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처음에 생각하게 된 계기는 ‘윤소라의 소라소리‘라는 오디오북 채널을 통해서 왕웨이롄의 ‘걸림돌‘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다.
무엇을 통해서 사회가 변화고 역사가 이루어지나 했을 때 사가들은 보통 통치자의 선택과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 기록하고는 한다.
하지만 ‘걸림돌‘은 통치자들이 받았던 압박에 대해 기술한다.
중국현대사에 대해 알고 있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지금의 중국이 있게 한 것은 덩샤오핑의 파격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덩샤오핑이 우려와 반대, 혹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개혁개방‘을 선언하지 않았다면 지금 중국이 구가하고 있는 성장과 풍요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걸림돌‘은 덩샤오핑의 선택은 원인이 아니며 또 다른 사회현상의 결과였다고 지적한다. 삶을 위해, 생존을 위해 역설적으로 죽음의 강을 건너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개혁개방은 선언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속삭인다. 그들에게는 애초에 거대한 이데올로기도, 철학도 없었다. 그들은 중국 본토에 있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혹은 생존 그 자체를 위해 죽음을 무릅쓴다. 성공하지 못해 죽어간 사람들이 물이 빠진 강하구에 쓸려 내려온 시체로 가득찰 때 도덕적인 정치가라면 어떻게 이를 무시할 수 있을까? 이러한 현상과 이러한 현상을 묵과할 수 없는 정치적 선택이 함께 만든 결과가 개혁개방이다. 그 때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이 없었다면......그 때 죽어간 사람들이 없었다면 개혁개방은 선언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왕웨이롄은 말한다.
이 점이 나에게 굉장히 인상깊게 다가왔고 왕웨이롄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져 걸림돌이 수록된 그의 중단편집 ˝책물고기˝를 읽게 되었다.
사실 모든 책이 그렇듯 사고 한참을 읽지 않고 있다가 다른 책들과의 연상으로 문득 이 책이 생각나 비로소 일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걸림돌을 포함하여 총 5편의 중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 소설들은 리얼리즘과 판타지가 혼재된 꽤 흥미로운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다‘는 죄의식과 도피의 감정으로 엄혹한 자연환경 속에 자신의 유폐시키는 사람에 대한 진술문이다. 화려한 중국이 아니라 황량하고 광활해서 한없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아마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아내가 느끼는 공포나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책물고기‘는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카프카의 변신처럼 어느 날 주인공에게 신체의 변화가 나타나고 이로 인해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내가 공포를 느끼고 주인공의 아내가 그를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변화에 혐오를 드러내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이 벌레로 변하지 않고 다른 생명체, 예를 들면 개나 고양이로 변했다면 카프카의 메세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공의 변화는 신체 전체가 벌레로 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가족으로 부터 소외되는 박탈감을 경험하게 된다. 카프카의 변신의 순한 버전인데 이런 일이 자신이나 주변인들에게 생겼을 때 보편적으로 인간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 다른 현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그 존재에게 가졌던 감정이 유지될 수 있을까??
‘아버지의 복수‘는 어떤 면에서 ‘걸림돌‘처럼 현재 중국의 사회상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도 개발붐이 불면서 이른 바 ‘알박기‘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란 이기적이거나 더 많은 돈을 탐내거나 이런 비판적인 측면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버지의 복수는 그야말로 복수이다. 반평생 광둥에서 살면서도 광둥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북방인인 혼자 남아 광둥의 풍경을 지키기로 결심한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 쉽게 재단할 수 있을까? 라는 문제 의식을 던져 주었다.
‘베이징에서의 하룻밤‘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뭐랄까...젊은 시절 아슬아슬하게 이성과 썸타는 그런 감정을 상기시켰다. 그런데 특정 대상이나 특정 시기에 대한 회상은 결국 이상화되기 마련이다. 아니, 그것이 이상으로 남아 있을 때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일상이 되고 익숙한 것이 되어 버리면 본래 그것이 가지고 있던 힘이 사라져 버리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사람도, 기억도, 감정도. 아마 주인공은 과거의 첫사랑, 혹은 자신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을 영원한 사랑과 결국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다. 이상화된 그 대상이 그 자신에게 주는 삶의 동력이 사라지는 것을 주인공 스스로가 별로 원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재미있었다. 중년이 되어도 다 자기 마음 속에 중2병 하나는 가지고 살아가는 거 아닌가?

중국에 대해 약간의 상식이라도 가진 사람들이 읽는다면 상황을 더 잘 이해할 것 같다.
만약 중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중국인도 개인적이고, 은밀하며, 중2병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 같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서 중국인은 중국공산당, 중화인민공화국과 같은 정치적 존재와 완전히 등치되는 것 같다.
중국에 인구만 14억이 넘는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동색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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