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눈사람 시인의일요일시집 46
김륭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가운 눈의 결정들이 모여 한 형체를 이루고, 필연적으로 녹아 사라질 운명을 지닌 존재. 김륭 시인의 『전업 눈사람』은 이 눈사람이라는 지극히 연약하고도 강렬한 은유를 통해 삶과 죽음, 상실과 사랑이라는 인류 보편의 주제를 섬세하면서도 뼈아프게 탐색합니다. 시집을 읽는 내내, 우리는 단순한 문학적 서사를 넘어선 깊은 사유의 층위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 시집의 중심에는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어머니, 즉 '당신'을 향한 시인의 절절한 애도와 미안함이 놓여 있습니다. 시인은 어머니의 '울음'을 말리기 위해 "바람에도 지워지질 않을 문장을 써야 한다"고 고백하며, 이 시 쓰기가 단순한 감정의 배설이 아닌 존재론적인 책임감에서 비롯됨을 보여줍니다. '전업 눈사람'이라는 제목처럼, 시인은 매 순간 녹아내리면서도 타인의 에필로그를 기록하고,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통과시키는 '동시(動詩)'를 지향합니다. '비석'이라는 부제를 단 시에서 어머니를 "산 채로 묻으려는" 행위나 '분갈이'를 통해 존재를 새로운 좌표계에 재배치하려는 시도는, 죽음을 단절이 아닌 관계의 재구성, 그리고 영원으로의 이식이라는 독특한 사유 방식을 드러냅니다.


시인이 사용하는 '울음', '뼈', '숟가락', '스모그'와 같은 핵심 이미지들은 이러한 애도의 윤리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울음'은 더 이상 감정의 표출이 아닌 사유의 리듬이자,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내면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입니다. "입이 안 되면 마음이라도 찢어 울음을 넣어주는 일, 그건 뼈를 넣어주는 일"이라는 고백처럼, '뼈'는 자기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소진의 행위와 연결됩니다. '숟가락'은 그 소진의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뼈를 나누어 쥐는 애도 공동체의 상징이 되고, '스모그'는 죽은 이들의 말과 울음이 응축된 공기로서 화자의 몸 안에서 "다른 사람이 우는 소리"를 듣게 만듭니다. 이처럼 시인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몸과 언어로 통과시키는 치열한 과정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어떻게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다시 당신을 만났으니, 이제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은 것처럼 간절해질 수 있다"는 역설적인 구절이나 "당신, 죽어도 괜찮아. 나랑 둘이서 사람보다 먼저 태어난 눈사람 보러 갈 테니까"라는 약속은 김륭 시인이 추구하는 관계의 영속성과 희망을 보여줍니다. 이 시집은 상실의 아픔을 직시하면서도, 그 아픔 속에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끝없이 간절해질 수 있는 사랑의 힘을 역설합니다. 『전업 눈사람』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수많은 상실 속에서 어떻게 애도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우리'로 다시 뿌리 내릴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따뜻한 위로를 동시에 건네는 작품입니다.

사랑은 특별하지 않아요. - P56

다시 당신을 만났으니, 이제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은 것처럼
간절해질 수 있다 언제나 - P90

사랑에 부딪혀 주저앉아 본 사람들만 볼 수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 P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