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낙낙 시인의일요일시집 16
조성국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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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쉽습니다. 무슨 말인지 빤히 읽히는데, 그렇게 쉽게 읽혀도 잔잔한 감동과 교훈이 있습니다. 교휸이라고 해서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한번 고민해보게 합니다. 하지만 이런 풍경은 시인의 반성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이나 공연한 마음에 대한 반성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이게 시의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은근히 재미가 있습니다. 중년의 독자에게 딱 어울리는 시집 같습니다. 삶의 비애를 알아버렸지만 그럼에도 삶의 재미를 바라보며 스스로 다독이는 시인의 모습이 시 속에 잘 그려져 있습니다. 어쩌면 그건 시인의 모습이 아니라 시를 읽은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지나가는 말투로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더니
진짜로 나를
불러들여 약속을 지켰다

흰 비닐 상보 깔고
일회용 접시에다 마른안주와
돼지고기 수육과 새우젓과 코다리찜과 홍어와
게맛살 낀 산적과 새 김치 도라지무침을 내오고
막 덥힌 육개장에 공깃밥 말아 먹이며
반주 한잔도 곁들어 주었다

약소하게나마 밥값은 내가 냈다 - P46

포개진 그릇 안에
나의 가장 뜨거운 것을 들이붓듯
차가운 너의 심장으로 들이붓은 뜨거움이 스며들 듯
일테면 뜨거움과 차가움이 만나서
서로에게 스며드는 동안
간극이 생긴다 그릇이 그릇에서 떠밀리듯 빠져나온다

너무 꽉 끼어 빼도 박도 못하는
그런 격의 없는 사이일수록 한번쯤 틈을 두고 볼 일이다
적당한 거리 두었는지 살펴볼 일이다 내가 너와 같이
네가 나와 같이 저버리지 않고
이드거니 바라보는 일이 그러하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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