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49)

 

 

 

 

최근에 나온 책으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독일의 20세기 최고비평가로 꼽히는 벤야민의 '주저'이자 미완성 수고 <아케이드 프로젝트>(새물결)이다. 일찍부터 '소문'은 무성했던 책인데, '드디어' 출현한 것. 지난주 아무런 예고도 없이 구내서점에 책이 들어온 걸 보고 잠시 놀랐는데, 한국어판은 4권으로 분권돼 나올 예정이라고(4권이 양장본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면 분권으로 나오는 반양장본은 8권이 될 것이다). 아마도 최근 몇 년간 출간된 인문학 번역서로서는 가장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지 않을까 싶다. 하니, 의당 친절한 안내서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 그런 도우미로 정평있는 책이 수잔 벅 모스의 <시각의 변증법>이고, 알다시피 이건 이미 작년에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문학동네)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만하면 풍성한 식탁이다.

간혹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번역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이 내 주변에도 있는데, 인문서 번역의 평균적인 '실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투정'에 불과하지 않나 싶다. 원저와 대조해서 읽어본 이라면 알겠지만, 번역하기 까다롭지만 역자가 나름의 수완을 발휘한 대목들을 적잖이 찾아볼 수 있다. 내가 100여 쪽을 읽으면서 발견한 가장 두드러진 오역은 다음의 한 대목뿐이다(나머지는 사소하다). 91쪽의 맨마지막줄, "테크놀로지가 약속하는 '새' 자연에 대한 극단적 낙관 그리고 역사의 흐름에 대한 총체적 비관 - 이것이 없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결코 선사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이것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모든 단계를 특징짓는 중요한 경향이다."(강조된 부분이 오역이다) 

내용상으로도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 원문은 이렇다: "Extreme optimism concerning the promise of the 'new' nature of technology, and total pessimism concerning the course of history, which without proletarian revolution would never leave the stage of prehistory - this orientation characterizes all stages of the Arcades project."(64쪽, 강조는 나의 것) 내용은 '극단적인 낙관주의'와 '총체적 비관주의'가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모든 단계를 특징지어준다는 것인데(도시 혹은 아케이드에 대한 벤야민의 매혹은 언제나 양가적이다), 역자는 'which without'을 'without which'로 잘못 봄으로써 엉뚱한 오역을 범하고 말았다. 다시 옮기면, "'새로운' 성격의 테크놀로지가 약속하는 바에 대한 극단적인 낙관주의와 역사의 전개과정에 대한 총체적인 비관주의(역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없다면 내내 선사적 단계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전 단계를 특징짓는 방향성이다." 이건 물론 사소한 실수이지만, 결과는 좀 문제가 되는 오역이다. 다행스러운 건 그래도 이런 오역이 거의 드물다는 것이고, 우리의 번역 현실에서 이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현실' 말인가? 가령, 작년에 재판 5쇄까지 찍고 있는 리처드 커니의 <현대유럽철학의 흐름>(한울) 같은 책을 보자(나는 이 조잡한 번역서가 아직까지 유통되는 까닭을 모르겠다). 벤야민에 관한 장이 어떻게 번역되고 있는가? "보들레르는 벤야민에게 도시를 방황하는 일이 공간적 변화보다는 순간적 진보의 문제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177쪽; 내가 갖고 있는 책은 1995년 초판 5쇄이지만, 그 사이에 번역이 수정됐을 리는 만무하다) 보들레르가 벤야민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웅'인지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벤야민이 보들레르에게 배운 것이 '공간적 변화'가 아닌 '순간적 진보'의 문제인가?

원문은 이렇다: "Baudelaire taught Benjamin that stray through a city was to discover how meaning is less a matter of temporal progress(chronos) than of spatial placement(topos)."(1994년, 2판, 152쪽) 그러니까 정확히 정반대, 즉 파리의 산책자 보들레르가 가르쳐준 것은 '시간적 진보(크로노스)'가 아니라 '공간적 배치(토포스)'가 갖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점은 벤야민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를 매혹시킨 것은 '시간의 공간화'이기 때문이다(오죽하면, 벤야민 자신이 '관상학'을 얘기하고 '정지의 변증법'까지 말하겠는가?). 여하튼, 인용문과 같은 오역문들로 아주 범벅이 돼 있는 책이 대학가에서 내내 교양 철학서로 팔려나가고 있는 현실은 개탄스럽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이런 책을 철학강의의 참고문헌으로 올려놓는 강사/교수들도 없지 않은데,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파렴치한들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애꿎은 학생들의 머리는 왜 혹사시킨단 말인가?..

  

 

 

 

성질을 부려봐야 건강에 좋지도 않으므로 다른 책 얘기로 넘어가자. 이언 해킹의 과학철학서 <표상하기와 개입하기>(한울)가 출간됐다(또 한울출판사로군. 요컨대 이 출판사가 엉터리책만 내는 건 아니다). 부제는 '자연과학철학의 입문적 주제들'이고, 말 그대로 과학철학 입문서이다. 하지만, (적어도 역자의 의견을 참고해보건대) '최고의' 입문서이다. 구내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됐는데, 나에게 '이언 해킹'이란 이름은 <왜 언어가 철학에서 중요한가>(서광사, 1989)의 저자로 각인돼 있다. 즉, '언어철학자'로. 그런데, 웬걸, 이 양반이 어느새(!) '과학철학'의 대가가 돼 있지 않은가?

게다가 영어권 학자로는 아주 드문 일일 텐데, 현재 콜레주 드 프랑스의 '과학적 개념의 철학과 역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것!  짐작에 그 자리는 푸코의 스승이기도 했던 캉키옘(캉킬렘) 같은 이가 맡았던 자리 아닌가? 어쨌든 저자의 '포지션' 하나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책일 텐데, 이 신간은 해킹의 대표작이면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와 비견될 만한 저작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는 우선은 '두 번' 놀라면서 책을 손에 들 일이다. 읽는 건 나중에 '천천히' 읽더라도(역자의 서문 정도 읽어놓고)... 참고로, 역자는 신뢰할 만한 전공자이다. 훌륭한 저자와 역자가 패키지로 묶인 이런 류의 책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참고로, 토마스 쿤 덕분에 '대중화'된  과학철학에 대해서 입문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최근 목요일판 한겨레 책/지성 섹션에 연재되고 있는 '과학속 사상, 사상속 과학'을 죽 훑어보시는 게 좋겠다. 그럼 대략의 개념/구도가 잡힐 것이다. 거기서 좀더 나아가고자 하는 독자라면, 쿤이나 포퍼, 라카토스('라카토슈' '러커토시'), 파이어아벤트 등을 읽으면 되는데, 자세한 서지는 '과학철학'을 검색하거나 <표상하기와 개입하기>의 역자 서문을 참고하는 게 좋겠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둘러싼 논쟁을 다룬 <현대과학철학논쟁>(아르케, 2002)이 좀 어렵지만 기본서이고, 국내 필자들의 쓴 것으론 <현대 과학철학의 문제들>(아르케, 1999)이 있다. 물론, 이렇게 두꺼운 책들만 읽어야 하는가란 푸념이 나올 수 있겠다. 요령이 없지는 않다. 지아우딘 사르다르의 <토마스 쿤과 과학전쟁>(이제이북스, 2002)은 '분량대비' 최고의 입문서(내가 읽은 아이콘북스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읽을 만했던 책).

사실인즉, 그 유명한 <과학혁명의 구조>도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요즘은 고등학교 논술주제로도 자주 등장하지만). 내가 열아홉살, 대학 1학년때 읽기에 가장 어려웠던 책 두 권이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과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였다. 해서, 두 책에 대한 나의 이해는 대부분 2차 문헌들에 근거한다. 요즘은 두 책의 요지에 대해서 30분 정도씩은 강의라도 할 수 있지만, 정작 책을 펴놓고 한 구절씩 막힘없이 읽어나가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두 책을 덮은 지 10년도 더 됐기 때문에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을 테지만). 해서, 리라이팅 시리즈(그린비)나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살림)에서 다루어짐직하다(<과학혁명의 구조>는 목록에 들어가 있는바, 책이 나오면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다).   

 

 

 

 

세번째는 역사분야의 책으로 먼저, 프랑스의 혁명가 로베스 피에르의 평전,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교양인). 저자는 장 마생이고, 책은 로베스피에르 평전이 고전이라고. 물론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로베스피에르 평전"이다. 752쪽의 분량도 어느 정도 신뢰감을 준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프랑스 혁명의 중심 인물이자 프랑스 혁명 자체와 동일시되는 인물, 로베스피에르를 통해 바스티유 함락에서 국왕 처형, 혁명의 몰락에 이르는 프랑스 혁명의 숨가쁜 과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요컨대, 로베스피에르란 문제적 인물을 통해서 프랑스혁명사를 읽고자 하는 것(지난주 한겨례의 서평은 밑도 끝도 없이 시작부터 '최교수' 운운하고 있었는데, 책의 머리말은 서울대 서양사학과의 최갑수 교수가 썼다). 

비단 역사를 읽을 때, 반드시 '문제적 인물'의 시선과 행적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어제가 광복절이었지만, 해방 6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여러 종의 책 가운데 <8.15의 기억>(한길사)을 꼽아두고 싶다. "책은 KBS 광복 60주년 프로젝트팀이 '8.15의 기억 - 우리는 8.15를 어떻게 기억하는가'를 제작하면서 채록한 구술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마침 나는 그 프로그램을 TV에서 봤다. 인상적이었다(특히 일본군 포로들과 함께 시베리아에까지 끌려가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한 분들도 있었다). 형식상으론 일종의 '구술사'인데, 이러한 살아있는 증언들은 (진리뿐만 아니라) 역사도 '구체적'이라는 걸 새삼 말해준다.

 

 

 

 

네번째 책은 오사와 마사치의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그린비). 저자에 대해서 나는 아는바 없지만, '언어'나 '화폐' '커뮤니케이션' 등을 키워드로 삼고 있는 걸로 봐서 가라타니 고진의 자장권 안에 있는 학자인 듯싶고, 그런 경우 대략 읽을 만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제목의 '선정성'에 기대를 건 독자라면 실망할 테지만. 역자는 고진의 <윤리11>, <일본정신의 기원> 등을 번역한 송태욱씨이다. 책은 출판사의 안목을 따른 것인지 역자의 안목을 따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믿을 만한 역자라는 게 일단은 안심. 박해일, 강혜정 주연의 영화 <연애의 목적>이 지난주에 비디오로 출시됐던데, 조만간 '연애의 목적'을 주시하면서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해 숙고해봐야겠다...

 

 

 

 

 

마지막 책은 아옌데와 함께. 칠레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신작 <세피아빛 초상>(민음사)이 번역돼 나왔다. "<영혼의 집>, <운명의 딸>을 잇는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여섯 세대에 걸친 여성들의 역사를 완성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칠레의 대표적인 작가로 군림하고 있지만, 아옌데의 작품을 나는 아직 읽은바 없고, 다만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영화 <영혼의 집>(1993)을 10년도 더 전에 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신작을 꼽은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책의 역자가 친구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그(녀)가 아옌데의 소설을 한 권 번역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간혹 만날 때마다 일의 진행상황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다. 알고 보니 이 책이었던 것이다(생각보다는 두껍군!). 개학을 하게 되면, 점심 한끼 사주고 책을 건네받아야겠다(이렇게 홍보까지 하고 있으니 점심도 얻어먹을까?). 그나저나 책이 좀 팔려야 나중에 한 턱 내라고 할 텐데...

05. 08. 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들뢰즈와 푸코는 니체를 어떻게 오해했나

'들뢰즈와 푸코는 니체를 어떻게 오해했나'란 제목은 최근에 박찬국 교수(서울대 철학과)가 <인문논총>(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제54집)에 발표한 서평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수용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을 소개하고 있는 '교수신문'(06. 03. 08) 강성민 기자의 기사 타이틀이다. 박교수의 서평 대상이 된 책은 독일 학자 레만의 저서 <포스트모던적 좌익 니체주의(Postmoderner Links. Nietzscheanismus)>(2004)이다.

저자 레만은 우리에게도 이미 소개되어 잘 알려진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이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시도하고 있는데, 참고가 될 만하기에 서평과 기사를 여기에 옮겨온다(먼저 나오는 전체 서평을 읽기가 부담스러운 분들은 나중에 나오는 요약기사를 읽으시면 되겠다). 참고로, 인용에서 군말과 강조는 나의 것이며, 서평은 '자꾸 때리다'님의 서재에서 옮겨왔음을 밝혀둔다. 덧붙여진 이미지들은 모두 나의 '조작'이다.    

서평(박찬국) 이 책의 서문은 1980년에 지오르다나(Giordana)라는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진 'Maledetti Vi Amer'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는 좌익테러리즘과 여피(Yuppi) 문화 사이에서 방황하던 리카르도라는 이름의 청년이 자살하기 바로 직전에 포스트 좌파의 새로운 가치관을노트에 쓴다.

“에로틱은 좌파적이고 포르노는 우파적이다. [섹스에서] 전희(前戱)는 좌파적인 반면에 삽입은 우파적이다. 이성애는 우파적이지만 동성애는 [사회적 금기의] 위반(違反)이라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좌파적이다. 해쉬시(Haschisch)는 좌파적이지만, 암페타민, 코카인 그리고 헤로인은 우파적이다. 니체는 새롭게 평가되었고 이제는 그는 좌파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우파다.”(*'해쉬시'는 '해시시'를 말한다.)

 

 

 

 

“니체는 좌파고 마르크스는 우파다.” 얼핏 기상천외하게 들리는 이 주장은 푸코 바람이 지나가자 이제 들뢰즈 바람이 불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생소한 주장만은 아니다. 게오르그 루카치의 <이성의 파괴>(심설당, 1997)와 같은 책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처럼 니체는 한때 좌파에 의해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적이자 서양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이데올로그로 간주되었었다. 그 니체가 이제는 일부 급진좌파들에 의해서 관료주의에 대한 저항과 함께 차이와 다원성에대한 존중을 설파하는 사상가로 간주되고 있다. 역사상 그 어떠한 사상가에 대한 평가도 이렇게 극에서 극을 달린 적은 없었다.

 

 

 

 

우리는 니체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니체를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이데올로그로 보는 루카치식의 견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니체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무정부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가이고 초인들에 의한 귀족주의적인 지배를 주창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니체는 분명히 그의 <안티크리스트>에서 이상적인 사회형태는 다음과같은 세 계층, 즉 정치를 전담하는 정신적으로 탁월한 소수와 육체와 기질이 강하여 방위를 전담하는 군인 그리고 경제활동을 담당하는 다수의 평균인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니체가 생각하는 이러한 이상적인 사회는 플라톤에 대한 니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의 이상국가와 극히 유사하다는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레만의 책 <포스트모던적 좌익 니체주의>는 이렇게 엘리트주의적인 사상가인 니체를 다원성과 차이의 존중을 설파하는 철학자로 보는 최근의 니체 이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책이다. 이러한 비판적인 검토는 레만이 이러한새로운 니체 이해가 주로 들뢰즈와 푸코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에결국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수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된다. 

레만은 들뢰즈야말로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 경도된 지식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니체 해석을 제시한 철학자로 보고있다. 들뢰즈에 의하면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사상은 근대의 관료주의적인 정신과 문화에 의해서 침윤되어 있는 반면에 니체는 근대의 합리적인 관리 메커니즘을 거부하는 유목적인 사유(das nomadisierende Denken)를 제창하고있다. 근대의 철학자들은 근대의 합리적인 관리 메커니즘을 순수이성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반면에, 니체에게 사유는 그러한 메커니즘에 대한 ‘전쟁 기계’(Kriegsmaschine)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푸코 역시 고고학적인 사유단계에서든 계보학적인 사유단계에서든 자신이 니체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주체와 휴머니즘 그리고 도덕에 대한 니체의 비판을 역사적인 자료에 입각하여 구체화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고있다.

이 책은 들뢰즈의 니체 해석을 분석하고 있는 1부와 푸코의 니체 해석 뿐아니라 푸코 사상 전체를 그의 니체 해석과 연관하여 분석하고 있는 2부와 3부 그리고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레만은 들뢰즈의 책 <니체와 철학>에서 들뢰즈가 니체 철학에 의거하여 변증법에 대해서 가하고 있는 비판을 검토하는 것으로 1부를 시작하고 있다. 들뢰즈는 변증법이 차이를 무시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총체적인 종합의 틀안에 가두게 된다고 본다. 들뢰즈의 변증법 비판에 대해서 레만은 들뢰즈가 헤겔의 사변적인 변증법을 변증법 자체와 동일시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동시에 들뢰즈가 부정, 대립 그리고 모순이라는 변증법의 사변적 원리에 대해서 그에 못지않게 사변적인 원리인 차이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레만은 대립에 대해서 말할 경우 우리는 반드시 부정과 모순에 대한 헤겔적인 개념에 의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는 헤겔의 ‘분열’(Entzweiung)과 부정 그리고 모순 개념이 선행적인 전체적인 통일을 전제하는 것에 반해서 대립개념은 일차적으로 실제의 사회적 대립을 가리키며 논리적으로 이미 전제되어 있는 통일적인 체계연관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논리적인 모순 관계가 아닌 실제적인 대립관계를 가리키며 이러한 대립관계를 단순한 차이로 보는 것은 사회적인 현실에서는 다양한 차이들이 사실상 서로 간의 적대적인 대립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을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레만은 헤겔의 변증법과는 달리 실제적인 대립을 사변적인 통일의 계기로 환원시키지 않는 변증법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즉 ‘고독한 사상가가 자기 자신과 나누는 독백인 헤겔의 변증법’과는 달리 포이에르바하의 변증법은 ‘나와 너의 대화’에 입각해 있으며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미리 구성되어 있는 모순의 논리에 대해서 ‘실제적 차이들’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변증법에 대한 들뢰즈의 비판과 관련해서 레만은 초기의 니체는 변증법을 그것이 천박한 낙관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동시에 니체의 이러한 변증법 비판은 귀족주의적인 지배에 대한 민중들의 거부에 대한 비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변증법은 귀족주의적 지배에 대해서 민중들이 가졌던 원한의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레만은 니체는 헤겔을 공격하면서도 그의 변증법적인 사유방법을 나름대로 수용하고 이용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사실은 레만에 의하면 <도덕의 계보학> 3부에서 범례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고 본다. 니체는 여기서 금욕주의적인 생명부정이 빠지는 자기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금욕적인이상은 삶을 부정하면서도 그것은 사실상 삶에 대한 보존본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떠한 사태 내에 존재하는 대립적 긴장을 강조하는 것은 들뢰즈가 니체에서 읽어내고 있는‘다원적인’차이를 중시하는 사유와는전혀 성격을 달리 한다.

니체를 다원주의자로 보는 들뢰즈의 니체 해석을 그것이 의거하는 텍스트자체에 입각해서 검토해 보면 그러한 해석은 후기 니체의 관점주의가 갖는 신분차별적인 성격을 무시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들뢰즈는 자신의 ‘차이’개념을 니체가 말하는 ‘거리의 파토스’라는 귀족주의적인 열정으로부터 끌어내고있다. 그러나 니체에서 신분적으로 고귀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사이의 간격을 가리키는 이 개념은 들뢰즈에서는 생을 긍정하는 능동적인 힘들을 수동적이고 생을 부정하는 힘들로부터 구별하는‘차이’로 변형된다. 니체에서는 정치적인 위계질서를 정당화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 개념이 들뢰즈에서는 그러한 정치적인 성격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레만은 들뢰즈가 니체의 통찰을 자기 나름대로 변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들뢰즈가 정치적인 위계질서에 대한 니체의 집착을 무시하면서 니체의 이름으로 자신의 사상을 정당화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다.

레만은 들뢰즈가 니체 사상이 가지고 있는 반민주주의적인 성격을 무시하는 것은 그가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스피노자의 ‘행위능력’(potentia agendi)과 동일시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고 본다. 포스트모던적인 사고에 따르면 역사적인 ‘연속성’은 부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들뢰즈는 니체와 스피노자 사이에 연속성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스피노자와 니체의 철학을 텍스트에 입각해서 검토해 보면 들뢰즈가 양자의 힘 개념과 의지 개념이 갖는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와 동시에 들뢰즈는 후기 니체가 스피노자에 대해서 비판적인 자세를 분명히 하였다는 사실과 스피노자가 민주주의를 주창한 반면에 니체는 반민주주의를 내세웠다는 사실을 무시하고있다.

들뢰즈의 니체 수용에 대한 이러한 비판에 의거하여 레만은 들뢰즈가 과연 니체를 제대로 읽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레만은 들뢰즈 자신은 당연히 물론이고 들뢰즈와 같은 포스트모던적인 니체주의의 주창자들뿐 아니라 하버마스와 같은 그것의 비판가들마저도 들뢰즈가 니체를 올바르게 해석했다고 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레만에 의하면 들뢰즈는 니체의 사상을 자신의 사상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는 경향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들뢰즈의 니체 해석이 타당한지를 엄밀하게 검토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구조주의가 지배하던 프랑스에서 니체는 들뢰즈를 통해서 권력이론가로서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니체에 대한 들뢰즈의 해석은 올바른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니체의 권력개념과 들뢰즈의 권력개념을 양자의 텍스트에 입각해서 철저하게 검토하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들뢰즈와 마찬가지로 니체를 ‘모든 규범에 대한’ 무정부주의적인 반항아로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파악과 함께 하버마스는 니체에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비판이론 그리고 포스트모던으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상정하고 싶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레만은 이렇게 니체와 호르크하이머 그리고 아도르노 사이에 연속성을 상정하면서 이들을 모두 ‘반근대적인 이데올로기 비판가’로 보는 하버마스의 해석은 후기 니체가 주인 도덕의 입장에서 자신의 규범비판과 이데올로기비판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고 본다.

제2부와 3부 그리고 4부는 푸코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푸코는 자신의 사유도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니체주의자(Nietzscheaner)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푸코의 니체 해석은 들뢰즈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레만은 푸코의 니체주의가 어떠한 성격을 갖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의 탐구에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푸코처럼 자신을 권력과 주체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가로서 이해하는 사상가가 후기의 니체처럼 가장 철저하게 권력과 지배를 긍정하는 사상가를 거듭해서 원용한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의식 아래 행해진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물론 레만은 니체를 파시즘의 사상적인 원조로 보는 루카치식의 니체 해석이 니체 철학이 가지고 있는 다의성과 19세기후반과 1차 대전 이후 파시즘의 생성기 사이의 역사적인 거리를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치의 친위대가 니체에 열광했으며 니체 사상이 이들에 의해서 ‘살 가치가 없는 인간들’의 절멸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니체의 형이상학비판과 보편주의적인 이데올로기와 보편주의적인 진리주장들에 대한 비판은 포스트모던과 상통하지만 그것이 파시스트들의 손에서 전쟁과 인종청소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것이다.

푸코는 니체 사상의 엘리트주의적인 성격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레만은 푸코 자신이 니체 사상을 텍스트에 충실하게 해독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1975년의 한 인터뷰에서 푸코는 니체 사상에 대해서 우리가 표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중은 ‘그를 이용하고왜곡하며 학대하고 비명을 지르게 하는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푸코의 니체 해석이 텍스트 자체에 대해서 얼마나 정당한지에 대한 문헌학적인 물음은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다만 남는 것은 푸코가 이용하고있는 니체가 어떠한 니체인지를 밝히는 것뿐이다.

 

 

 

 

2부는 1960년대의 초기 푸코, 특히<사물의 질서>(*<말과 사물>을 가리킨다)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푸코는‘인간의 종말’에 대한 니체의 사상에 의거하면서 ‘인간학적인 시대’의 휴머니즘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이론들을 이미 낡아버린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니체는 ‘인류’라는 개념이 초인들의 육성에 방해가 되는 평등을 상정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는 반면에, 푸코에서는 인간에 대한 니체의 이러한 거부가 마르크스의 소외와 프로이드의 무의식 개념을 극복해야만 하는반-인간학(Anti-Anthropologie)으로 변용되고 있다. 아울러 푸코에서는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이 갖는 종교적인 성격도 무시되고 있다. 니체의 ‘초인’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니체에서 초인이 갖는 정치적 성격, 즉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지배자로서의 성격’이 무시되고 있다. 

3부에서는 1969년에서 1972년 사이의 푸코 사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시기는 푸코가 급진좌파로서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시기다. 여기에서는 푸코가 알튀세의 초기 이데올로기 개념을 거부하고 그것을 우선 ‘인식’이란 범주로 해소한 후 니체처럼 진리와 권력 의지의 결부에 주목하면서 권력이란 범주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레만은 푸코는 모든 것이 권력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는 일종의 권력 환원주의에 떨어지게 되며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과 투쟁을 고려하지 않게 된다고 보고 있다. 

4부에서는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 대해서 상세히 검토하고 있다. 이 책은 푸코가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의 주제를 수용하고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레만은 여기서 푸코가 주장하는 신-니체주의적인 이론이 푸코가 역사를 파악하는 데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레만은‘감시와 처벌의 역사’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서인 <처벌과 사회구조>(저자는 Rusche와Kirchheimer)와 푸코의 책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편으로 푸코는 복종과 주체 구성의 공간적.시간적 구조들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사회사에 대한 연구를 확장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인 자료들을 지나치게 이념형적으로 구별함으로써 분석의 섬세함에서는 루쉐(Rusche)와 키르히하이머(Kirchheimer) 수준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감금이 각 시대마다 어떠한 형태들을 취하는지를 세심하게 구별하고있다. 이에 반해서 푸코는 경제적인 이익의 획득을 주요한 목표로 삼는 형벌체계들과 교화를 주요한 목표로 삼는 형벌체계들을 구별하지 않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통해서 개혁된 감금방식과 나치체제 하에서의 감금 방식을 구별하고 있지 않다. 더 나아가 푸코는 감방과 일반적인‘규율사회’를 본질적으로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레만에 의하면 푸코의 분석이 갖는 이러한 문제점은 푸코가 니체의 <도덕의계보학>에서 제시 되고 있는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고 본다. 즉 니체는 형벌체계의 역사적인 전개를 신체에 대한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폭력(고문)에서 주체에 대한 정교하면서도 완화된 지배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시각을 푸코가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푸코가 형벌체계들이 갖는 차이들과 형벌과 일반적인 사회적인 규율이 갖는 본질적인 차이를 무시함으로써 푸코는 형벌체계를 자본주의각 시기의 특성과 연관해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분석에 입각하여 레만은 포스트모던적인 니체주의는 사회에 대한 넓은 의미의 비판이론과 사회과학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볼 때 해롭게 작용했다고 본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보다 섬세한 사회분석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를 전복시키겠다는 제스처만 취할 뿐 그때 그때의 사회구조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분석도 변혁의 방안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던적인 니체주의가 어떻게 해서 유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레만은 나름대로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푸코와 들뢰즈에 의해서 재평가된 니체는 급진좌파들에게 사회변혁을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실천적인 방안도 제시하지도 추구하지도 않으면서도 자신들이 급진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통찰력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전쟁’과 ‘전쟁기계’라는 들뢰즈의 은유가 들뢰즈의 난해하기 그지없는 비교( 敎)적인 철학적인 담론에 게릴라 전쟁이라는 혁명적인 색채를 부여하고 있다. 레만은 이러한 실속 없는 과격함이 치루는 대가는 좌익으로도 우익으로도 기울 수 있는 정치의 모순적 미학화(eine widerspruliche Asthetisierung des Politischen)라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레만은 포스트모던 니체 좌파들에 대한 이글턴(T. Eagleton)의 풍자를 인용하고 있다. 

“좌익으로 기우는 주장: 진리, 인식 그리고 도덕을 분쇄하라, […] 그리고 그대의 창조적인 힘들을 자유롭고 근거를 갖지 않는 유희 속에서 실현하면서 풍요롭게 살아라. 우익으로 기우는 주장 […] 이론적인 분석에 대해서는 잊어버려라. 감각적인 개별자를 소중히 하라, 사회를 자기를 근거지우는 유기체로서, 즉 그것의 모든 부분들이 아무런 갈등 없이 서로를 기적적으로 침투하고 아무런 합리적인 정당화도 필요로 하지 않는 유기체로 간주하라.” 

레만은 포스트모던적인 니체 해석이 갖는 문헌학적인 문제성과 이론적인 약점들이 대부분의 이차문헌들에 의해서 무시되거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다. 레만은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염두에 두고 들뢰즈와 푸코를 읽을 때 그들의 생산적인 통찰도 제대로 살릴 수 있다고 본다.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해석에 대한 레만의 비판은 전체적으로 볼 때 모든 사회적 대립과 차별이 극복된 유토피아 사회에 대한 급진좌파적인 열망에 입각해 있다. 이러한 열망은 레만의 열망이기도 하지만 들뢰즈와 푸코의 열망이기도 할 것이다. 들뢰즈와 푸코는 대립과 차별 대신에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존중이 지배하는 사회를 지향한다. 들뢰즈와 푸코 그리고 레만이 지향하는 사회는 사실상 동일하기 때문에 레만은 들뢰즈와 푸코가 이러한 열망 자체를 부정하는 니체 철학을 자신들의 사상적인 기반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본인은 레만이 들뢰즈나 푸코의 니체 해석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밝히는 데 있어서 많은 기여를 했음을 인정한다.

레만이 강조하듯이 니체 사상이 갖는 엘리트주의적인 성격과 반민주주의적인 성격은 우리가 니체를 해석함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라고 여겨진다. 니체 사상의 엘리트주의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성격은 레만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의 후기 사상에서만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니체의 사유도정 전체를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니체의 형이상학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그의 형이상학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레만은 니체 철학의 이러한 성격을 강조하면서 들뢰즈와 푸코 사상이 갖는 문제점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레만이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해석이 갖는 문제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그가 니체에 대해서 취하는 입장이 공정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들뢰즈와 푸코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대립 대신 차이에 대한 존중이 지배하는 유토피아를 지향한다. 그리고 그는 니체를 평가할 때도 이러한 유토피아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니체 철학이 얼마나 철학적으로 기여할 수있는지라는 관점에서 니체를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평가는 단호하다. 반민주주의자이자 반사회주의자 그리고 반무정부주의자로서의 니체는 사회변혁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수용에 대한 그의 비판도 니체에 대한 그의 이러한 평가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레만은 들뢰즈와 푸코 사상이 현실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분석도 제시하지 못하고 현실 변혁에 어떠한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사태가 상당 부분 그들이 니체에 의거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니체는 레만과는 전혀 달리 유토피아를 열망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러한 유토피아에 대한 열정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미래에 구현되어야 할 유토피아란 기독교의 피안에 대한 대용개념일 뿐이라고 본다. 그는 동물사회에서 동물들 간의 대립과 갈등이 불가피한 것처럼 인간 사회에서도 집단들 및 개인들 간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고통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대립과 갈등 그리고 고통은 인간 개개인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본다. 이는 하나의 나무가 강하게 자라기 위해서 온실이 아니라 폭풍우가 필요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대립과 갈등을 레만이나 들뢰즈나 푸코처럼 차이에 대한 존중이 지배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통해서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들뢰즈나 푸코 못지않게 레만도 니체 자신의 이러한 문제의식에는 눈을 감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유토피아에의 열정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면서 이러한 전제 하에서 니체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니체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니체 자신의 문제의식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여기서 길게 논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니체 자체의 문제의식에 대한 존중에 입각하여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해석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해석은 레만이 드러낸 것과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문제점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 

본인의 이러한 주장은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해석에 대한 레만의 비판이 부당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레만의 비판은 마르크스적인 사회분석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는 입장에서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해석에 대해서 가해질 수있는 비판이 궁극적으로 가질 수 있는 형태를 전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레만의 비판은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해석에 대한 레만의 비판은 이러한 특정한 관점에 구속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을 떠나 니체 자신의 문제의식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해석을 비판하는 길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길은 레만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해석이 갖는 문제점을 밝혀 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해석을 비판할 때 우리 시대에 니체가 갖는 의미도 새롭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기사(강성민)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이해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박찬국 서울대 교수(철학)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이 펴내는 <인문논총> 최근호(제54집)에서 발표한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수용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에서 그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박 교수의 이 글은 독일의 학자 레만의 2004년 저서 '포스트모던적 좌익 니체주의'에 대한 서평이다. 박 교수는 글의 서두에서 그간의 니체에 대한 평가에 불만을 표시한다. 니체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는 것.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적이자 서양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이데올로그로 간주되었던 그가 이제는 일부 급진좌파에 의해서 관료주의에 대한 저항과 함께 차이와 다원성에 대한 존중을 설파하는 사상가로 간주되고 있다"고 그 표변함을 지적한다.

그러나 반동된 최근의 니체 이해도 레만에 따르면 문제가 많다. 그는 <포스트모던적 좌익 니체주의>에서 엘리트주의적인 사상가인 니체를 다원성과 차이의 존중을 설파하는 철학자로 보는 최근의 니체 이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러한 비판적 검토는 레만이 이러한 새로운 니체 이해가 주로 들뢰즈와 푸코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결국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수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된다고 보고 있다.

박 교수의 서평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들뢰즈는 그의 <니체와 철학> 등의 책에서 니체 철학에 의거 변증법을 비판해왔다. 그러나 들뢰즈의 변증법 비판에 대해서 레만은 들뢰즈가 헤겔의 사변적인 변증법을 변증법 자체와 동일시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동시에 들뢰즈가 부정, 대립 그리고 모순이라는 변증법의 사변적 원리에 대해서 그에 못지않은 사변적인 원리인 차이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립관계를 단순한 차이로 보는 것은 사회적인 현실에서는 다양한 차이들이 사실상 서로 간의 적대적인 대립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게 레만의 생각. 초기의 니체가 변증법을 비판한 것은, "변증법이 귀족주의적 지배에 대한 민중들의 원한감정의 일종인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고, 사실 니체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유방법을 나름대로 수용하고도 있는데 이는 <도덕의 계보> 3부에서 범례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니체를 다원주의자로 보는 들뢰즈의 해석은 후기 니체의 관점주의가 갖는 신분차별적 성격을 무시하고 있다고 레만은 본다. 들뢰즈는 자신의 ‘차이’ 개념을 니체의 ‘거리의 파토스’에서 끄집어내는데, 니체에게는 신분적으로 고귀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사이의 간격을 나타내는 이 개념이, 들뢰즈에게 오면 생을 긍정하는 능동적인 힘들을 수동적이고 생을 부정하는 힘들로부터 구별하는 ‘차이’로 변형된다는 관찰이 이어진다. 니체에서는 정치적인 위계질서를 정당화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개념이 그러한 정치적 성격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스피노자와 니체 사이에 연속선을 긋는 들뢰즈는 후기 니체가 스피노자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분명히 취했다는 점도 무시한다. 들뢰즈는 과연 니체를 제대로 읽었는가. 레만은 들뢰즈 자신은 물론이고 하버마스와 같은 비판가들마저도 들뢰즈의 해석이 옳다고 본다는 점에 놀라움을 표한다.

그 다음은 푸코다. 레만은 푸코처럼 자신을 권력과 주체에 대한 급진적 비판가로서 이해하는 사상가가 후기의 니체처럼 가장 철저하게 권력과 지배를 긍정하는 사상가를 거듭 원용한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문제의식 아래 푸코를 살펴본다. 푸코는 니체사상을 텍스트에 충실하게 해독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는 게 레만의 기본적 입장.

니체는 ‘인류’라는 개념이 초인들의 육성에 방해가 되는 평등을 상정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는 반면에, 푸코에서는 인간에 대한 니체의 이러한 거부가 마르크스의 소외와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을 극복해야만 하는 반-인간학(Anti-Anthropologie)으로 변용되고 있다. 아울러 푸코에서는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이 갖는 종교적 성격도 무시된다. 니체의 ‘초인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니체에서 초인이 갖는 정치적 성격, 즉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지배자로서의 성격’이 무시되고 있다. 레만은 푸코가 모든 것이 권력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는 일종의 권력 환원주의에 떨어지게 되며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과 투쟁을 고려하지 않게 된다고 보고 있다.

4부에서는 현대사회를 관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푸코의 기념비적인 저서인 '감시와 처벌'을 검토하고 있다. 푸코가 주장하는 신-니체주의적인 이론이 푸코가 역사를 파악하는 데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가 볼 때 푸코는 한편으로 복종과 주체구성의 공간적·시간적 구조들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사회사에 대한 연구를 확장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인 자료들을 지니치게 이념형적으로 구별함으로써 분석의 섬세함에서는 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푸코는 경제적인 이익의 획득을 주요한 목표로 삼는 형벌체계들과 교화를 주요한 목표로 삼는 형벌체계들을 구별하지 않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통해서 개혁된 감금방식과 나치체제 하에서의 감금방식을 구별하고 있지 않다. 더 나아가 푸코는 감방과 일반적인 규율사회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니체는 형벌체계의 역사적인 전개를 신체에 대한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폭력(고문)에서 주체에 대한 정교하면서도 완화된 지배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시각을 푸코가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푸코가 형벌체계들이 갖는 차이들과 형벌과 일반적인 사회적 규율이 갖는 본질적 차이를 무시함으로써 푸코는 형벌체계를 자본주의 각 시기의 특성과 연관해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분석에 입각하여 레만은 포스트모던적 니체주의는 사회에 대한 넓은 의미의 비판이론과 사회과학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볼 때 해롭게 작용했다고 본다. 사회를 전복시키겠다는 제스춰만 취할 뿐 그때그때의 사회구조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분석도 변혁의 방안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과 전쟁기계라는 들뢰즈 특유의 은유는 들뢰즈의 난해하기 그지없는 秘敎적인 철학적인 담론에 게릴라 전쟁이라는 혁명적인 색채를 부여하고 있다고 레만은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실속 없는 과격함이 치르는 대가는 "좌익으로도, 우익으로도 기울 수 있는 정치의 모순적 미학화"라고 보고 있다.

레만은 포스트모던적인 니체해석이 갖는 문헌학적인 문제성과 이론적인 약점들이 대부분의 이차문헌들에 의해서 무시되거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염두에 두고 읽을 때 그들의 생산적 통찰도 살릴 수 있다고 본다.

여기까지가 레만의 주장에서 뼈대를 골라놓은 것이고 서평의 말미에서 박찬국 교수는 레만의 비판에 대해서 논평을 가하고 있다. 우선 "니체 사상의 엘리트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성격은 레만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의 후기사상에서만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니체의 사유도정 전체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동의한다.

 

 

 

 

그러나 박 교수는 "니체는 레만과는 전혀 달리 유토피아를 열망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러한 유토피아에 대한 열정을 비판하고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니체는 인간사회에서 집단들 및 개인들 간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고통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따라서 니체는 이러한 대립과 갈등을 레만이나 들뢰즈나 푸코처럼 차이에 대한 존중이 지배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통해서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레만도 니체 자신의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는 지적에 오면 이 서평이 얼마나 잘 씌어진 것인지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아무튼 박 교수는 레만의 비판은 마르크스적인 사회분석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는 입장에서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해석에 대해서 가해질 수 있는 비판의 형태를 전형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그 의의를 평가한다.

06. 03. 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리센코, 황우석 그리고 국가

'리센코'란 이름을 검색하면 한달쯤 전 칼럼들이 몇 개 뜬다. 지난 12월 중순, 그러니까 황우석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무렵에 씌어진 칼럼들이다.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T. D. Lysenko; 1898-1976)는 스탈린시대 러시아의 농생물학자로서 멘델의 유전학설을 비판하고 소위 '리센코학설'(리센코주의)를 주창한 인물이다. 그에 따르면, 이 유전자라는 입자적인 것만으로 유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환경조건을 변화시킴으로써 생물체 내의 물질대사형을 변화시키고 이것이 유전성을 변경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내가 이해하기론 용불용설 같은 것이어서 환경조건에 따른 개체 변이가 유전된다는 식인 듯하다(이른바 획득형질 유전론). 문제는 그의 이 유사-과학이 멘델의 유전학 같은 '부르주아 과학'에 대항하여 스탈린시대에 '프롤레타리아 과학'으로 공인받았다는 것.

물론 이후에 그의 '정치적' 과학은 농업생산 분야에서의 부진으로 인하여 신뢰를 상실하게 되며 스탈린 사후에는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모스크바 유전학연구소장 직에서 완전히 사임하게 되는 것은 흐루시초프시대인 1965년). 하지만, 그의 유사-과학은 유전학 분야에서 러시아가 서구에 최소한 10여 년 이상 뒤처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게 20세기 과학사의 최대 스캔들의 하나인 소위 '리센코 어페어'이다.  

개인적으론 대학원 시절 언젠가 이를 풍자한 러시아 현대소설을 읽을 일이 있어서 리센코주의에 대한 자료들을 모으기도 해서(비록 거기에 대해 글을 쓰는 기획은 엎어졌었지만) '리센코'란 이름이 친숙한데, 그때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은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새길사, 1996)의 저자이자 얼마전 <인간복제논쟁>(지식의풍경, 2005)이 번역/소개된 도미니크 르쿠르의 <리센코, 프롤레타리아 과학의 실제 역사>였다(이 책은 얼마전에 지인의 도움으로 영역본을 구했다). <인간복제논쟁>의 부제는 '인간 복제 이후의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이며 원제는 "Humain, Posthumain"(2003), 즉 '인간과 포스트인간'이다. 이미 '인간복제'의 기술적 가능성과 문제점에 관한 책들은 여러 권 출간돼 있으므로 이 책과 더불어 '테마 독서'를 해봄직하다.

 

 

 

 

흥미로운 건 르쿠르의 책 부록으로 '유나바머'론이 포함돼 있다는 것. 유나바머? 시사상식인데, 본명이 시어도르 카진스키인 그는 하버드대 출신의 수학 천재로 버클리대 교수를 지낸 인물이다. 극단적인 문명혐오주의자로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지난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6회에 걸쳐서 과학기술 관련인사들에게 우편물 폭탄테러를 감행해왔다. 초기에 주로 대학과 항공사를 공격해 대학(University), 항공사(Airline)와 폭파범(Boomber)의 Un+A+Bomber 를 조합, '유나바머'로 불렸다. 그는 95년 테러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유력지에 과학문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과학기술문명비판논문(=유나바머 선언문) 게재를 요구함에 따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지에 3만5000자의 논문이 실렸다. 동생의 제보에 따라 96년 4월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중이다. 이른바 '유나바머 어페어'이다. 르쿠르가 인간복제문제와 유나바머 문제를 어떻게 접속시키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하에서 옮겨오는 칼럼들은 그런 궁금중과는 무관하며 (아마도 21세기 전반기 과학계 최대 스캔들로 기록될) '황우석 어페어'에 촉발되어 '리센코 어페어'를 상기시켜주고 있는 글들이다. 첫번째 칼럼은 한겨레신문(2005. 12. 13)에 실렸던 김환석 교수의 칼럼 "'영웅만들기'의 함정;이고, 두번째 칼럼은 동아일보(2005. 12. 12)에 실렸던 소설가 복거일의 칼럼 '과학윤리기준 과학자에 맡겨야'이다(복거일은 대표적인 보수주의 논객이다). 모든 강조는 나의 것이다.

***

섀튼의 결별선언 이후 한 달 동안 전국을 폭풍처럼 혼란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던 황우석 스캔들은 이제 서울대의 조사위원회로 공이 넘어갔다. 따지고 보면 한 과학자의 연구논문에 대한 논란일 뿐인데, 이렇게 ‘핵폭풍’에 비유될 만큼 국가적 재앙의 위기에 몰려 정부와 온 국민이 하루하루 불안과 조바심에 떨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이게 정상적인 나라에서 일어날 법한 일인가?  

정상적인 나라라면 과학계 내부의 자정 메커니즘으로 쉽게 처리되었을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는 이 지경으로 사회적인 대혼란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은 황우석 교수가 단지 한 과학자가 아니라 이른바 ‘국민적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엠에프(IMF) 사태 이후 깊은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계층과 지역과 성별과 세대 그리고 지지정당의 차이를 뛰어넘어 미래 과학한국의 비전을 또렷이 보여주며 나라의 발전을 이끌고 갈 어떤 메시아와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그는 가난한 농촌 출신이지만 복제와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업적을 나타낸 과학영웅일 뿐 아니라,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는 그의 발언이 표상하듯 진한 애국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더구나 여기에 전세계 난치병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라는 인류애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위인’이 아니고 무엇이랴?  

황우석 교수가 이렇게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물론 그 자신의 업적과 자질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정부와 언론이 손을 맞잡고 이끌어 온 ‘황우석 영웅 만들기’의 결과 때문이다. 그는 원래 생명공학에서는 주변적 분야에 속하는 동물복제의 전문가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초기에 그는 복제 소 ‘영롱이’의 성공으로 갑자기 생명공학의 스타로 떠올랐고, 심지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복제한 백두산 호랑이 새끼를 대통령이 북쪽에 선물할 계획(결국 실패하였지만)에 관여할 만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는 박기영 보좌관과 정동영 장관 등 청와대와 정부 및 여당의 전폭적 지원 아래 배아줄기세포 분야로 그의 영역을 확장하여 마침내 한국의 생명공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세계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를 국민영웅으로 만들려고 국가가 기획하고 개입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불행한 결과만을 낳았다. 옛 소련의 스탈린 치하에서 기존의 유전학을 비판하고 획득형질 유전과 이를 이용한 농업증산을 주장하여 ‘사회주의 과학’의 영웅으로 떠받들던 리센코, 북한에서 1960년대 초 원자물리학적 방법으로 경락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주장하여 ‘주체과학’의 영웅으로 한때 칭송받았던 김봉한 등이 좋은 예이다. 이들은 모두 과학적 연구성과가 국가 개입에 의해 부당하게 부풀려져 과학계에서 제대로 검증받을 기회를 못가졌던 것이 치명적 문제였다. ‘영웅 만들기’의 폐해는 또한 특정한 과학자 내지 그의 분야에 국가의 연구자원이 집중되어 과학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큰 부작용을 초래한다.  

인위적인 ‘영웅 만들기’를 통해 과학을 키우겠다는 국가의 야심은 잘못된 것이다. 과학자 스스로도 과학계의 검증보다 국가의 지원을 통해 영웅이 되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과학에서는 위대한 발견 못지 않게 조작과 사기 논란도 종종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처럼 온 나라를 뒤흔들지는 않는다. ‘영웅 만들기’는 과학과 국가의 잘못된 결합이고 결국 핵폭풍의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다.

김환석/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

 

 

 

 

***

현대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종교와 과학의 충돌이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란도 그런 충돌을 배경으로 삼아 나왔다. 종교와 과학은 진리에 이르는 방법에서 다르다. 종교는 믿음에 의지한다. 과학은 검증에 의존한다. 믿음이 종교가 의지하는 방법론이므로 경전에 계시된 진리를 반박하는 사실이 아무리 많이 쌓여도 그것들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검증에 의존하고 이론들 사이의 경쟁을 허용하므로 과학은 꾸준히 나아간다.

과학의 성취는 필연적으로 종교의 토대를 허물었다. 종교는 과학에 거세게 저항했지만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종교재판 이후 과학적 지식에 의해 자신의 신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불행하게도 과학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과학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를 줄곧 줄였다. 과학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중심임을 보여 주었다. 이어 태양 또한 은하계의 뭇별 가운데 하나이고 다시 우리 은하 역시 수많은 은하계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음을 밝혀냈다.

반면에 종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만큼 중요한 존재며 그들의 영혼은 영원히 살아남는다고 안심시킨다. 과학의 성과들을 누리면서도 사람들이 결정적 순간엔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그래서 이상하지 않다.

이번 줄기세포 논란에도 사람의 왜소화가 포함되었다. 진화생물학은 모든 생명체가 첫 생명체의 후손이고 외양에서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전자를 많이 공유하며 그런 뜻에서 혈연을 지녔음을 이론의 여지없이 밝혀냈다. 이런 발견은 사람은 다른 종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우리의 통념과 어긋난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구호로 흔히 포장되는 이런 통념은 모든 종교의 가장 근본적 신조다. 여기서 다시 종교와 과학은 부딪친다.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이 과학적 연구를 인도하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그것이 환상임을 지적하면서 현대의 윤리는 과학적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의 이런 주장은 과학적 연구를 인도할 윤리는 과학자들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필요한 지식들은 과학자들만이 지녔기 때문이다. 과학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고 전문화가 가속되므로 윤리적 판단에 필요한 지식들을 일반 시민들이 지니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과학이 경쟁을 통해서 발전한다는 점이다. 검증을 통해서 이론들의 우열이 가려지므로 과학은 어느 분야보다도 경쟁이 치열하다. 자연히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내용이 허술한 연구나 이론은 이내 밀려난다. 반면에 종교는 경쟁을 거부한다. 배교나 이단을 허용하는 종교는 아직 나온 적이 없다. 10여 년 전 미국 생물학자들이 황 교수의 연구에 선행적인 배자분할 실험에 성공했을 때 교황청 기관지는 ‘광기의 터널로 들어서는’ 과학자들을 규제하라고 미국 정부에 요구했다.

역사를 살피면 우리는 권력이 잘못 작용하면 과학이 사악하게 쓰인다는 사실을 만난다.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의 생체실험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 교훈적인 사례는 공산주의 러시아에서 트로핌 리센코의 학설이 초래한 비극이다. 스탈린 시대의 농업생물학자인 리센코는 멘델의 법칙에 입각한 유전학설을 비판하며, 환경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생물학적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자연과학마저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바라보던 스탈린 시대의 광풍(狂風)에 힘입어 “채소를 교육시킬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이 공식 이론으로서 지위를 차지했지만 이로 인한 농업 실패로 수많은 농민이 굶어죽었다. 권력이 개입해 이론 사이의 경쟁을 배제하고 특정 이론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면 이런 폐해가 생겨난다.

소비자의 이익을 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자유로운 시장에서 나오는 경쟁이다. 이런 이치는 과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종교 등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부가 나서서 인간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윤리적 규정을 만든다면 걱정스럽다. 어떤 윤리나 법도 과학의 빠른 발전을 따라갈 수 없으므로 그런 규정들은 윤리를 지키기보다는 과학의 발목을 잡는다. 그저 경쟁하게 하라. 기업가들이든, 과학자들이든.

복거일/소설가

 

 

 

 

두 사람 모두 황우석 사건과 관련하여 국가 개입의 문제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초점은 약간 다르다. 김환석 교수가 "과학과 국가의 잘못된 결합"을 문제삼고 있다면, 복거일씨의 경우는 '국가권력의 개입' 자체에 잘못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유가 특이한데, 국가는 종교 등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그런 연장선상에서라면 복거일의 본격적인 '종교비판론'을 기대해봄직하다! 더 나아가 지극히 종교 정향적인 미국식 정치 마인드에 대한 비판도!). 여하튼 나는 '인용'만 하며,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당신의 몫이다...  

06. 01. 09.

P.S. '리센코 어페어'에 대한 참고자료로 '맑스 코뮤날레'에서 발표됐던 논문 "혁명기의 러시아 과학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를 옮겨놓는다(복거일과는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비록 '노동자-농민'이 이런 문제에서도 '해결사'가 되어줄 거란 전망에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필자는 김해민(노동자의 힘 회원)님이다.

리센코 사건
1936년, 소련의 과학기술계에서는 특별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모스크바의 레닌 농학아카데미에서 발표된 "유전학에서의 두경향"이라는 논문에서 리센코(T. D. Lysenko)는 환경적 조작과 접목에 의해 유전이 변형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당시 주류였던 멘델과 모건의 유전학을 반진화론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견해가 진정한 다윈주의에 기초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 발표는 과학기술계의 논쟁으로 끝나지 않았다. 1948년에 개최된 같은 회의 에서 우크라이나 농부의 아들인 리센코를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멘델의 과학을 "반동적이면서 퇴폐적이다"고 규정하고 그들의 과학을 추종하는 자를 "소비에트 인민의 적이다"라고 공격하며 자신들의 학설을 사회주의 생물학 중 하나로 당이 공식적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은 이를 승인함으로써 과학기술계의 논쟁은 일단락 되었지만 비극은 시작되었다. 이 여파로 유전학 과목은 폐강되고 관련 연구소는 폐쇄되었다. 과학기술자들 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당의 결정을 찬양하는 공개적인 '사상전향서(?)'를 쓰지 않은 사람은 내쫓기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당시 곡류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통해 현대 식물 육종학에 대한 기초를 세운 과학자 바빌로프도 이 과정에서 실각되고 볼가강 중류의 사하로프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러나 스탈린 시대에 맹위를 떨치던 리센코주의도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인해 사라지는 운명에 처해 버렸다. 맑스주의 내에서도 리센코 학설은 '맑스주의와 정반대 되는 것' 혹은 '과학적 특성이 결코 없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아울러 소련의 사회주의 과학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급진과학운동은, 소련의 폐쇄적인 흐름과는 다르게 다양한 논의를 바탕으로 운동의 흐름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급진과학운동은 무려 10여 년 간의 소강상태에 빠져버렸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물론 단편적인 사건으로 혁명기 러시아의 과학기술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스탈린시기에 과학기술은 매우 큰 발전을 이룩한 것 또한 사실이다. 냉전이 살벌한 시기에도 미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소련의 과학기술 수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자본주의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인정해주는 사건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숙련노동자의 조직된 힘을 분쇄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도입해 왔고, 기계에 의한 노동의 대체로 줄곧 노동자들을 소외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혁명기 러시아에서 그것도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소련에서 무엇 때문에 이러한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것도 20년이나 지속되었을까?

1917년 혁명 후 볼셰비키 혁명 정부 앞에 놓인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레닌은 자국의 정세와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전쟁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하여 연합군을 탈퇴하였다. 하지만 전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연합국측의 간섭전쟁과 국내 반-볼셰비키세력들에 의한 격렬한 내전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내전은 혁명을 더욱 힘들게 했다. 산업 생산량은 극도로 하락하였고, 농촌은 황폐화되었다. 이 시기 볼셰비키 정부는 소련의 낙후된 생산력 복구가 무엇보다 절실했다. 레닌은 생산력의 복구를 위해 내전동안 전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산업경영권을 중앙집권화하고 자주적 '노동자 관리'기구를 강제 폐지시켜 버렸다. 또한 자본주의사회에서 발전된 과학기술 중에서 선진적인 부분 채택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과학적 관리 기법이라는 테일러 시스템을 도입시켰다. "근로인민 자신들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고 현명하게 적용된다면 테일러시스템은 전 근로인민의 필요노동일을 훨씬 절감시키는 믿음직한 수단이 될 것이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른바 이 '소비에트 테일러시스템'은 스탈린 시대까지 이어졌다. 1921년 3월 제10차 전당대회에서 전시공산주의 정책을 완전히 폐지하였으나 노동부에서 차등임금제와 식량배급량 차별제, 노동카드와 성과급제 및 반-볼셰비키 성향의 부르주아 지식인과 기술자들을 중용하였다. 이들이 당과 국가의 여러 정책들을 주도하는 핵심적인 위치로 상승하게 되었고 이들은 대개 산업행정, 고등기술교육, 연구 기관, 기획기관에서 최고의 기술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영향력을 근거로 정책 결정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려 하였고, 이러한 면들이 기술관료주의적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1924년 레닌이 죽은 후,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레닌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급격한 산업화를 주장하였다. 1929년에 스탈린은 집단농장화를 실시하고 대규모 산업화 정책에 착수하게 되었다. 스탈린 시대에는 과학을 생산력이라기보다는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로 인식하였다. 모든 과학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재편할 것을 요구하였고 과학과 철학 모두에 대한 당성의 우위를 강조하게 되었다. 부르주아 기술관료들은 공산주의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붉은 전문가'로 교체되었다. 무엇보다도 스탈린은 급격한 산업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형식상으로 남아 있던 산업의 집단적 관리 원칙과 노동자들의 복지를 위하는 노조의 마지막 권한을 모두 폐지해 버렸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까지 흘러온 이러한 사회적 관계들은 혁명기 러시아가 리센코주의를 받아들이게 한 것이었다. 레닌과 스탈린 모두 소련의 낙후된 생산력을 복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박한 과제로 다가왔다. 레닌은 과학을 생산력으로 주요하게 파악했고, 부르주아의 선진 과학을 수용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입장으로 나아간 것이다. 레닌의 이러한 생각은 이후 과학기술에서 자본주의적 이용만 제거하면 순수한 기술만 남아 이를 사회주의적으로 이용하면 된다는 기술 중립론적 시각으로 비판받고 있다. 스탈린의 경우는 좀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낙후된 경제의 복원과 반-볼셰비키 성향의 기술관료의 관료주의 폐지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고, 당시 거의 쿠데타적 권력 쟁탈과정은 스탈린으로 하여금 과학을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로 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스탈린처럼 과학기술을 이데올로기로 보는 관점은 과학기술과 사회관계를 잘 설명해 주기는 하지만 과학기술의 내재적 발전 경향을 지나치게 무시할 수 있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다. 그리고 과학기술은 단지 누가 이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아무리 생산수단이 사회적 소유로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과학기술혁명이 수준 높은 생산력으로 되어 인민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인간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과학기술 생산과정/이용과정(노동과정)속에서 주체와의 관계와 사회관계속에서 판단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즉 과학기술에 있어서도 소유관계의 문제와 아울러 과학기술 생산과정에서의 기술적 조직적 생산관계와 개발 생산단위들 간의 경제운영관계의 문제 그리고 사회관계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사고 해야한다. 결국, 당시 급박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공산당의 잘못된 과학기술에 대한 입장은 소유문제가 해결된 사회주의국가에서도 과학기술을 왜곡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혁명기 러시아라면 무엇을 했어야 했는가? 어떻게 과학기술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까? 맑스는 이러한 질문에 한가지 해답을 제시한 바 있다. 맑스에 따르면 진리를 파악하는 자는 관념적 몽상가들이나 학자가 아니라 가장 실천적인 계급, 즉 이론적인 수준에 한정되지 않고 실천을 통해서 실천적 수준에서 진실을 증명코자 하는 계급, 즉 대다수 노동자 계급과 그 노동자 전위세력으로 파악하였다. 맑스는 인식에 있어 실천의 중요성, 그리고 가장 실천적인 계급적 관점을 명확하게 하였다. 그렇다면 한번 상상해 보자. 레닌이 자주적 노동자관리기구를 폐지시키지 않고, 노동자-농민의 자주성을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진행했다면, 그리고 스탈린이 그나마 남아있던 노동자들의 마지막 자주권을 박탈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노동자-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주장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민주적 의사 통로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록 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지만 실천적 주체인 노동자들은 테일러 주의를 사회주의에 적용하면서 테일러 주의의 문제점을 실질적으로 인식하고 폐기시키지 않았을까? 그래서 새롭게 사회주의적 노동과정을 구성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농민들은 리센코주의의 과학을 집단 농장에 적용하면서 리센코주의의 진실성을 적어도 20년보다는 빨리 확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강조는 나의 것) 

 

 

 

 

P.S.2. 이너파벨님이 알려주셨는데, 하인리히 야곱의 <빵의 역사>(우물이있는집, 2005)에도 리센코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아마도 '러시아의 빵 - 1917년'이란 절에서인 모양이다. 재인용하자면, 가혹한 기후를 견뎌낼 수 있는 최상의 품종의 밀을 찾아내 육종을 통해 종자로 공급하려는 계획을 가진 바빌로프에게 리센코의 제자가 이렇게 말한다: "식물학은 시간이 남아돌지 모르지.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우리는 여기, 러시아에서 혁명 과업을 완수했다. 거만하게도 인종적 특성과 불변하는 성질을 내세우는 멘델의 과학 따위는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다. 그렇지 않은가?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살아있는 생명체를 변화시키는데 몇 세대가 걸린다고 믿을 수 없다. 다윈과 마르크스에 의하면 생명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환경이다. 새로운 조건에서는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인간을 통해 관찰한 바 있다. 과연 식물이 인간보다 더 반동적인지 살펴보자." 그러자 바빌로프가 응수한다: "만일 환경만으로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면 아마 리센코는 아무 씨앗이나 집어들고 시베리아의 툰드라지대로 가지고가서 심은 뒤 씨앗이 얼지 않도록 평원 전체를 데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 분명 새로운 조건에서는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새로운 물적 토대는 새로운 인간을 형성해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그 새로운 조건이며 그것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조건 없이 가능하지 않은) '새로운 인간'은 어디서 굴러떨어지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