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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로 단박에 나를 사로잡았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신작 『문맹』은 ‘자전적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1935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1956년 헝가리 혁명을 피해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이주한다. 20대 초반의 그녀에게는 젖먹이 딸이 있었고, 하나의 가방에는 기저귀 등 아기용품이, 다른 하나의 가방에는 사전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문자와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담으로 시작된다.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알아챌 새도 없이, 완전히 우연한 방식으로 독서라는 치유되지 않는 병에 걸린다(12쪽).”
그녀의 글에 대한 애정은 모국어의 상실로부터 깊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모국어와 적어敵語” 편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렇게 해서 스물 한 살의 나이로 스위스에, 그 중에서도 전적으로 우연히 프랑스어를 쓰는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완벽한 미지의 언어와 맞서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이 언어를 정복하려는 나의 전투, 내 평생 동안 지속될 길고 격렬한 전투가 시작된다. … 내가 프랑스어로 말한 지는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 나는 프랑스어를 말할 때 실수를 하고, 사전들의 도움을 빈번히 받아야만 프랑스어로 글을 쑬 수 있다. … 이러한 이유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 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52~3쪽).”
모국어인 헝가리어에서 멀어진 채 적어(敵語)인 프랑스어를 배운다. 필사적으로 작가가 된다. 그녀 자신은 난민이었다. “사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사막, 문화적 사막, 혁명과 탈주의 날들 속에서 느꼈던 열광이 사라지고 침묵과 공백, 우리가 중요한, 어쩌면 역사적인 무언가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나날들에 대한 노스탤지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뒤따른다(89쪽).” 사막에서 벗어나고 그리움에서 놓여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글을 썼다. 그렇게 작가가 되었을 터이다.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 … 나의 책, 나의 삶, 나의 작가로서의 여정에 대해.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97~103쪽)."
"빈에 도착한 우리는 우리를 신고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는다. 거기, 경찰서에서, 나는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젖병을 물린다. 아이는 먹은 것을 토한다. 경찰들은 우리에게 난민 센터의 주소를 주었고 우리를 무료로 거기까지 데려다줄 전차를 알려준다. 전차 안에서, 옷을 잘 차려입은 부인들은 내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어준다. …… 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어렵고, 더 가난했겠지만, 내 생각에는 또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나는 글을 썼으리라는 사실이다(79~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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