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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의 위대한 패배자들 - 한니발부터 닉슨까지, 패배자로 기록된 리더의 이면
장크리스토프 뷔송.에마뉘엘 에슈트 지음, 류재화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8월
평점 :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자 흔적이다. 그것은 인간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기도,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사이에서 남기도 하며, 때로는 자연물 스스로 남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동물, 식물 등 자연환경의 과거를 다루는 학문은 역사가 아닌 자연사로 불린다. 조연이든 주연이든 인간이 남긴 과거 발자국만을 엄밀한 의미의 ’역사‘라고 부른다. 페르낭 브로델이 환경의 변하지 않는 지속성을 역사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지만 그가 밝히고자 한 것은 장기지속의 구조 속에서의 문명의 역동성이었다. 역사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있다.
지금 책상에 있는 책들 중에는 다 읽은 책, 읽다 만 책, 읽을 예정인 책들이 역사책만 6권 있다. <<유대인의 역사>>, <<기독교의 역사>>, <<한반도 분단의 기원>> <<로마의 운명>> <<지리 기술 제도>> <<바이마르 공화국의 해체>>. 이 책들이 다루는 대상은 특정 집단, 종교 교파, 국제정치학적 외교 및 세력 관계, 환경의 영향, 국내 정치의 역학 등 이야기의 중심에 인간(그리고 인간이 만든 국가)이 있긴 하나 개인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책들이 하나같이 흥미진진한 책들이긴 하나 읽다보면,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간접 체험하기’라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역사책 읽기의 목적 중 하나를 잊곤 한다. 그래서 일부러 가끔은 평전을 읽기도 하는데, 평전은 보통 분량 면에서 호흡이 긴 편이라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
다행히 역사 읽기의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될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재미와 분량 면에서 모두 만족스럽다.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짧은 생애에 경험하고 드러내는, 즉 체현한 인물들은 역사의 승리자들이 아닌 패배자들이다. 역사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어느 순간 급격히 떨어지는, 하지만 때로는 재평가되어 다시 상승하기도 하는 이 책의 역사 인물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역사상 유명한 패배자들 중 저자들이 엄선한(?) 고대의 한니발, 베르킨게토릭스부터 중세의 잔 다르크, 앙리 드 기즈, 현대의 체 게바라, 리처드 닉슨까지의 13인의 인물들의 성공과 그에 뒤이은 실패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시대적 균형 및 알려진 정도(유명세)를 고려한 적절한 인물 선택은 둘째치고, 이들은 그들 자신의 운명에 기복을 가져온 실패 요인들 즉, 교만, 허세, 자만, 나약함 그리고 오만 등의 모습을 몸소 보여준다. 갈리아인들의 반란을 규합하여 그 대단한 카이사르의 목을 조여올 정도였으나 원인 모를 나약한 전략으로 카이사르에게 허를 찔리고 말았던, 그래서 개선 행진의 인간 전리품이자 구경거리로 전락한 ‘베르킨게토릭스’. 구교와 신교 사이의 죽고 죽이는 종교 전쟁의 시기 가톨릭파의 수장이 되어 국왕 못지않은 권력으로 파리를 점령하여 왕이 될 수도 있었던, 그러나 교만과 자만으로 기회를 잡지 못하고 종국에는 국왕의 암살자들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인한 ‘앙리 드 기즈’, 10월 혁명의 주인공이자 레닌의 후계자이기도 했던 결단력과 명민함을 갖춘, 그러나 스탈린의 정치적 수완과 관료 정치의 중요함과 무서움을 무시한 오만함으로 망명지 멕시코에서 비참하게 암살당한 ‘트로츠키’
이 3명 외에도 다른 인물들의 찬란한 등장과 비극적 몰락의 극적인 대비는 자연스레 이들에 감정이입하고 비극적 운명에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한 인물당 30쪽 정도의 간결한 분량에 패배자의 성공과 실패를 포함한 인생 전반을 극적으로 그려내 이들에 몰입하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 이는 그만큼 복잡한 인물 구도와 복잡한 상황, 오르내리는 감정선을 간결하고 세련되면서도 극적으로 묘사하는 탁월한 솜씨 덕분이다. 영웅적 인물로 과잉 소비된 게바라, 그의 볼리비아에서의 마지막 죽음을 예수의 죽음에 빗대어 묘사한 다음의 촌철살인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최후의 콘기스타도르는 ’골고다 언덕‘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의 골고다 언덕이 바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볼리비아였다는 것도(458p).”
위대한 패배자 13인의 굴곡진 삶의 여정에서 억지로 거창한 교훈을 끌어내지 않는다. 아마 그랬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그들의 마지막은 항상 담담하게 서술된다. 이를 통해 오만과 교만과 우유부단함으로 몰락한 이들의 삶은 다종다양한 인간 삶의 일부, 다채로운 단면의 일개 편린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다는 점, 역사는 개인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또 한 번 알게 되었다는 점이 교훈이라면 교훈이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