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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 '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을 찌르는, 제2판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자본주의 경제 체제하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대한민국의 경제 체제로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자본가의 이윤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혹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착취가 존재할까?’라는 질문에 이르면, 자본주의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다 할 명쾌한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무기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을 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말이 있었다. ‘전과 14범이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위장전입을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bbk 주가조작을 했으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말 들이다. 그 어떤 도덕성이나 이념을 다 떠나서 그저 ‘경제’라는 이미지 하나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정부를 비꼰 말이었다. 어쨌든,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선점한 이명박 정부는 그 많은 논란에도 결국 청와대를 차지했다.
그만큼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경제’에 관한 문제는 정치에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였고,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다. ‘경제’라고 하는 것이 결국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 즉 삶과 가장 깊숙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의 기본 구조인 ‘자본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일반 시민이 많지 않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 그것은 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소수의 권력자나 자본가들에게 전적으로 맡겨놓을 수밖에 없게 되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낳게 된다.
그래서일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얼마 후부터 ‘자본론’, 이나 ‘마르크스’에 대해 다룬 책들이 많이 출판되었고, 그 판매 부수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라 여겨졌던 월가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를 보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낀 사람들이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류역사상 최고의 지성 중 한명으로 꼽히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일반인에게 결코 쉬운 책이 아니었다. 3000쪽에 달하는 분량, 어려운 수식과 생소한 용어들은 자본론에 용기 있게 도전했던 많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 나온 책이 바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다. 책 제목만 보면 ‘이걸 읽고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본론 읽는 것을 포기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 까닭에, ‘내가 원숭이보다 못하다는 말이냐’라는 은근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며 책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하는 성과도 달성했다.
서평을 쓰고 있지만, 이 책을 특별히 추천해주고 싶은 독자는 없다.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살고 있는 모두는 자본론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하고, 이 책은 그 ‘입문서’로서 매우 훌륭하게 쓰인 책이므로 모든 국민들이 꼭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지적한 ‘자본론’에 대한 오해 중에 한 가지가 ‘사회주의’를 다룬 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론’은 그 이름부터 이미 ‘자본주의’에 대해서 철저하게 분석한 책이다. 그러므로 본인의 성향이 진보이든 보수이든 관계없이, 자본주의가 어떤 경제 체제인지를 가장 정확하고 날카롭게 분석해 낸 ‘자본론’은 누구에게나 필독서일 수밖에 없다. 그 자본론을 ‘원숭이도 이해할 만큼’ 쉽게 풀어 써낸 이 책의 저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를 나눌 때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생산관계’이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주-농노의 생산관계를,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는 영주-농노의 생산 관계를 가졌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지배적 생산관계가 자본가-노동자가 되는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의 개념을 ‘생산관계’로 정리하고 난 후 제기되는 문제는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착취가 발생하는가?’하는 문제이다. 노예주-노예의 생산관계와 영주-농노의 생산관계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착취가 눈에 보이게 드러난다. 그러나 얼핏 자본가-노동자의 생산관계에서는 착취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자본주의를 심도 있게 분석하면서 자본가-노동자 사이의 은폐된 착취구조를 밝혀내는 데에 자본론의 충격적 진실이 있다.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용가치’, ‘교환가치’,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 ‘필요노동’, ‘잉여가치’, ‘이윤율’, ‘착취율’, ‘자본의 유기적 구성’ 등 어렵고 생소한 용어들을 쉽고 간결하게 풀어내고 있다. 또한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수식과 공식들을 빵 공장에서 빵을 생산하는 예를 이용해 한결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내고 있다. 강의형식으로 구성된 책의 내용에 맞게,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빌어 독자가 어려워 할 수 있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자연스럽게 짚고 넘어간다. 다행히 조금만 머리를 쓰면 누구나 자신이 ‘원숭이’보다 못하진 않다는 사실에 나름 감격(?)할 수 있을 정도로 핵심만 잘 정리해 놓았다.
더 대단한 점은, 자본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잉여가치론’을 밝힌 이후에 더 나아가 ‘자본론’에만 머물지 않는 다양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체가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인지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 것은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만하다. 더 나아가 제국주의에 대해 얘기하고, 국가 기구의 중립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베네수엘라의 혁명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완벽한 체제가 아니고, 바꿀 수 없는 것도 아니며, 민중들의 힘과 실천으로 더 나은 대안적 경제 체제를 찾아내고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자본론’을 맹신하여 모든 자본주의적 현상에 일관되게 적용하려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자본론이 나오고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본론만큼 자본주의에 대해 적확하게 분석하고 있는 책을 찾기 어려운 것은 맞다. 하지만 자본론이 나올 때와 지금의 자본주의는 근본은 같으면서도 그 양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달라졌다. ‘자본론’만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현대의 자본주의에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만 주의한다면 자본론으로 현대의 자본주의를 해석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으리라 판단된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통해 ‘자본론’을 읽으면서 자본주의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무서운 점은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라는 것이다. 그것도 피착취자는 자신이 착취를 당하는지도 모른 채 착취당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의 습성처럼 자기 자신조차 자본가에게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각종 ‘스펙’쌓기에 열 올리고 있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이 그려진다.
그러나 더 무서운 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온전히 개인의 탐욕과 이기심 때문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자본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노동자를 더 많이 착취해야만 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을 넘어 ‘인간이 인간을 착취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처절한 본성은 차라리 슬프기까지 하다. 이에 내가 내린 하나의 확신은 ‘인간이 인간을 착취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경제체제는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구조는 선량한 자본가의 은혜로운 자비를 구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기부문화도, 유럽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할 대안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희망은 역시 민중의 주체적 실천에 따른 혁명에 있다. 역사는 그 사회의 생산을 담당하는 계층, 즉 노동자와 민중의 권리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이것이 역사 발전에서 증명되는 합법칙성이다. 그러나 법칙을 발견하고 설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을 어떻게 변혁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사회는 법칙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민중의 힘에 의해 변혁한다.
노예와 농노들에 비해 현대의 노동자들은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있다. 이는 역사의 변혁에 나서는 민중들의 힘과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전적 자본주의에서 수정자본주의를 거쳐 신자유주의로 변모해 오면서 그 모순점들이 한계에 달한 자본주의의 대안을 생산하고, 혁명을 통해 바꿔나가는 것은 오직 깨어있는 민중의 단결된 힘과 사상에 의해 가능하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이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깨어 있는 힘으로 실천할 때, 우리의 역사는 또 한걸음 성큼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자본론’이라는 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도전해 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자본론’의 핵심을 찌르면서도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모순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면서도 미처 ‘자본론’에 도전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