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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당, 길을 걷다 ㅣ 하루, 쉼 2
이보경 지음 / 밝은미래 / 2025년 5월
평점 :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자랐지만
이제 뭍으로 나와 산 세월이 제주에서의 시간보다
더 길어진 제주사람이 눈을 가만히 감고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 보았어요.
구멍 뽕뽕 뚫린 까만 현무암들이 다정히도 모여 만든 낮은 돌담.
돌담 발치에는 하얗고 노란 수선화가 곱게도 피어있고
돌담 어깨에는 이름 모를 덩굴들이 스카프처럼 둘러있지요.

낮은 돌담에 구색을 맞춰 주는 듯
유독 더 낮은 알록달록 슬레이트 지붕들.
바닷가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한 장 한 장 그림들이
제주의 기억을 무자비하게도 끌어냅니다.
파랑에 섞여 더 신비로운 옥빛 바다에
동백꽃처럼 더 붉은 태왁들이 둥둥 파도를 타고,
내가 아는 제일 예쁜 초록의 미역들이
까만 바위를 뒤덮는 장면에서는
비릿하지만 더 킁킁거리고 싶은 바다의 냄새와
수면에 반사되는 햇볕이 닿는 그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한치잡이 배가 밝혀주는 제주의 밤바다,
바람에 몸을 맡겨 편안히 누워버리는 청보리.
바닷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노란 유채꽃.
돌틈 사이사이 자리 잡고 동글동글 보랏빛 열매를 맺는 선인장까지.
제주를 이렇게나 잘 담아낸 그림책은 처음이에요.
제주의 사계절과 제주의 색깔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여행자든지, 제주도민들이든지
제주를 겪어 본 모든 사람들이
일상을, 기억을,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바람이 바다에서 불어와도, 바람이 바다로 불어도
제주는 늘 그렇듯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지요.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사주신 <모드락숲의 선물>로
처음 알게된 섬세하고 따뜻한 이보경 작가님의 글과 그림들.
제주를 안아주는 따뜻한 마음을 느껴보세요.
어느 페이지를 펼쳐놓아도 제주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바당, 길을 걷다>
제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읽어보고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