘 살아야 하므로 민주주의는 경제여야 옳다. 아울러 민주주의는 그 시작에서부터 국가의 최고 결정권인 주권을 국민에게 주는 것이므로 민주주의는 주권이며 그러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노동하고 연대하는 것은 사랑으로 표현된다.

 민주주의는 아무리 줄여도 이 7가지의 빛깔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무지개인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민주주의색깔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색깔이 단지 빨간색이거나, ‘흑과 백이 아니라 일곱 빛깔로 저마다 화려하게 빛을 내는 아름다운 무지개색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일관되게 민주주의를 얘기하면서, ‘진보보수의 논쟁을 떠난 민주주의는 본래 이토록 많은 빛깔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 노력하였다. 그러면서도 주요 독자층을 10대로 놓고 쓴 글인 만큼, 아주 이해하기 쉽고 간결하게 쓰여져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이야기를 끌어오면서, 자연스레 사회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돌아보게 만들었다. ‘민주주의에 대해 성찰하는 것만큼 폭넓게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고민이 또 있을까.

 그렇게 다양한 분야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야기 한 책이기에, 이 책은 마치 진보에 대한 입문서 같다. 교육, 언론, 노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진보적 관점이 잘 드러난 글이 쓰여 있어, 진보를 꿈꾸는 사람들이 한번 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여는 글에서 밝힌 자신의 색깔을 보수라고 자처하고, 저자를 진보로 규정하여 이 책을 외면할 생각이라면 더더욱 정독해 주기를 제안한다라는 저자의 바람은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보수층 독자가 읽었을 때 불편하지 않게 아우를 수 있을 정도로 중립적인 책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개인적 평가다. 물론, 책이 꼭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의 바람에 관한 평가일 뿐이다.

 한 가지 더 사족을 붙이자면, 이 글에서는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순우리말이 많이 나온다. 살짝만 꼽아보아도 톱아보다’, ‘고갱이’, ‘곰비임비’, ‘명토박다’, ‘살천스레’, ‘밑절미’, ‘골골샅샅’, ‘지며리’, ‘어금지금’, ‘두남두다’, ‘생게망게등 다양한 표현이 나온다. 물론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 쓰려는 저자의 노력은 인정하며, 대부분 뜻을 몰라도 문맥을 통해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정도의 말들이다. 하지만 이런 단어를 사용할 때에는 주석을 달아주는 등의 조그만 노력도 더해 주었다면 읽기에 조금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전도 아닌 책을 읽는데 국어사전을 옆에 끼고 읽기는 좀 부담스럽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에 대해 아는 것이 자기계발의 1과 제1이라는 저자의 충고를 곱씹어 보면서 서평을 마치려 한다. 시중에 쏟아지는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자기계발이라는 것이, 잘못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개인의 불성실과 노력부족으로 돌리는 개인적체념적 자기계발이라고 한다면, ‘민주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는 자기계발이야 말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고 함께 바꿔나가는 사랑과 연대의 시작인 사회적생산적 자기계발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바로 지금, 우리의 인생인 민주주의가 여러 빛깔로 찬란하게 빛날 수 있도록,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7가지 습관들을 다짐하는 자기계발의 제1과 제1장을 시작하자.


1. 민주주의가 자신의 인생이라는 진실에 눈떠라.

2. 사람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사람이나 세력과는 싸워라.

3. 신문, 방송의 틀을 벗어나 대화하고 토론하라.

4. 직업 정치인이 정치를 독점하도록 방관하지 말라

5. 생계 차원을 넘어 창조적 경제생활을 하라.

6. 단 한 번인 자신의 인생을 주권자로 살아가라.

7.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하며 사랑하고 연대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 쓰려고 하지 마라 -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유혹적인 글쓰기
메러디스 매런 엮음, 김희숙.윤승희 옮김 / 생각의길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가 정치성을 띤 태도다. _조지 오웰

 

쓰고 싶은 수준의 책을 읽어라. _제니퍼 이건

 

그는 두 팔로 그녀를 감싸더니 부서지도록 힘껏 껴안았다. 물론 그는 그녀가 자신을 숭배한다는 걸, 아니면 존경한다는 걸, 아니면 그 비슷하게 뭐 그런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현명한 여자라면 가까이 하지 않을 그런 부류의 남자였다. 여자들에게 늘 관심이 많은 남자, 여자들을 관찰하고 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남자.

여보, 나는 좀 다른 사람이었어야 했는데, 이런 사람인 걸 어쩌겠소. _제인 스마일리의 프라이비트 라이프

 

글쓰기는 언제나 혼란한 삶에 일종의 질서를 가져다준다. 글은 삶과 기억을 정돈해준다.

 

독자들을 위한 글을 써라는 말은 사람들이 돈 주고 살만한 글을 써라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일 뿐, 여기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독자는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위한 글을 써라. _데이비드 발다치

 

글쓰기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왜 숨을 쉬는지 생각하지 않듯, 나는 왜 글을 쓰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_기시 젠

 

작가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자아를 받아들이는 일, 즉 글을 쓰는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내는 일이나 다름없다. _기시 젠

 

위대한 작가들은 대개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모르고 힘들어한다. 시시한 작가들은 대개 자신감이 넘친다. _메리 카

 

그거 아세요?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다고 해서 나쁜 문학이 아닙니다. _테리 맥밀런

 

장르는 서점의 문제이지 문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_릭 무리

 

내가 그저 길을 걸어갈 때조차도 내 삶은 상상력의 삶이다. _윌터 모즐리

 

*심정적 진실: 논리나 실증이 아닌 감정이나 주관적 의견에 근거한 진실. 사실이 아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진실 혹은 진실이라고 알려진 것보다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개념이나 사실을 선호하는 경향을 의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모모는 그렇게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그들의 말을 온 마음으로 들어주는 사람, 말하다 보면 저절로 분별이 생기고,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기분까지 좋아지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 것, 그것은 정적이었다. 사방이 고요하면, 그들은 자기네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고, 그러면 밀물처럼 불안이 밀려왔다. 그래서 그들은 정적이 찾아들 것 같은 기미만 보이면 요란하게 소란을 떨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전에는 모모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모모가 그네들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었거든.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만, 그 사람들은 모모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던 거야. 하지만 이젠 그러고 싶어 하지 않아. 또 전에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기쁜 마음으로 날 찾아오곤 했단다. 그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자신을 잊었던 거야. 하지만, 지금은 이것 역시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아해.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어.

 

죽음이 뭐라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게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람들의 인생을 훔칠 수 없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건 꿈이 이루어지는 거야. 나는 더 이상 꿈꿀게 없거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