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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4월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사람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마치 첫사랑같은 풋풋함과 그리움, 그리고 포근함을 가진 이미지처럼 느껴진다. 혹은 만개한 벛꽃들 때문에 핑크빛으로 가득찬 느낌을 주는 것도 같다. 그래서 흐드러지게 만개한 벛꽃과 따스한 봄바람 같은 4월의 이미지는 사랑의 시작이 주는 설레임과 맞아 떨어지는 오묘함을 갖고 있다. 이런연유로 이 책의 제목을 처음봤을 때 이 책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첫사랑과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소박한 소망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속설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라면 그 사랑을 잃었을 때 보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접어버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곱게 접어버리지 못하는 첫사랑은 영원히 기억 속을 떠돌며 때때로 심장을 차갑고 시린 기억으로 베어낸다. 그러면 그 기억 때문에 상처받은 심장을 부여잡고 또 울어버리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 서인과 선우는 그 접어버리지 못한 첫사랑의 칼에 심장을 베이고 또 베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아픔을 치유해 줄 사랑을 갈망하며 그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아무도 그들의 아픈 기억을 부드럽게 토닥여 주지 못한다. 사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은 그들 자신이였다. 마침내 둘은 운명처럼 서로를 만나게 된다. 너무나 운명같다고 믿었던 사랑이라 그 사랑이 그들의 심장을 베어대던 그 기억과 닿아 있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채 서로에게 빠져든다.  

결국 사랑이 치유해 줄거라 믿었던 심장의 상처가 오히려 사랑으로 더 고통스러워져 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각자 그 상처로 인해 묻어버린 과거를 더듬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과거에 발을 딛게 되는 순간 오랫동안 꼭꼭 감추어두기만 했던 기억의 비밀이 깨어진다. 이제 그들의 사랑은 달콤하기만 했던 핑크빛 솜사탕에 4월이 아니라 뒷맛에 진한 씁쓸한 맛을 남기는 커피같은 가을의 기억과 서늘한 바람의 눈물이 되어버린다. 그들이 찾았던 과거의 기억은 마치 연어가 무의식중에 태어난 곳을 찾아가 그들의 생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과 같은 것이였기 때문에. 

이 책에서 운명이란 결국 기억을 기반으로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과거에 아무리 스쳤다 하더라도 서로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만나고 스쳐본들 소용이 없다고. 결국 사랑이란, 혹은 운명이란 기억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과거의 기억에 대한 아픔과 그 아픔에서 오는 외로움을 공통적으로 지녔기에 서인과 선우가 운명이라는 이름의 사랑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이라. 비록 그것이 과거에 기억을 다시 현재로 가져온 것이라고 하여도 말이다.  

이런 사랑이야기의 한국문학은 참으로 오랜만에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그간 읽었던 외국소설들과는 색다른 맛에 흠뻑 취해 금새 읽어내려 갔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책의 제일 뒷편에 존재하는 작가의 말을 읽고 조금 놀라게 되었다. 우선 권지예라는 작가의 데뷔작이 아니라는 것에 놀랐고 꽤 오랜시간에 걸쳐 쓰여진 책이라는 것에서 다시 한번 놀랐다. 꽤 화려한 수상이력과 결코 짧지 않은 기간동안 활동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글솜씨는 이제 갓 데뷔한 작가의 작품과 그다지 차이가 난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긴 시간동안 공들여 쓰여진 작품이라기엔 여러모로 설익은 부분이 많이 존재하기도 했다.  

처음 이 책의 첫 챕터를 읽고 이 책이 단편집 모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첫번째 챕터와 두번째 챕터의 연계성이 모자라 보였다. 그래서 세번째 챕터를 읽고 나서야 이 책이 모두 한편의 소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완독한 지금까지도 왜 그 첫번째 챕터가 존재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비록 책의 분량이 짧아진다 한들 그런 연계성 없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는 편이 좀 더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첫번째 챕터 외에도 서인과 친구 혜경의 너무나 가벼운 대화와 표현들 역시 이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데 한 몫을 했다. 선우와 깊은 관계가 되기전의 아픔없고 평범하기만 했던 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작가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의 대화가 참으로 가벼워 눈에 거슬렸다. 굳이 영어표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 영어표현을 사용했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연계성 없는 대화들이 반복되다보니 작가의 어설프고 가벼운 글솜씨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그래서 이 책에 섞인 여러가지 장르들이 제 빛깔을 내지 못하고 혼탁하게 느껴졌다. 만약 선우의 사진처럼 밝음과 어둠이 보랏빛으로 은근하게 섞이듯이 책안의 요소들이 서로 어우러졌다면 이 책의 재미가 배가 되었을 텐데 그저 아쉬운 마음만 들었다.  

또 한가지 눈에 거슬린 점은 어디선가 본듯한 이야기와 표현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 오리널리티라는 건 별로 없어 보인다. 대부분 어디선가 한번은 본듯한 느낌의 익숙한 표현과 에피소드들이 반복된다. 특히 혜경의 사랑이야기가 그 익숙한 이야기들의 정점에 서 있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부분을 읽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수가 없었다. 몇년전부터 인터넷을 떠돌던 이야기를 그대로 이 책의 에피소드로 무려 두페이지나 차용했기 때문이다. 고작 기존의 닳고 닳은 인터넷 이야기를 읽기 위해 독자들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뼈를 깍는 고통으로 만들어낸 보다 참신한 표현과 새로운 이야기를 읽고자 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독자들의 소망이자 작가의 소명의식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쉽게 에피소드를 차용해 이야기를 엮어내다니. 독자로써 무시당한 기분에 화가 날 수 밖에 없었다. 

4월의 물고기란 만우절날 어리숙한 사람을 놀리는 프랑스적 표현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은 나의 소감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분명 기존의 내 독서취향에서 벗어나 이 이야기를 색다르고 재미있게 읽었지만,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들 때문에 놀림받았다는 생각도 살짝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림 받았으면 어떠하랴. 만우절 그날만은 우리모두 바보가 되어 놀림받고 놀려주어도 재미있고 왠지 모르게 뿌듯한 그런 기분이 드는 날 인것을. 왠지 달콤쌉싸름한 이 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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