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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1. 김민철이 여자이름일줄 몰랐다.
2. 신변잡기적인 에세이 (편견) 라니, 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 하며 고려대상에도 넣지 않았는데,
그런데 시골에 있던 3일중 갑자기 생각나 전자책 도서관을 뒤지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 전자책의, 도서관, 이란 말이지 -
앞쪽을 살짝 읽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여러모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어떤 부분은 완전 내 이야기 같기도 했다. 결국 야금야금 다 읽어버렸다.
3. 밑줄 그은 부분,
- 나는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그건 읽은 것일까? 마흔이 넘어 내게도 셰익스피어의 시간이 올까? 간절히 오기를 바랄 뿐이다. 어디 셰익스피어 뿐이겠는가? 내 책장에는 언젠가 내가 새롭게 발견해주길 기다리는 책들로 가득하다. 도스토옙스키도, 톨스토이도, 카뮈도, 그 밖의 수많은 작가들도 모두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 상상하는 시간이 있다.... 내 글씨를 발견한다. 내가 해둔 체크표도 발견한다. 왜 그곳에 그런 메모를 해놓은 건지... 쉽사리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거기서 발견한다. 그리고 새로운 부분에 새로운 감정으로 줄을 긋는다. 그렇게 영원히 새로운 책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내 유난한 기억력이 준 축복일지도 모른다.
- 카메라라는 걸 손에 쥐고 처음 나간 순간을 기억한다. 안 보이던 게 보였다. 방금 있었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지금의 빛은 1분 후에 다른 빛이 되는 걸 보았다. 나는 경의에 차 있었는데,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내 옆을 지나갔다. 노을이 지고 있는데. 저렇게 노을이 지고 있는데. 노을빛 때문에 이 벽이 이렇게 아름답게 빛나는데. 그때 깨달았다. 나는 카메라를 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쥐게 되었다는 걸.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다는 걸.
- 도대체 그걸 모아서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꼭 있다. 어쩌면 그들은 무용한 세계가 주는 기쁨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냥 모으는 거다. 재미있으니까.
- 나는 많은 것들 가운데 기껏해야 몇 개만 쓸 수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손가락 사이로 후두둑 떨어져 나갈 것이다. (94% 쯤)
- '글쓰기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다.' 이 문장이 너무 벅차, 너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인생은 한 번도 내게 이토록 호락호락하진 않았는데 싶어 많이 울며 걸었던 아침이 있었다.
- 어쩌다 보니 나 자신을 카피라이터라고 소개하며 살아간 지 11년째이다. 나는 이 문장속에서 언제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행이다'라는 말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다행이라생각한다. 돈을 벌어먹고 산다는 문제가 '쓴다'라는 행위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분야가 광고라는 사실에.
- 보통의 회사원이 되어 회사 일이 끝난 후에 지친 몸으로 뭔가를 쓰며 살았다면 왜 이 재능이 나의 일이 될 수 없는가 한숨으로 가득 채웠을 것이다. 한 번도 검증받지 못한 습작들을 불멸의 작품이라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잘 쓰기 위해서는 좋은 토양을 가꿔야지, 라는 핑계로 수없이 읽고 듣고 보고 돌아다녔다. 11년을 그랬다.
- 결국 잘 쓰기 위해 좋은 토양을 가꿀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아야 잘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4. 나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한줄도 나아가지 못하는 타입의 인간이다. 싫은 일은 던져버릴 바에는 하지못하는 인간이다. 최근들어서야 그런 형태의 타협이 반드시 필요한것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그야말로 철부지였던 것 같다.
기획자란 종합예술인 운운하며, 어디에 필요할지 모르는 교양을 부단히 연마해야한다고 말해왔다. 그것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근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좋은 토양 이야기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그저 나는 어떤 다른 인간이 되어, 무엇인가를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처럼 어중간한 기획자가 되기전에 어쩌면 카피라이터가 될 수도 있었다. 잘라말할 수는 없지만, 만약에 내가 카피라이터로 계속 일하려고 했고, 아주 열심히 일했으며, 좋은 선배를 만났고 등등하였다면, 그녀와 비슷한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 그녀는 다행이라고 말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을 가져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부럽다.
그녀가 추천해준 음악 리스트를 적어본다. 이렇게 잘 모르는 음악을 소개받기도 하고, 취향의 유니버설함도 느끼고 그렇다.
김민철의 일상에서의 셋 리스트
- 뭔가 집중할때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 감상적이어야할때 - Pat Metheny 의 You
- 새벽에 일할때 - 강아솔
- 대청소 - 형돈이와 대준이
- 해가 바뀔때 - Nujabes의 After Hanabi
- 여름에서 가을로 가면서 해가 짧아지는 저녁이 되면 - Duke Jordan, Flight to Denmark,
- 위로가 필요할땐 - Coldplay, Fix You, 아니면 Young at Heart라는 다큐에서 할아버지가 부르던 Fix You
- 주말 오전 잘 살고 있다는 기분이 필요할 때 - Carla Bruni
- Migala, Gurb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