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류계도 식민행정의 후원자였다. 부산데이나 상공제 등은 관청, 시민, 화류계가 공동으로 벌이는 일대 행사였다. 상하이, 펑톈, 블라디보스토크를 따라갔듯 매춘부는 일본 제국의 동반자였다. 1905년 펑톈에 사는 일본인의 3분의 2가 여성이었으며 그중 대다수는 매춘부였다. 1890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는 일본인 392명 중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3.2대 1이었고, 1900년경에는 일본인 1천명 중 200명이 매춘부였다.
인근지역과 규슈에서 흘러들어 온 창기들로 경남은 줄곧 창기가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1930년 경남의 창기들 중에서 나가사키, 후쿠오카, 구마모토 출신이 일본인 창기의 55.3%를 차지했고, 조선인 창기 중에서는 경남 출신이 32.2%였다. 부산 미도리마치는 일본인 창기가 가장 많은 유곽 단지였다.˝
한석정, 만주모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