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슬픔은 알 수도 없이 아득하지만냉소는 쉽게 침범한다.

타인의 슬픔에 닿기는 지난하지만타인의 냉소에는 쉽게 물든다.

요즘 태도가 곧 본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문제는 그 태도는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

변화를 목표로 삼는 공부는 그래서 헛된 희망과도 같은 것.

그러므로 나의 공부는 대체로 슬픔이라는 것.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27쪽).

어떤 책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으려면 그 작품이 그 누군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더 과감히 말하자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정확히 인식한 책만 정확히 위로할 수 있다(38쪽).

사건은, 그것을 감당해낸 사람만을, 바꾼다(47쪽).

내게 작품의 깊이란 곧 ‘인간 이해’의 깊이다(201쪽)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다. 풍자는 특정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조롱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안이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217쪽).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단편적인 정보로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즐거워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어떤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 트위터에, 각종 소문 속에 그들은 있다. 문학이 귀한 것은 가장 끝까지 듣고 가장 나중에 판단하기 때문이다(9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