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그 자체의 감각 - 의식의 본질에 관한 과학철학적 탐구 Philos 시리즈 26
크리스토프 코흐 지음, 박제윤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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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 분야의 《종의 기원》을 읽는 기분이었다. 노션에는 메모한 내용이 너무 많아서 인스타에는 최대한 줄여서 글을 남긴다. 😅 나는 학생일 때 올리버 색스의 책들을 좋아했는데 처음으로 내가 의식에 대한 설명과 만난 순간이다. 이후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괴물의 심연》과 같은 비일상적인 현상에 대한 책을 읽으며 단순 호기심만 충족했을 뿐, 의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신경과학이나 뇌과학을 공부하고 있었겠지!)

이 책은 의식에 관한 질문을 과학으로 끌어들여 실험적으로 증명하려 한 학자의 시도를 담고 있다. 의식은 주관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정의하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저자는 경험을 정량화하고 측정할 수 있다 말하고, 컴퓨터는 의식을 갖는 게 불가능하다 확언하며, 인간보다 신경계가 덜 발달된 동물들도 의식을 지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실험으로 보여주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 동안의 신경학계의 주류 이론과 다른 주장도 있어 처음 등장했을 때 학계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경험에 의한 주장을 넘어서 실험적으로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는 점만으로도 나쁜 이론이라고 하기 어렵다. 6장까지는 7장 이후의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한 길잡이 편이다. ‘의식’와 관련한 신경과학의 역사, 뇌과학의 발전, 저자와 크릭이 발견한 NCC(의식에 관여하는 뇌의 부분)의 존재에 대해 다룬다.

7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철학, 심리학 수준에서 다루던 의식을 어떻게 생물학, 물리학적으로 연결하여 설명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게 통합정보이론(IIT)이다. 의식(경험)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현상학적 속성 5가지를 공리로 취하고, 이 공리를 갖춘 물리학적 메커니즘이 있다면 통합적으로 계산하여 나온 값이 의식(경험) 그 자체라는 내용이다. 저자는 그 값을 ‘완전체(Whole)’라고 불렀다. 다섯 공리 중 하나라도 갖고 있지 않은 경험을 존재할 수 없다. 또 경험이라면 반드시 이 다섯 가지 공리를 모두 만족한다. 따라서 이 다섯 속성을 갖춘 기제가 있다면 반드시 경험을 형성할 것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내용은 동물의 경험과 인공 의식에 대한 견해다. 그 동안은 동물은 의식을 자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주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의식에 대한 패러다임이 덜 추론적이고 좀 더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으로 바뀌면서 대세는 문어처럼 인간보다 단순한 생물도 의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기우는 듯 하다. 인공의식에 대한 견해는 아직 논란이 있는 듯 한데, 저자는 컴퓨터가 의식을 갖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인지적 지능은 가질 수 있다. 경험과 의식은 흉내는 낼 지라도 결코 온전히 갖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의식에 관한 연구는 상대성이론, 진화론과 더불어 또 한 번의 과학 혁명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8장부터 갑자기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해서 책을 읽으며 버겁긴 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설득 당했는데 아직 실험적으로 검증하지는 못했다는 말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몇 십 년 후, 코흐가 주장하는 이론은 자연선택설 취급을 받을까, 용불용설 취급을 받을까? 앞으로 많은 것이 밝혀질수록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환자들에 대한 접근법도 달라질 것이라 기대된다. 그리고 크릭이 몇 십 년 더 살았다면, 완전히 다른 분야로 노벨생리학상을 한 번 더 수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상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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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헌터 - 어느 인류학자의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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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글 잘 쓰는 한겨레 기자님의 책. 책 정보를 찾다가 관심이 생기면 저자의 다른 책과 그 출판사의 다른 책을 타고타고타고타고.. 찾아보는 걸 좋아한다. 덕분에 기자님이 한겨레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됐다. 《본 헌터》 받아보기를 기다리며 밀리의 서재에서 《베트남 전쟁 1968년 2월 12일》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무거운 주제를 덜 무겁게 쓸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저자다.

이 책은 충남 아산의 유해 발굴 현장과 관련된 사람들의 여러 시점을 오가며 각 챕터가 진행되는 독특한 형식의 글을 담고 있다. 사실 이미 해골이 된 자의 말이니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시점은 아니다. 간혹 은비녀와 태아도 말을 한다. 한겨레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주 2회 연재했던 기록도 볼 수 있다.(간혹 ‘이새끼는 누구야’ 싶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인터넷 연재글에서 성이 붙은 온전한 이름을 알 수 있다. ^^…)

첫 이야기는 쭈그려 앉아 발견된 뼈 A4-5가 하는 말로부터 시작된다. A라는 이름이 붙은 네 번째 구역에서 다섯 번째로 발견된 유해라는 의미이다. 옷도 없고 표정도 없고 민증도 없는 뼈로부터 대체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

두 번째로, 국내 최초로 뼈에 대해 공부한 체질인류학자 선주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선주는 두희와 만난 지 일주일 되던 날, 핑크빛 장미와 함께 프로포즈하여 결혼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이후 계속해서 충남 아산 현장의 이야기와 선주의 이야기가 번갈아 서술된다. 선주는 버클리 대학에서 뼈해부학에 대해 공부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 생활을 하며 한국의 구석기 시대 연구, 육군유해발굴단 등 다양한 현장에 참여한다. 앞에서도 은은하게 느껴지던 선주의 정확한 정체는 243쪽에서 밝혀진다.

처음에는 챕터마다 달라지는 화자와 다정한 이름 부르기에 얼떨떨해하며 읽기 시작했다. 충남 아산의 한 마을에서 발견된 뼈가 들려주는 정보를 이야기의 형태로 재구성하여 생생하게 전달한다. 6.25 전쟁 기간 동안 보복성 민간인 학살이 충남 아산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곳에서 수 천 명이 영문도 모른 채 죽었지만 대대적으로 오랫동안 이슈가 된 기억은 없다. 아마 아직 73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경찰과 군인에게 화살이 돌아가면 곤란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가해자의 죄책감이 덜어지지 못해 나설 용기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늦어지면, 이젠 잊혀져버리지 않을까? 모두가 잊어버리기 전에 <본 헌터>가 한 줄기 기억의 끈을 엮어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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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를 해부하다 - 〈키스〉에서 시작하는 인간 발생의 비밀
유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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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노벨생리학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이 2006년에 언급했던 미술 작품 속의 생물학적 상징을 2020년 전시에서 직접 경험하고 경이로움을 느낀다. 이 경험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논문을 작성하고 책까지 출간하게 만들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2부와 3부에서 저자가 생물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해석한 예술 작품들을 볼 수 있다. 1부에서는 예술가들이 그런 생각을 갖는 게 가능했던 시대적 배경에 대해 논한다. 1900년대의 오스트리아는 다민족으로 이루러져 다양성을 포용하고, 프랑스 2월 혁명의 영향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다. 과학사적으로는 몇십 년 전에 《종의 기원》이 출간되고, 현미경의 발달 덕분에 인간에 대한 연구 및 세포학이 발달하던 시기였다.

과학사를 들여다보면 과학 연구에도 유행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예술 분야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다니 놀랍다. 익숙한 그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서술돼 있어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한 책이었다.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사고하는 창의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림에 담긴 건 발생학, 세포학적인 지식인데 해부학자로서의 관점을 자주 강조해서 조금 의아할 때도 있었지만? ^^; 예술 작품을 해부하듯이 확인해보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19세기 말의 예술 작품을 한 권에 한데 모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번쯤은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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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킬조이 - 쉽게 웃어넘기지 않는 이들을 위한 서바이벌 가이드 Philos Feminism 9
사라 아메드 지음, 김다봄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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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문장이나 마음에 드는 표현에만 밑줄을 그어야 하는데, 정신 차리면 거의 대부분의 문장에 밑줄 긋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 꼭 페미니즘과 연관짓지 않더라도 정치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다수의 행복을 깬 소수에게 책임을 돌리는 현상은 익숙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른 게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였다. 비난의 화살이 그들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국회가 아닌 지하철을 가로막은 시위자에게 돌아가게끔 헤드라인을 뽑는 뉴스들이 늘 불편했기 때문이다. 언론 덕분에 장애인은 킬조이가 된다.

킬조이라는 말은 '페미니스트'보다 더 오래되었다. 대체로 농담이 오가는 상황 등에서 타인의 즐거움을 깨뜨리고 지적하는 사회성 떨어지는 이들을 의미한다. 유의어로는 비관론자, 산통을 깨는 사람, 등등. 이런 이미지 덕에 누구도 스스로 되고 싶어서 킬조이가 되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은 거의 점조직처럼 서로를 발견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페미니스트 킬조이를 위한 지침서이다. (잠재성을 지닌 사람을 포함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킬조이'라는 우스운 말을 격파한다. 기꺼이 스스로 킬조이가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감히" 본인들의 즐거움을 깬 불편러들을 탓하기 위해 만들어진, 역사가 유구한 이 부정적 이미지를 전도시킨다. '퀴어'라는 단어를 탈환했듯, '페미니스트 킬조이'도 탈환하려는 시도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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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위한 정의 - 번영하는 동물의 삶을 위한 우리 공동의 책임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이영래 옮김, 최재천 감수 / 알레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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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딸을 위한 실천적 애도의 한 방식으로 딸과 함께 연구하던 분야에 대해 책으로 만들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얻은 감상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글솜씨에 대한 감탄이다. 생각 전개가 자연스럽고 논리가 탄탄해서 의문을 갖거나 반박할 틈이 없다. 책을 읽으며 이런 느낌을 느낀 게 리처드 도킨스 이후 처음이다. 읽으며 주장하는 글쓰기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명료하고 군더더기 없는 설명 덕분에 처음 알게 된 '역량 접근법'에 대해서도 나름 이해할 수 있었다.

두번째는 동물을 위한 철학에 대한 배움이다. 온라인에서 무지성으로 비판만 하는 글을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댓글도 그냥 욕 한번 하고 나가면 끝이다. 다시 그 주제는 잊혀진다. 대체 앞으로 어쩌자는 거야? 싶을 때가 많았는데, 바로 책에서 말하는 '전환적 분노'을 이끌어내는 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환적 분노란 보복을 위해 과거에 매여 있는 분노가 아니다. 앞으로의 행동을 촉구하는 미래지향적인 분노를 의미한다.

너스바움은 독자로 하여금 이 전환적 분노를 이끌어내기 위해 경이, 연민, 격분이라는 세 단계의 감정을 유발하는 서술방식을 이용했다. 또, 현재 동물권을 위한 접근 방식은 크게 세 가지 정도가 있는데, 각 챕터를 하나씩 할애하여 그 한계점을 지적한다.

5장에서부터 저자가 주장하는 '역량 접근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각각의 존재는 각자의 역량이 존재하며, 그 역량을 누릴 최소한을 보장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이상 단순히 북극곰을 짠하게 여기고 플라스틱을 덜 쓰는 정도에서 그쳐서는 안 되는 지금, 이 책을 읽으면 든든한 철학적 토대와 동물과 환경을 위하는 마음에 당위성을 얻을 수 있다.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은 각자 나름의 삶을 존중 받고 공정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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