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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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징팡은 문학과 과학에 대한 소양이 깊은 작가이다.
그녀의 이력만 보아도 글쓰기를 좋아하는 과학도라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물리와 천체물리로 하고 학석사학위를 받고 정작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에는 국가발전개발위원회 산하의 정책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교육사업에 투신하고 있다.
그녀의 이력은 현재 중국 사회의 일면을 연상시킨다.
재능있는 인재가 순수과학과 문학에 투신했다가 국가 기관 산하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사회산업을 한다는 점이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정신이 투철한 중국의 전통적인 지식인이 성향을 느끼게 한다고 해야 한다. 중국 지식인들은 전통적으로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왔으며 그러한 성향을 현재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개인의 자유보다는 관계와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중국 지식인의 가치관이 느껴지는 행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와 다르게 그녀의 작품은 개체로서 인간의 판단과 자유를 부각시키고 있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개체성을 인간 본질과 연관시키는 작품들이 <<인간의 피안>>에 담겨 있다. 특히, <당신의 어디에 있지>, <영생 병원>, <사람의 문제>, <인간의 섬> 모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불합리, 충동이 인간성의 일부분이며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는 무질서와 혼란은 인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전차 안 인간>에서 인간이 파괴에 대항하기 위해 AI에 의지하지만 이러한 의지까지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선택과 판단에 의한 것이며 <건곤과 알렉>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을 즐겨하는 AI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인간적인 무엇인가를 버리고 상실시키는 것이 아니라 AI가 인간의 이러한 점을 습득하고 수용하면서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중국정부는 국가빅데이터센터를 건립하고 모든 데이터를 중앙집권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과거 기술적 한계 때문에 판단과 선택을 지방에 분권하던 중국의 정치적 전통이 AI와 빅데이터로 인해 변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통제와 감시에 동원되는 <1984>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중국의 현재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엄습한다.

이런 상황에서 하오징팡이 <인간의 섬>에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질서가 아니라 불확실성과 감성이 폭발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긍정적으로 그린 점은 매우 흥미롭다.

하오징팡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함께 만드는 교육>이 국가에 충성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국민교육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관이 반영되고 하향식의 통일 교육이 아닌 참여와 숙의로 수행되는 교육이기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그녀가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정신세계를 파괴하지 않는, 합리와 효율로 무장한 존재에게 우리의 정신세계를 의탁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행복을 찾는 인간성을 가진 사람들이 중국 사회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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