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단편집
듀나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읻다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듀나 작가의 초창기 단편 21편을 모은 소설집! 나에게 듀나는 유쾌한 영화평을 올리는 평론가로 더 익숙하다.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는 90년대 초반부터 적었던 글들을 모은 책으로, 디자인부터 레트로 느낌이라 받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특히 글 제목이 역순으로 나열된 뒷표지는 옛날 감성 그잡채. 아직 PC가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에 쓰인 SF 소설들은 너무 특별했다. 나도 태어나서 말하던 시절이긴 하지만 어린이였던 터라 90년대 후반부터나 컴퓨터를 만져보기 시작해서 도스 시절 땅따먹기 하거나 노란국물이나 보며 자랐는데.. 다시 한번 20대에 90년대를 통과하며 온전히 그 시절을 기억하는 언니들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첫 작품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는 타임머신에 붙어 있던 나비 한 마리의 나비효과 때문에 변한 2392년 간의 역사를 상상한다. 진화학에서 유명한 질문 중 하나로 ‘모든 종이 전부 멸종되고 지구에서 다시 생명체가 생겨난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모습일 것인가’라는 게 있는데 이 질문의 역사 버전 같다.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지 않았고 많은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난 2392년의 긴 시간은 대체로 비슷하게 흘러갔지만 꽤 많이 달랐다.

그 외 안드로이드 로봇 등이 실컷 등장하면서도 공중전화 박스가 있고 조작한 사진을 꼭 실물로 현상해서 봐야하는 세계관이 특별한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과학이 더욱 발전하면서 요즘 sf 소설은 과학적 고증이 부족한 듯 ‘느껴지거나’, 그럴듯하지 않으면 왠지 흥미가 떨어진다. 그렇다고 너무 과학적인 설명에만 매달리면 이야기는 사라지고 세계관 설명서에 지나지 않는 이상한 것이 된다. 이런 난제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시절의 글들을 너무 재밌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혀 다른 열두 세계 포션 6
이산화 지음 / 읻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여 쪽의 얇은 책에 무려 12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단편집. 이산화 작가가 <고교 독서평설>에 1년간 연재하던 작품을 수정하여 엮은 것이라 한다. 짧은 글들임에도 단순 상상력의 나열이 아닌 ‘이야기’가 들어 있다. 주인공의 정체에 대한 반전 때문에 뜨악하기도 하고 현재 실존하는 문제들에 대한 희망적인 답변에 안심 하기도 하며 책을 읽었다.

첫번째로 실린 <토끼 굴>은 최초의 발견에 대한 경이와 흥분을 느낄 수 있다. 학문 전체를 뒤흔들 수 있을만한 발견을 ‘토끼’에 비유한다. 주인공 멜도 ‘토끼’가 될 가능성이 있는 물고기떼를 여러 차레 발견했지만, 함께하는 과학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해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머릿속에 맴도는 아자코프 박사의 목소리를 따라 잠수함을 더 깊은 곳으로 이동시켰고, 이내 토끼 굴 속에 있는 토끼들을 발견한다.

<위에서처럼 아래도>는 인간이 새로운 종을 얼마든지 창조하는 게 가능해지며 갓냥이였던 호랑이가 퇴물이 된 시대를 그린다. 학자들은 특별구역에서 대회를 개최해 오래 환경에 적응하는 새로운 종을 시험하기도 하는데, 나도 한 마리 가상으로 만들어봤다. 내가 대회에 참여한다면 정말 맛이 없어서 포식자가 아무도 노리지 않는 생물 종을 개발할 것 같다.

책의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는 “인간 시절도 한때”이다. 특히 <그땐 평화가 행성을 인도하고>에서는 드러대놓고 기성 세대의 인간 시절도 언젠가는 저물며 새로운 세대의 인간이 새로운 시대를 열 것임을 이야기한다. 언젠가는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인간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또 새로운 종이 출현해 지구의 삶은 계속될 것임을 다시 한 번 배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는 오래 산다 - 30년 문학전문기자 생애 첫 비평에세이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너무 바빠서 책을 못 읽은 것도 있지만 독서 자체에 대한 권태를 느끼던 시기였는데 너무 좋은 책을 만났다. 외국 고전도, 신간이나 유행하는 sf도 끌리지 않아 《토지》만 천천히 읽는 중이었다. 책의 본문에 언급된 책으로 앞으로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을 채운 게 오랜만이다.

《이야기는 오래 산다》는 한겨레에서 30년 넘게 재직하다가 2022년에 정년퇴직하신 문학전문기자의 책이다. 일반 기업에서 명예퇴직이 아닌 정년퇴직이라니. 게다가 한겨레 신문 1호가 창간하기도 전인 초창기에 입사하여 정년을 맞았으니, 한겨레 입장에서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 그리고 정년할 때까지 한 직장에 몸 담은만큼 일에 대한 애정이 많으셨을 거라 상상해본다. 오랜 기간 문학전문기자로서 작성했던 기사와 칼럼을 한데 모은 덕분에 단 한 권으로 굵직한 문학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작가에 대한 이야기, 문학계 전반에 관한 생각, 서평 등으로 분류되어 묶여 있다. 박완서, 황현산 등 지금은 고인이 된 분과의 인터뷰나 일화가 담긴 글은 살아계시던 당시에 쓰인 글임에도 왠지 저자가 저 분들을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좋은 것은 전부 국내 작가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나름 어영부영 독서 세월이 쌓여 이미 읽은 책도, 너무 유명하여 안 읽어봤지만 제목을 아는 책도 많았지만 역시 아직 안 읽어본 책이 더 많다. 그러나 오랫동안 읽히지 않아 이제 절판된 책도 많고, 대부분이 너무 구형의 판이라는 게 아쉽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처럼 한국문학도 더 흥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몇 년 전 출간되던 문학동네 출판사의 한국문학 시리즈가 그리워진다. ㅜㅜ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 광기와 인정에 대한 철학적 탐구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 지음, 송승연.유기훈 옮김 / 오월의봄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짧지 않은 제목을 가지며 얇지 않은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최근 사회 흐름에 맞춰 대체 나와 다름을 어디까지 얼마나 받아들여야 하는건지, 또 내가 인식하지 못한 사회적 편견은 뭐가 있을지 고민한 적이 있다면, 정신질환을 예로 하여 서술하는 이 저자들의 접근 방식이 도움이 될 것이다.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는 매드 프라이드 혹은 매드 포지티브 운동의 주장과 인정 가능성의 여부를 철학적, 심리학적 측면에서 논함으로써 그들의 주장이 비합리적이지 않고 논의해볼 만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사회가 응답할 수 있는 여러 반응에 대해 다룬다. 사실 정신 질환라고 드러내고 인정하는 사람을 겪은 적이 거의 전무한지라 쉽게 상상도 되지 않고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그 배경에 대해 알고나니 그들의 주장을 존중하고 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두 번째 책 《모두가 가면을 벗는다면》은 자폐인 심리학자가 쓴 내용을 담고 있다. 비슷한 유형의 “비정형화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며 많은 위로를 받은 책이다. 세상에는 자폐증 진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자폐증이 매우 복잡하고 다면적인 장애이듯 그 이유 역시 다양하다. 저자는 계급, 인종, 성별, 나이, 의료 접근성 부족 등 여러 이유로 제대로 진단 받지 못해 보편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일반인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을 ‘가면 자폐증’이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어디까지 ‘우리’로 볼 것인지를 끊임없이 정의 내리고 ‘우리’에 속하지 않는 것들과 경계선을 긋는다. 그 경계선은 결코 희미해질 수 없고 다만 우리라고 인정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거나 좁아질 뿐이다. 그리고 그 ‘우리’에 속하기 위해 가면을 쓰기도 한다. 완전한 극복을 위해서는 경계선이 지워지고 ‘우리’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야 하겠지만, 나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었을 타인을 배제하는 이 본능 덕분에 지금까지 생존한 생명체다.

그렇기에 차별하고 배척하는 습관을 쉽게 떼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반성적으로 사고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무언가를 배워서 시도해볼 수는 있다. 이런 시도가 조금씩 겹겹이 쌓인다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하다’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만큼 자연스러워지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두가 가면을 벗는다면 - 자폐인 심리학자가 탐구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법
데번 프라이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디플롯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짧지 않은 제목을 가지며 얇지 않은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최근 사회 흐름에 맞춰 대체 나와 다름을 어디까지 얼마나 받아들여야 하는건지, 또 내가 인식하지 못한 사회적 편견은 뭐가 있을지 고민한 적이 있다면, 정신질환을 예로 하여 서술하는 이 저자들의 접근 방식이 도움이 될 것이다.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는 매드 프라이드 혹은 매드 포지티브 운동의 주장과 인정 가능성의 여부를 철학적, 심리학적 측면에서 논함으로써 그들의 주장이 비합리적이지 않고 논의해볼 만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사회가 응답할 수 있는 여러 반응에 대해 다룬다. 사실 정신 질환라고 드러내고 인정하는 사람을 겪은 적이 거의 전무한지라 쉽게 상상도 되지 않고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그 배경에 대해 알고나니 그들의 주장을 존중하고 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두 번째 책 《모두가 가면을 벗는다면》은 자폐인 심리학자가 쓴 내용을 담고 있다. 비슷한 유형의 “비정형화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며 많은 위로를 받은 책이다. 세상에는 자폐증 진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자폐증이 매우 복잡하고 다면적인 장애이듯 그 이유 역시 다양하다. 저자는 계급, 인종, 성별, 나이, 의료 접근성 부족 등 여러 이유로 제대로 진단 받지 못해 보편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일반인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을 ‘가면 자폐증’이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어디까지 ‘우리’로 볼 것인지를 끊임없이 정의 내리고 ‘우리’에 속하지 않는 것들과 경계선을 긋는다. 그 경계선은 결코 희미해질 수 없고 다만 우리라고 인정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거나 좁아질 뿐이다. 그리고 그 ‘우리’에 속하기 위해 가면을 쓰기도 한다. 완전한 극복을 위해서는 경계선이 지워지고 ‘우리’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야 하겠지만, 나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었을 타인을 배제하는 이 본능 덕분에 지금까지 생존한 생명체다.

그렇기에 차별하고 배척하는 습관을 쉽게 떼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반성적으로 사고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무언가를 배워서 시도해볼 수는 있다. 이런 시도가 조금씩 겹겹이 쌓인다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하다’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만큼 자연스러워지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