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하염없는 시인의일요일시집 23
강연호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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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호 시인과 함께 나이를 들어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톡톡 튀는 상상력이나 발랄한 언어의 감각을 기대하는 독자보다는 삶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를 아는 분들이 읽기에 가장 좋은 시집 같습니다.

어느새 중년에 접어든 시인의 시선은 맑고 순하게 느껴집니다.

지나온 것들을 되돌아보며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면서도 지금의 삶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나'를 들여다봅니다.

"떨어진 일회용 밴드를 다시 붙이는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 같아서 더 마음이 쓰입니다.

오랜만에 참 좋은 시를 읽었습니다. 

그대 호주머니에 드라이아이스
빠르게 기화하는 표정을 잡고 싶어서
닮고 싶어서, 한번은 나도 뿌리칠 기회가 있어야지
그대의 손금을 따라 꼼지락거리는 오후였는데
모래시계를 언제 뒤집었나 감감해질 때마다
떨어진 일회용 밴드를 다시 붙이는 마음
붙을 듯 떨어져도 견디는 침묵 - P96

스물에 애인을 놓치듯
서른에 꽃을 지나쳤는데

속눈썹 한 올 돌멩이 위에 얹어 놓는다 한들
간절히 엎드린 마음이 당신에게 건너갈 수 있을까

미처 떼어 내지 못한 스티커 자국처럼
집착은 접착과 닮아서

이미 차갑게 식은 찻물이라 한들
그래도 찻잔의 실금은 기억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 P104

궁금해지면 시작입니다
당신이 이해되지 않아서 다가갔지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해서 다행이었지요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궁금했겠어요?
문득 어지러웠고 당신이 밀었다고
혹은 끌어당겼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요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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