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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2 ㅣ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2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웬만하면 남이 애써 쓴 책에다 악평을 하고 싶지 않다. 뭔가 나에게 맞지 않더라도 기호의 차이라고 생각하고 관대해지려 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해서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는다.
어떤 점에서는 이 책은 독자에 대한 사기행각이다.
먼저, 제목이 사기다.
제목은 '견습의사'라고 되어 있으며 표지에도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는 수술장갑과 메스가 등장하지만 실제 내용에서 의사, 내지는 병원과 관계된 부분은 살인자가 전작의 살인마인 외과의사를 흉내냈다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없다. 즉 의학 스릴러라고 할만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감히 '견습의사'라는 제목을 붙이고 의학스릴러를 표방한다면 이건 명백한 사기 맞다.
둘째, 표절에 가까운 내용이 사기다.
누구든지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양들의 침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살인마를 흉내내는 새로운 살인마. 이미 철창속에 집어넣은 살인마가 다시 탈옥을 하는 점, 형사는 여자 등등 양들의 침묵의 큰틀을 차용했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셋째, 용두사미 식의 허망한 내용이 사기다.
아래 분이 지적했듯이 책의 80%를 읽어도 범인에 대한 단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밝혀지는 범인의 전모. 그것은 주인공이 하나씩 둘씩 치밀하게 포위망을 좁혀 들어가 그 비밀스런 커튼을 확 젖히는 식이 아니라 느닷없이 FBI 가 주인공을 불러 범인은 이런 저런 놈이다라고 알려준다. 세상에 ㅠ.ㅠ.
추리소설이 이런 식으로 범인을 밝혀도 되는 것인가? 이 리뷰를 읽는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도 되는 것이냐고. 추리소설에서 주인공이 범인을 집요하게 추적해서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FBI가 이미 오래전부터 파악해놓은 범인의 정보를 다 알려줘도 되는 거냐고? 이 책을 보다보면 '추리 소설에서는 FBI가 범인을 밝혀서는 안된다'는 법이라도 만들고 싶을 지경이다.
그 뿐만 아니다. 범인은 기묘한 방식으로 엽기적으로 살인을 한다. 그러나 범인이 왜 그런 엽기적인 살인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범인의 심리나 동기는 전혀 밝혀지지 않은 채 갑자기 죽고 만다. 헐....
내 기억엔 아마 책속에서 범인이 하는 대사는 한마디도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에 너무 불쌍한 범인이다. 살인의 주체라면 악역의 주인공인데 멋있는 대사 한마디라도 줘야 할 것 아닌가? 왜 그런 엽기적인 살인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독자들에게 변명 한마디라도 할 기회를 줘야 할 것 아닌가 말이다. 그것이 추리소설에 등장한 범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그럼에도 저자는 너무도 잔인하게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퇴장당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 외에 살인현장에 대한 잔인한 묘사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불필요하게 잔인한 장면을 연출해 내고 그 디테일을 묘사함으로써 비위가 약한 사람은 상당히 불편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은 없이 무조건 죽이고 찌르고 썰고 자르다가 황당하게 갑자기 끝나버리는 슬래셔 무비를 보는 기분이라고 하면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아무도 이책을 안 사면 나한테 thanks to 포인트도 떨어지지 않겠지만 권하건대 행복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지 마라. 행복해지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