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위험하면 뻐끔거려 시인의일요일시집 43
이적온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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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온 시인의 『이제부터 위험하면 뻐끔거려』는 현대 사회의 '스펙터클'과 '정동적 무감응'이라는 주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시의 윤리적 역할을 재고하게 한다. 시집은 사고 현장을 '멍청이 통제'로 비유하거나, 위험을 '뻐끔거림'으로 치환하는 등, 이미지와 언어가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통렬한 성찰을 담고 있다. 특히 '삼중 추돌'에서 '적기'의 다의성을 통해 현대 예술과 사회현상이 어떻게 하나의 질주로 수렴되는 폭력적 단순화를 비판하는 점은 인상 깊다. 시인은 쉬운 이해와 단선적 해석을 거부하고, 오히려 의미의 복수성과 긴장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태도를 통해 독자에게 사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이는 단순히 어려운 시를 쓰겠다는 의지를 넘어, 무감각해진 현대인의 감각을 일깨우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윤리적 감응을 회복하려는 시인의 간절한 시도로 읽힌다. 'Fle(a)sh'에서 '비장소'를 '분산형 집회'의 공간으로 재해석하며 임시적이지만 다정한 연대를 모색하는 부분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따뜻한 관계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시인의 시선을 보여준다. 이 시집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면모를 시적인 언어로 해부하며, 독자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을 탐색하게 한다.

폐업한 가게에 장난 전화를 건다
허기처럼 불거지는 목소리는
거울을 뒤집어 놓고 믿어버리면 그만
- P51

그 문장은 나였고 피부를 대신한 그늘이었고
내 영혼이 세기에 걸쳐 되뇐 단 한 줄의 음계였는데
책을 덮으면 온데간데없었다
들려오는 언어를 무참히 깨달았다 - P59

내가 말보다 칼을 먼저 발음하자 할아버지는 내게 조각칼
을 쥐여 주었다. 날이 사포만큼 무디고 손잡이가 손가락에
맞게 파인 칼이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손을 겹쳐 잡고 창틈
으로 번지는 빛을 깎았다. 상아에 손톱자국이 남지 않게끔
엄지에 힘을 빼고 사막의 모래를 어루만지듯 부드러이 밀어
내는 법을 배웠다. 빛이 잘려 나간 자리에 어떤 기억이 조각
되었다. 그게 젊은 너였음은 나중에 알았다 - P64

기지개 켜듯
환해지고 마는 상처라니
빛 그물을 짜는 맨발이라니
눈부신 고통이라니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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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위험하면 뻐끔거려 시인의일요일시집 43
이적온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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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파편화된 감각을 독창적인 언어로 포착한, 사유의 깊이가 돋보이는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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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도 되는 날입니다 시인의일요일시집 44
신혜정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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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정 시인의 『가만히 있어도 되는 날입니다』는 고통과 상실의 서사를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담아낸 시집입니다. 시인은 『검은 시절』에서 '남겨진 자를 위한 애도'와 '지워지는 존재'의 비극을 다루며, 사회적 폭력과 무관심 속에서 개인이 겪는 아픔을 조명합니다. 특히 "이야기가 청자들의 마음을 슬픔으로 물들이는 동안/그이가 지워지고 만다"는 구절은, 죽은 자가 아닌 살아남은 자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사회의 폭력성을 날카롭게 꼬집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 시집의 특별한 점은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그 고통이 단순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존재의 변이와 진화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시인은 『아가미』에서 "생에서 생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물에서 물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숨에서 숨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라고 질문하며,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려는 존재의 근원적인 욕망을 탐구합니다. 이는 폐를 터뜨려 꽃처럼 피어나고, 수중생물이 되어 물속으로 들어가는 등, 생물학적인 퇴행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역진화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변이는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재구성하려는 시인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시집은 인간의 폭력과 불의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습니다. 『4』나 『파워게임』 같은 시들은 제주 4·3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연상시키며, 무고한 희생자와 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합니다. 시인은 "무엇을 피하는지도 모른 채 달아나야 했던 아이가 남긴/가쁜 숨소리 같은 파도"를 통해 이름 없는 희생자들의 아픔을 상기시키며, 독자들에게 기억의 윤리를 촉구합니다. 이러한 시들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넘어, 현재에도 이어지는 폭력의 양상을 성찰하게 합니다.

어쩌다 발을 헛디뎌 나는 넘어졌나
낙상한 곳에 위치한 차원의 굴곡
골절 사이 아득한 간극 - P18

당신은 떠났고, 나는 감정의 일부를 상실했다
고독 앞에서는 누구나 취약해질 것
갓난아기처럼 투명해질 것 - P27

슬픔이라고 외친다 가슴을 치며 울 수도 없는 손이 없는 자여 통곡할 입이 없는 자여 그리고 너 눈이 없어 눈물을 흘릴 수 없는 것들이여 - P39

아득하거나
너무 가까움이
문득 아찔하다는 생각
순간이
곧 영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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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도 되는 날입니다 시인의일요일시집 44
신혜정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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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의 언어는 때로는 시리도록 차갑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치유의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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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의 도시 시인의일요일시집 41
성은주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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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주 시인의 『코끝의 도시』는 고립된 도시인의 내면을 파고들어 상처와 외로움을 섬세하게 그립니다. 그러나 시는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부서지고 깨진 곳에서 피어나는 연대와 공감의 희망을 발견합니다. 아픔을 딛고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는 따뜻한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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