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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김사과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평점 :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는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에 마진이 얼마나 남는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제목도 그렇고 띠지에 적힌 글도 그렇고, 책을 펼치면 분명 소설에 얼마만큼의 마진이 남는지 알려줄 법도 한데 말이다. 한 마디로 낚인 걸까? 오한기 작가의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의 꼭지를 그대로 타이틀로 가져온 데는 이러한 궁금증에 혹한 독자를 겨냥한 것일 수도 있을테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제목이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쯤이야 기분 좋은 낚임이라며 충분히 용인할 수 있을 만큼.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는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라는 특집에 걸맞게 현역 작가 23인의 소설에 대한 생각이 담긴 에세이집이다. 각각의 꼭지마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 아래 프로필이 실려 있다. '소설가'라는 범인의 눈으로 보기에 매우 특별한 직업을 가진 그들 또한 우리 주변의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낼 테다. 작가라는 직업 이전에 생활인으로서의 면모가 곳곳에 드러나 있어서 각각의 꼭지마다 읽는 즐거움이 있다. 물론, 짧은 글 안에 소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도 담겨 있다. 23인의 소설에 대한 생각, 그 단상들을 엿보고 싶다면 단연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첫 꼭지인 「디즈니랜드에서 글쓰기」에서 '결국 작가와 독자를 잇는 가장 강력한 끈은 현실 도피적 환상이 아닐까' 라는 김사과 작가의 글에 십분 공감한다. '소설 쓰는 사람'은 아닐지언정, 다년간 '읽는 사람'으로서의 경험을 비춰보자면 책 한 권을 통해 일상을 벗어나 짧은 여행을 다녀오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도 소설의 큰 매력 중의 하나일테니.
그러니까 나에게 글쓰기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여행과 같은 뜻일 경우가 많다. 여행을 떠날 때 사람들은 언제나 약간은 허무맹랑한 기대에 젖어든다. 짧고도 강렬한,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일이 벌어지기를. 근사하고 달콤하지만 아무 해가 없는. 그래서 더욱 치명적인 이벤트가 벌어지기를. 왜냐하면 돌아갈 거니까. (중략) 하여 나는 오늘도 노트북을 열고 여행자를 가장하여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상상 속 디즈니랜드에 앉아 세상 심각한 얼굴로 커피를 홀짝이며 무미건조한 글자들을 이어 붙여 아주 잠깐 달콤한 꿈을 꿀 사람들의 꿈을 상상해본다.
디즈니랜드에서 글쓰기_김사과_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_P.17
오늘도 어디선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여행을 떠날 작가의 옆자리에 앉아 슬그머니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아주 잠깐의 달콤한 꿈이 너무나 그리운 요즘이기에 더더욱.
소설이란 결국 골방에서 혼자 쓰는 일. 세상에서 나 혼자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견뎌가며 언어를 쌓아 올리는 일인데, 누군가 나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외롭고 고독한 소설 쓰기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가, 내가 하는 소설 쓰기가 영 소용없는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동료가 선배가 후배가 아직 지치지 않고 여전히 쓰고 있다는 든든함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그 반가움에 덥석 손을 먼저 내민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겠는 것이다. (중략) 그들에게 나는 늘 같은 문장을 답장으로 건네곤 하는데, '건강하게 오래 씁시다', '우리 같이 씁시다'라는 문장. 짧지만 진심을 담은 말. 진심은 진심으로 통한다고 믿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여섯 시간_김이설_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_P.35~36
김이설 작가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여섯 시간」의 맨 처음에는 하루의 일과표가 적혀 있다. 제목 그대로 작가가 글쓰기에 할애하는 시간은 하루 중 단 여섯 시간이다. '소설가가 되기까지 십 년이 걸렸고, 다른 소설가들처럼 살기까지 십오 년이 걸렸으니, 세상 참 쉬운 일 없다.'는 작가의 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더불어 '소설가의 아내로 사는 것과 소설 쓰는 작가 엄마로 사는 일'에 무엇이 덜 힘들지를 묻는다면, 전자로 무게추가 기울 수밖에 없다. 소설가의 아내로 사는 고충 역시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겠지만, 무엇이 덜 힘들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한 가지 바람이 생긴다고나 할까. 일상에 지쳐 우렁각시가 필요하다며 넋두리 하는 1인이기에 '매일 국수를 삶고 나물을 무치는' 소설가의 아내가 내게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 일하는 엄마는 때때로 슈퍼 우먼이 되기를 강요받는 세상에서 내게도 우렁각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푸념은 이제 일상 다반사가 되었다. 때문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여섯 시간 동안 몰입할 수 있는 글쓰기의 시간을 작가가 아주 오랫동안 영유할 수 있기를 기원하고 응원하는 마음이다.
다만 주먹 쥐고 달려가는 지금 나는 밥을 굶거나 밤을 새우지 않는다. 그럴 만한 체력이 되지 않는다. 나는 우동을 하며 소설을 쓴다. 주저앉고 싶을 때까지 달리거나 때론 수영장에서 헤엄을 치거나 발레 학원에 가서 햄스트링이 찢어지는 고통을 직접 느끼면서. 운동은 소설을 쓰기 위해 오랫동안 미뤄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식사를 미루지 않듯 운동을 미루지 않아야만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예전보다 더 소설 쓰기를 사랑하고, 그보다 더 소설을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나는 영감을 찾아 나서지 않고 다만 묵묵하게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에 좀 더 가까워졌다.
나는 더 이상 소설을 기다리지 않는다_박민정_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_P.46~47
'묵묵하게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에 가까워졌다는 박민정 작가의 글을 읽으며 하루 여섯 시간, 실질적으로 세 시간씩 매일 방바닥에 앉아 밥상에서 소설을 썼다는 아사다 지로의 글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 고락을 함께 한 아내가 새 집으로 이사하기 전 다다미를 닦으며 훌쩍이기에 보니, 벽을 따라 다다미에 수많은 엉덩이 자국이 나란히 늘어섰다는 이야기. 매일 꾸준히 글을 써왔던 그의 생활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은 구절이어서 마음에 오래 남았던 기억이 난다. 더 이상 소설을 기다리는 대신, 일하는 사람에 가까워졌다는 것은 어쩌면 소설가로서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기본 덕목을 갖춘 게 아닐까 싶어지는 구절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3억 대신 소설을 택한 셈이다. 그런데 내가 소설을 썼을 때 이익은 얼마일까? 순수하게 나에게 남는 건 뭘까? 과연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_오한기P.90~91
드디어 등장한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의 마지막 단락이다. 첫 단락이 아니라 마지막 단락. 그래서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는지 독자 1인으로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 하지만 3억 대신 소설을 택했기에 지금 내가 그의 글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아이의 등하원을 책임지고, 유치원 방학동안 매일 체험활동을 찾아나서는 강행군을 펼치는 틈틈히 암살자가 된 기분으로 글을 쓰려면 10분 이상 집중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3억 대신 스마트스토어에서 자기 자신을 판매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의 글이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해진다.
결국 소설이 써지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란 소설을 쓰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뭘 써야 한다는 거지? 이것이 글쓰기의 난제이자 괴로움의 원천이다. (중략) 대신, 글쓰기의 괴로움을 온전히 대면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지 않고 무얼 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그러므로 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이 써지지 않는 그 공백의 시간은 불가피하고 필연적이라는 것.
공백의 소설 쓰기_임현_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_P.99~100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동시에 무얼 쓰지 말아야 할지 역시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로 시작하는 임현 작가의 꼭지는 소설 쓰기의 어려움에 위트를 더한 글이었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 남들도 다 그렇다는 사실이 나름 위안이 되기도 하고, 앞으로 더 나아질 가망은 없는 것 같아서 조금 암담하기도 하다, 는 작가의 마음이 왠지 너무 잘 느껴져서 나 역시 내일부터 진행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헤아려 본다. 문장을 쓰고 고치는 일처럼 누군가의 문장을 다듬는 일 역시 적절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으면 머리를 싸매고 고심해야 하는 일이기에. 게다가 시간마저 촉박하다면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모쪼록 암담한 현실을 지혜롭게 해쳐 나갈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살아가다 어느 날 문득 소설을 쓰기 시작했듯, 어느 날 갑자기 어떤 글도 쓰지 못하는 때가 올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글과 완전히 멀어져 헤어질 수밖에 없을 때가. 조금씩 각오하고 있다. 만약 십 년 뒤에도 내가 글을 쓰고 있다면, 첫 문장을 고민하며 서너 계절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면, 그 때에도 누군가 당신은 어째서 소설을 쓰나냐고 묻는다면,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 마음을 설명하려고 애쓰는 삶을 충분히 살아서 더는 그럴 필요 없는 사람이길.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겐 소설이 필요합니다, 라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입구도 문도 자물쇠도 비밀번호도 없는 시작_최진영_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_P.193
'좋아하는 마음은 변함없으나 좋아하는 만큼 잘 쓰고 싶고,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은 나를 힘들게 한다'는 최진형 작가의 문장에 나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힘차게 외'치고 만다. 심지어 나는 소설가도 아닌데. 첫 문장 쓰기의 어려움. 입구도, 문도, 문지기도, 자물쇠도, 비밀번호도, 길도, 위아래 좌우도 없는 그 세계에 입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젠가는 꼭 내 글을 쓰리라 마음 먹으면서도 여전히 '고급 독자'를 가장한 '편식 독자'에 머무르고 있는 나라서 더더욱 이 꼭지가 마음에 와 닿았다. 많은 문학상을 거머쥔 작가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하물며. 그래서 '나는 오늘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읽고 오늘 쓸 수 있는 글을 씁니다. 나는 소설을 좋아하는 나를 좋아합니다'라는 작가의 고백에 마음이 찡해진다. '소설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소설을 쓰지는 못해도 읽고는 있으니 나 역시 소설의 언저리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우겨봐도 될는지.
현역 작가 23인의 소설 생각이 담긴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선뜻 손 내밀어 펼쳐보고 싶은 그런 책이 아닐까. 소설가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아, 이래서 소설가구나 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책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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