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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ㅣ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2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3년 11월
평점 :
이 책은 조선시대의 유명 화가나 서예가들의 작품들이 아닌 그들외의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들의 삶과 작품에 대해서 담고 있다. 보통 대중들이 알고 있는 작가라고 한들 초중고교 시절에 배운 안견이나, 겸재 정선, 단원 김흥도, 혜원 신윤복, 추사 김정희나 안평대군, 흥선대원군 정도가 대부분일 것이다. 여기에 약간 더 추가하자면 최민식이 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지는 바람에 유명해진 오원 장승업 정도가 전부가 아닐까 싶다. 최소한 내 경우엔 그러했다. 사실 오원 장승업도 내내 까먹고 있다가 이 책을 일게 되면서 다시 기억이 났다.
이처럼 조선시대 그림에 대해선 하늘천땅지만 아는 까막눈이였으니 이 책은 여러모로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유홍준은 책의 서문에 밝혔듯이 나처럼 그림에는 까막눈인 사람들에게 그림보는 눈을 길러주기 위하여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림과 작가들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덕분에 학창시절 시험을 대비해 쫒기는 마음으로 외우던 그림들이 어떤 역사적 배경으로 탄생됐고 어떤 고심과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것인지를 파악하게 됐고 그러자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그림들의 매력과 감동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기 시작했다. 감동은 받았으되 그림의 무엇에 이끌려 감동을 받았는지 제대로 몰라 찜찜하던 감정들도 제대로 해갈됐다. 역시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이 책에는 많은 작가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든 작가는 책의 표지로도 쓰인 화가 북산 김수철이였다. 그의 그림은 조선시대에는 전형적인 동양화들, 예를 들자면 김흥도나 신윤복같은 스타일의 그림들만 전부일 거라는 틀에 박힌 내 생각을 전부 부셔뜨렸다. 그의 작품들은 현대의 그 어떤 작품과도 비교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을정도로 세련되고 모던하며 낭만적이였다. 유홍준은 이 책에서 예민한 예술가들은 넓은 세상을 겪어보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집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언급하는데 북한 김수철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저절로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김수철의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의 작품들을 탄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개성까지 용인해준 조선시대가 내 예상보다 훨씬 유연하고 도량넓은 사회였구나 싶어서 놀랍기도 했다.
작품 그 자체보다 작가 본인에게 가장 큰 매력을 느낀이는 매화를 그리다 백발이 되었다는 우봉 조희룡이였다. 물론 그의 매화그림은 본인이 평생을 좋아하며 몰두한 만큼 화려한 동시에 선비다운 중후함이 흘러 넘쳤다. 추사 김정희를 본받기 위해 노력했다는 글씨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감동받은 것은 평생을 한결같이 노력하고 정진했다는 점이였다. 조희룡에 대한 평들을 종합하면 그는 별다른 재능을 지니지 못한 아주 평범한 사람이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노력한 끝에 매화그림에선 본인의 이름석자를 남겼놓았고, 후진양성에도 평생 힘써 북산 김수철을 비롯한 조선후기 화가들이 빛을 발할 수 있게 열심히 지원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본인의 재능이나 시대적 상황에 울분을 토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맡은 시대적 사명을 다하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텐데 그의 노력이 정말 존경스럽다.
이 밖에도 몇몇 작가들을 더 꼽아보자면 관아재 조영석과 기생 홍랑을 빼놓을 수 없다. 조영석은 대체 어떤 붓을 쓰고 어떤 남다른 재주를 가졌기에 그토록 섬세한 인물들의 표정과 이야기를 담아 낼 수 있었는지 그의 그림을 보는 내내 참으로 신기했다. 그 시대엔 도구도 변변치 않았을테고 먹물로 한번 그리고 나면 수정도 쉽지 않았을텐데. 기생이라는 신분의 제약에 막혀 사랑하는 님과 헤어질 수 밖에 없었지만 절개만은 그 어떤 사대부 못지 않은 홍랑의 시조와 글도 좋았고 책의 말미에 이르러 궁중미술과 서예작품들에 대해서 다뤄준 것도 맘에 들었다. 덕분에 당연히 중국에도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십장생도가 조선에만 존재하는 고유양식이라는 것과 한석봉이 당시 유행하던 글씨체의 흐름을 바꿔놓았기 때문에 유명하다는 사실등도 처음 알게 됐다. 남대문 현판이 안평대군 글씨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책을 읽는 동안 학창시절에 배운 수묵화 그리는 방법도 새록새록 생각나기도 하고 신윤복이나 김흥도, 추사 김정희처럼 아는 인물들의 작품과 이야기가 나올때는 반가웠다. 유홍준의 책을 완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였지만 국내문화유산 관련한 책들 중에서 유홍준의 저서가 왜 독보적인지는 이 책 한권만 봐도 알 것 같았다. 유홍준처럼 어렵지 않고 세세하게 설명하며 작품에 애정넘치는 구절을 달아놓을 수 있는 이가 많지는 않을테니까. 그가 미학자로써의 사명감으로 마음에 빚을 덜기 위해 열심히 책을 내고 있다는 말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새삼 읽다가 중단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번에 다시 만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어떤 느낌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