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쟁 - 대한민국 경제, 어디로 갈 것인가?
최용식 지음 / 강단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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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살림살이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갈수록 더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왜 그럴까? 국민소득을 3만 달러를 목전에 두고 수년동안 제자리걸음하거나 후퇴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돌아선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공기업의 민영화와 작은 정부의 실현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부의 편중만을 불러왔을 뿐이다. , 경제학자들이 내놓는 수치들은 계속 향상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올라간 수치만큼 모든 국민들이 골고루 혜택을 누리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성장과 분배. 오랜 시간동안 대립되어 온 경제용어다.

한쪽은 성장을 말하고, 다른 한쪽은 분배가 먼저라고 말한다.

성장을 말하는 쪽은 먼저 성장을 해야 나눌 수 있지 않겠냐는 - 낙수효과라고 했던가 논리이고, 분배를 주장하는 쪽은 지금까지 성장을 위해 땀흘렸지만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나누면서 가자는 논리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둘 다 나름대로의 명분과 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까지 정부나 정치권, 경제계 등 가진자들이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아 불신이 너무 깊어졌기에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더욱 격하게 부딪히는 것이 아닐가 싶다.

하지만 성장없는 분배나, 분배없는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성장한만큼의 분배가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배는 성장의 목적이고, 성장은 분배의 수단인 셈이다. 분배를 위해서는 성장이라는 수단을 먼저 강구해야 하고, 그래야 성장의 목적인 분배가 이뤄지며, 분배가 제대로 이뤄져야 성장도 지속 가능해지고 경제번영도 지속된다.... 수단은 목적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도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다. 따라서 복지라는 목적이 전재돼야 한다. 현실적으로 성장이라는 수단이 복지를 뒷받침하고, 성장의 결과가 복지의 향상에 봉사하면 성장과 분배는 선순환하게 된다. 복지는 이런 의미에서 성장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 P. 183~184.

 

<경제 전쟁 - 대한민국 경제 어디로 갈 것인가>경제재도약추진모임과 대표저자의 공저로, 한국경제가 국민소득 3만달러의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된 김영삼 정부 이후 역대정권들의 잘못 운영된 경제정책들에 대한 분석과 그런 잘못된 정책을 실행하게 하고 정당한 정책이었다고 합리화시키는 잘못된 경제이론들, 그리고 현재 세계경제의 문제점들과 함께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10만달러까지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실행되어야만 할 경제정책들을 사례들을 통한 아주 강력한 분석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연평균 성장률을 6.5% 로 유지하고, 물가상승률을 3.5%로 유지하면서 환율을 매년 6%씩 인하한다면 5년 후에는 국민소득 5~6만달러가 가능해지고, 10년 후에는 8~10만 달러도 가능하다고, 세계 5강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한 정확한 분석을 통한 경제정책과 민영화를 통한 작은 정부의 실천으로 장기적인 경기안정이 우선되어야만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심지어 국민소득이 두세 배나 많은 나라보다 우리 성장률이 더 낮은 때도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은 고사하고, 해외시장은 물론이고 국내시장까지 후발국에 빼앗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당장 현재의 위기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합니다. 이 책은 그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경제를 세계 5으로 이끌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자 집필되었다.” - P. 6.

 

경기 안정은 모든 정책의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사회복지 향상, 빈부격차 완화, 부동산투기 억제, 국가부채나 가계부채의 축소, 구조조정,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은 모두 바람직한 정책목표이지만 경기가 안정된 가운데 추진해야 할 일들이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목표일지라도 경제 체력이 버텨주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경기 흐름을 해치지 않을 수 있고, 이 경우에 비로소 소기의 정책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P. 93~94.

 

경제 성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만약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면 안정을 잃고 쇠락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선택의 문제라면 다른 정책에 더 치중할 수도 있으나, 생존의 문제라면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생존하지 못하면 어떤 다른 훌륭한 목적도 의미를 가질 수 없다.” - P. 168.

 

아마추어인 나로서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모든 정책에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에는 공감이 간다고나 할까.

가장 먼저 너무나 거대해진 공기업들과 민영화되었지만 정권의 입김아래에 있는 기업들, 그리고 그에 빌붙어 떨어지는 떡고물을 나누어먹고자 하는 관료들과 정치인들을 물갈이해야 대한민국의 경제가 제대로 숨쉴수 있고 국민들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는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비록 당장은 욕을 먹더라도 정확한 경제예측을 통한 경제정책의 시행을 할 수 있는 정치인들과 정부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지금처럼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후안무치한 이들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경제토대를 바로 세울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곧 총선이다. 벌써부터 시끄럽지만 정작 중요한 국민은 없다.

국민의 먹을거리와 살거리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이들이 안보인다.

그럼에도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 최악이나 차악이 사라질 테니까.

 

우리 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전문가든 정치인이든 언론이든 지식인이든 누구 하나 경제난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렵다는 소리는 민초들 사이에서만 들려올 뿐, 민심을 정부와 정치권에 알려서 대책을 세우게 해야 할 언론은 과거에는 더 어려웠다는 사실만 줄기차게 내세워 경제전문가나 지식인 사회에 침묵을 강요할 따름이다. 현재의 처참한 경제실상을 정확히 알아야 정부가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닌가 말이다.” - P. 37.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는 보수든 진보든 국민의 경제난은 물론이고 국가 경제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오로지 표를 구걸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국민이 잘 살기 위해서는 그리고 우리 경제가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치권을 물갈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치권이 경제를 살려낼 정책을 찾으로 할 것이다.” - P.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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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 - 배반의 역사로 잃어버린 궁극의 맛을 찾아서
김현진 지음 / 난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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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의, , 주를 이야기한다.

먹고, 입고, 자는 공간이 있어야만 사람이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세가지 중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선택하라면 먹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옷이야 없으면 벌고 벗고 살면 되고, 집도 없으면 나무 위나 동굴 같은데서 살면 되지만, 먹을거리가 없으면 인간의 삶은 며칠을 넘기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유대교, 불교, 이슬람, 힌두교, 유교 등 다양한 종교들이 각기 독특한 문화적 전통을 발전시켜 왔으며, 그중에서도 음식코드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음식은 몸을 건강하게 하고, 종교는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상보적이다. 그리고 몸과 마음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상호 깊이 의존하고 있어서 음식과 종교가 별개로 다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P. 212.

 

인간의 삶과 역사에 있어서 이렇게 중요한 먹을거리는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부족했다.

바로 2백년전만 해도 먹을거리가 없어 굶어죽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산업이 발달하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에도 세계인구의 상당수는 굶주림에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왜 모든 인류가 충분히 먹고 살아갈 수 있을만큼 먹거리가 생산되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만들어진 먹거리가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지지 않고 편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고, 가진자들에게 넘쳐나는 엄청난 양의 먹거리가 버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풍족한 먹거리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중에서도 정말 인체에 좋은 먹거리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고, 나머지 나름 먹고살고 있다는 사람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정말 좋은지 어떤지도 모를 음식들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먹는 자라고 모든 먹거리를 독식할 수는 없다. 지나치게 편향된 영양의 배분은 사회적 영양실조를 초래한다. 한 개인의 폭식이 그의 건강에 위험을 초래한다면, 특정한 계층의 폭식은 그 사회의 건강과 안전을 파괴한다. 그래서 폭식은 죄가 되는 것이다.” - P. 11.

 

인류의 역사에서 먹거리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이다.

신화시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인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과 기후, 생활방식에 따라 다양한, 그들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만들어왔고, 전세계가 일일생활권으로 들어서기 전까지 각자의 지역과 국가내에서 자신들의 먹거리 문화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전세계가 하루 생활권이고, 인터넷을 통해서는 1초도 안되는 시간에 지구 반대편 지역의 음식과 조리법을 찾아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식탁은 권력의 연장선이다. 우리의 식탁이 어떻게 꾸려지고 있는지는 우리가 어떤 권력관계에 놓여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소외계층에게 먹고 마시는 것은 생존의 문제로, 삶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이다. 이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전략은 나누고 함께 먹고 즐기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제대로 된 식탁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시급하다. 누구와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최종적으로 사회의 모습을 달라지게 할 것이다.” - P. 142~143.

 

<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 배반의 역사로 잃어버린 궁극의 맛을 찾아서>는 신화속에, 그리고 인류의 종교 이야기안에 담겨있는 음식들과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먹거리 문화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를 성찰해보는 책이다. 또한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자연과 모든 생명들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 주는 책이다.

저자는 먹거리 종류와 그것을 먹는 방법과 형태가 곧 우리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거울임을 이야기한다. 과거의 다함께 나누고 먹는 생활에서 이제는 그냥 내 가족, 나 혼자만의 먹거리와 식사문화는 현대를 고독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닌 함께 더불어 먹고 살아가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음식과 관련하여 신화에서 던져지는 인생에 관한 질문들은 인류학적으로 매혹적일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심오하다. 또한, 음식문화나 규정들은 현대인들에게도 윤리적 관점을 제시한다. 인간의 삶과 역사를 관통하며, 인간 본성과 그것에 기인한 인류의 미래를 성찰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상수의 역할을 해왔다.” - P. 14.

 

먹는다는 것은 한 생명을 살리는 활동인 동시에 다른 생명을 죽이는 행위이다. 우리 존재는 이 역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 실존의 한계와 모순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음식과 삶에 대한 오만이 좀 더 소박해질 수 있다.” - P. 50.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간혹 인간관계를 먹고 먹히는 형태로 비유해 표현한다. 가정, 직장, 남녀 사이에서 누구든 먹고 먹히는 관계에 빠지기 쉽다. 어쩌면 그것이 약육강식의 세계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계의 현실을 당연시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조금이나마 희생 대신 생명의 회복을 꿈꾸는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무엇인가를 먹고 있을 때,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스토리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P. 82.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했던가.

가족이 함께 밥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말일 것이다.

현대인들은 한집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지만 각자 다 따로 움직이고 먹는다.

너무나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내어 같이 식사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이리라.

그렇더라도 온가족이 모여 함께 이야기나누며 식사를 하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족의 밥상이 살아나야 우리 사회의 공동체밥상도 살아날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의 보다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해질 것이기에.

 

가정의 밥상이 무너지고, 사회의 공동식사가 사라지고, 나누어 먹는 식탁공동체의 정신이 상실된 시대에 우리가 고독하게 홀로 남겨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밥상을 회복하여야 한다. 건강한 음식과 가족들의 삶이 함께하는 밥상공동체를 회복하여야 한다. 그것이 서로의 삶을 나누고, 서로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파편이 된 개인들을 연결해주는 길이다.” - P. 157.

 

조금만 더 적게 먹고, 조금 더 순환의 속도를 늦추는 삶은 생각보다 많은 생명에게 삶을 돌려줄 수 있다. 식생활을 바꾸는 것이 바로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과잉영양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아직도 더 기름지고 푸짐한 식단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굶주림의 기억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이다. 이제 그 도착증세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 P. 259.

 

음식문화는 그 사회와 시대의 정신만큼 성숙한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음식문화를 회복하고 가다듬을 필요가 절실하다. 우리의 식탁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 시대정신을 담을 수 있는 지적, 정신적 성숙을 이루어내야 한다.... 신들의 향연은 아니더라도, 인간의 만찬이 풍성해지는 것은 함께 나눔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인간됨을 선언하고 인간의 만찬을 차리기 위해서는 강자가 약자를 먹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누어 먹는 밥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P. 26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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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학교혁명 학교혁명 1
켄 로빈슨.루 애로니카 지음, 정미나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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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현들은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백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야 되는 것이 교육이라는 의미로, 각 민족과 나라, 그리고 전세계의 미래는 그들이 꿈꾸는 미래와 꿈을 이루기 위한 교육에 달려있다는, 그만큼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권력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이들에 의해 교육이 좌지우지되고 있다.

독재자는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교육을 이용하고, 정당과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책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단기적인 정책들을 통해 수치로 보여주려고만 한다.

결국 교육은 장기적인 계획이 아닌 연속적인 단기적 미봉책들로 연명해가게 되고,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는 점점 암울해져 가게 된다.

 

한 마디로 현재 우리의 교육 방향은 교육의 주인공인 아이들의 행복도를 낮춘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비용 낭비적이고 소모적이며 시대 착오적이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개인적, 사회적 비용 낭비를 개선하기 위해, 또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교육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 P. 395.

 

교육학을 공부했기에 교육의 정의에 대해서 대학 첫 강의때 듣게 되었고, 생각해보게 되었었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과연 교육이란 무엇이며, 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

어떤 것이 아이들을 위한 참교육의 모습일까?

어느덧 초등학생과 중학생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까지도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직면하며 계속하게 되는 고민이다.

학교에서 받아오는 각 과목별 성적과 석차와 같은 수치에 일희일비하게 되는, 그러면서 아이에게 조금 더 나은 성적을 받아올 것을 강요하는 나 자신을 느끼며, 머릿속 이상과 현실에서의 실천을 같게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문제임을 깨닫곤 한다.

 

변화의 기회는 모든 학교의 내부에 존재한다.... 불리한 조건이나 제약 속에서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가 이를 극복하고 제도 내에서 혁신을 이룬 사례는 아주 많다. 교육은 본질상 혁신이 가능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 P. 110.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학교혁명>은 저자가 2006년 강연하였던 학교가 창의력을 죽인다라는 최고 인기의 TED 강연을 더욱 구체화한 책으로, 모든 것을 표준화하여 아이들을 무한경쟁의 늪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교육의 문제점들을 파헤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혁신적인 교육제도 개인별 맞춤 교육 - 에 대해 획기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19세기 중반에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측면에서 대량생산의 원칙에 따라 체계가 세워진 대규모 공교육체제는 급속히 변화되고 발전하는 현대 상황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표준화된 기준에 맞춰 학생들을 구분하고 무한경쟁을 시키는 기존 교육체제는 교육을 받는 개개인의 개성과 특성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개개인을 소외시키고 있음을 말한다.

 

이 책에서 나는 표준화 문화가 학생과 학교에 어떻게 해를 끼치는지 설명하면서 교육에 대한 차별화된 사고방식을 제시하려 한다. 또한 당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디에 살고 있든 당신에게는 제도를 변화시킬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P. 8.

 

산업 제조의 목적은 똑같은 상품을 동일한 형태로 생산하는 것이다. 동일하지 않은 물건은 버려지거나 재가공된다. 대중 교육제도도 학생들을 특정 조건의 틀에 짜 맞추려는 의도로 설계됐다. 그런 탓에 모든 학생이 제도를 통과하지는 못하며, 일부는 그 제도로부터 퇴짜 맞고 있다. 산업적 방법에서는 특정 규칙과 표준에 따른 획일성을 요구한다. 이런 원칙이 현재까지도 여전히 교육에 적용되고 있다.” - P. 77.

 

교육의 근본목적은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 것이다. 그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하지만 현대의 교육제도는 온갖 방해 요소들로 뒤죽박죽 엉켜있다. 정치적 어젠다, 국가적 우선순위, 노조의 입장, 건축 법규, 고용계약, 부모들의 열망, 또래 간의 경쟁 등... 하지만 교육의 핵심은 학생과 교사의 관계다. 다른 모든 것은 이 관계가 얼마나 생산적이고 성공적인가에 좌우된다.” - P. 128.

 

저자는 교육의 다양성을, 개개인의 차별화된 교육 접근법을 말한다.

개개인의 특성이나 능력이 다른 상황에서 더 이상 표준화되고 일원화된 교육체제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교육을 받는 학생들, 부모와 교사, 교장과 교육관료 등 교육에 관련된 모든 이들이 노력해야만 현재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현장의 학생과 교사의 관계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비록 한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없겠지만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와 같은 개인 맞춤형 교육의 여러 접근법은 대체로 진보적 교육이라는 기치 하에 하나로 묶이며, 일부 비평가들은 이를 전통적 교육과 완전히 상반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오해다.... 효과적인 교육이 되려면 어떤 경우든 엄격함과 자유, 전통과 혁신, 개인과 집단, 이론과 실천,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 사이에서 균형이 맞춰져야 한다.” - P. 391.

 

우리나라의 교육체계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우리의 생활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라도 무조건 이길 것만을 강요하는 끝없는 무한경쟁의 시대는 아이들을 더욱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세계 1위의 자살율이 이를 증명한다고 본다.

오직 성적을 나타내는 수치만을 중요시하는 현재의 교육에서는 정작 중요한 학생들 개개인의 존재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학생 개개인의 희망이나 능력, 특성은 완전히 무시되고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보여주기 좋도록 오직 아이들의 발전을 수치로 보여주기 위해 일제고사를 실시하여 줄세우려 하고, 다양성을 말하는 모든 이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

게다가 자신들이 권력유지를 위한 일방적 방향으로만 교육을 끌어가려고 한다.

 

교육의 획일성이 문제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애초부터 표준화돼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가 획일성에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교육에서의 제도화된 경향, 즉 하나의 표준 능력으로 학생들을 판단하고 그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을 저능아부진아라는 낙인을 찍으며 정상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다.” - P. 78~79.

 

교육은 멀리보고 가야만 하는 국가의 가장 큰 일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때마다 바뀌는 우리의 교육체계는 교육당사자인 학생과 교사를 너무 힘들게 한다. 그와 동시에 부모들에게는 엄청난 경제적 짐을 지게 하고 있다.

또한 출발선이 다른 교육은 금수저 흙수저 논쟁을 일으킬만큼 갈수록 심화되는 부와 권력의 불균형을 불러오고 있다.

저자는 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교육에 관련되어 있는 부모와 교사, 교장과 교육관료들 한명 한명이 변화를 위해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혼자의 힘은 작겠지만 한사람 한사람의 힘이 모이면 바꿀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현실에 대한 한탄과 포기를 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 해보자.

그리고 그런 생각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면서 힘을 키워가 보도록 하자.

그래야만 세상은 바뀔 것이고, 교육도 아이들을 위한 방향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교육은 그야말로 우리에게 최선의 희망이다. 그것도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수요에 따라 설계된 구식의 산업적 교육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직면한 도전과 우리 안에 깊이 내재된 진정한 재능에 걸맞은 새로운 스타일의 교육이 우리의 희망이다.... 지금은 우리의 창의적 자원과 기술적 자원을 활용해 교육 변화에 나설 적기다.” - P. 22~23.

 

교육의 변화를 고민할만한 최상의 시작점은 바로 당신이 지금 속해 있는 곳이다. 더불어 지내는 사람들을 위해 교육의 경험을 변화시키면 그들의 세계를 변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더 넓고 복잡한 전반적 교육의 변화에 동참할 수 있다.” - P.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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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리더수업 - 일류 리더들은 고전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나채훈 지음 / 보아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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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사상들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나왔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혼란한 세상과 약육강식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절이기에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고, 인간과 삶에 대한 보다 깊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인도해주는 다양한 형태의 고전들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나 남들을 지도하고 이끌어가는 리더들에 대한 고찰은 현대의 지도자와 기업가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그들의 손에서 오랜된 옛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무중생유라는 말이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의미다. 리더라면 남들은 무용하다고 여겨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에서 쓸모 있음을 찾아내어 유용하게 쓸 줄 알아야 큰 성공을 이끌 수 있다.” - P. 153.

 

<고전 리더수업 일류 리더들은 고전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는 동양, 특히 중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인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순자, 한비자, 손자의 저서와 그들의 사상을 통해 리더를 꿈꾸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공자와 맹자에서는 리더가 가져야할 기본적 철학을, 노자와 장자에서는 처세의 도를, 순자에게서는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한비자에게서는 권력을 가진 자의 권력 활용법을, 손자에게서는 삶의 경쟁에서 지지않는 법을 설명해준다.

시대가 바뀌고 삶의 형태는 수없이 바뀌었지만,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들(제자백가)의 리더학에서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제시하는 세 개의 기둥은 스승(근본, 즉 원리원칙을 가르치는 이)’, ‘측근(바른말을 해주는 가까운 사이의 참모)’, ‘막빈(부귀공명에는 관심없는 손님이나 친구)’으로 요약된다. 이 세 기둥에서 그들은 각자 독특한 의미를 부여해 차이를 이루고 있다.” - P. 5.

 

대한민국이 점점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은 나 혼자만의 것일까?

저마다 자신이 가진 조그만한 권력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이제는 겨우 먹고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의 그나마 남아있는 살을 뜯어먹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이 상황을 과연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는 것일까?

왜 사람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어보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왜 자포자기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포기하기 전에 최소한 다른 선택을 하는 노력을 해보자.

진짜 좋은 리더가 없는 것인지, 그나마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들을 뭉게버리는 정치, 언론, 관료계 기득권자들의 거짓과 횡포인지 제대로 보고 고민하고 선택하도록 하자.

옳지 않은 것에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을 해보자.

한번에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늦더라도 한발짝씩이라도 나아가도록 해보자.

 

흑백을 가릴 수 없는 세상, 선량한 사람은 움츠러들고 하찮은 소인배들이 기승을 부리는 세상, 문제가 심각해지면 이것도 그럴 수 있고 저것도 그럴 수 있다고 용인하는 세상을 외면하고 방치해서는 안된다. 훌륭한 리더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는 이러한 세상을 앞장서서 바로잡기 위해 무엇보다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쉼 없이 연마해야 한다.” - P.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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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역습 진격의 일본 - 아직 끝나지 않은 한일 간 비극의 역사
조용택 지음 / 북클라우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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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결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나라 일본.

그러면서도 그들의 문화와 그들이 만든 제품들을 좋아하고 선호하는 우리들.

입으로는 욕하고, 마음으로 싫어하면서도 그들의 것들을 즐기는 우리 대한민국인들.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사람 한사람 개개인 일본인은 친절하고 좋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싫다는 우리.

과연 맞는 말일까? 그 개개인이 모여서 나라가 되는데?

 

일본인 개개인은 평화를 사랑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집단적 자아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 힘으로 버블경제 붕괴 이후 위축된 사회분위기를 일소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갈망이 있다. 그것이 주변국의 우려를 간섭으로 여기도록 만들고, 아베정권의 군국주의적 행보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 P. 37.

 

우리나라 대한민국, 일본, 중국의 역사는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서로가 수천년을 얽키고 설켜서 만들어진 역사이기에, 무조건 좋다 싫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3국의 역사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일본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탄하여 36년간 지배하고, 그것을 지금까지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아서? 아니면 우리에게 선진문명을 배워간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잘살고 있어서?

그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물론 좋아하지만 내놓고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일본을 싫어한다. 일본 이야기는 ---으로 끝내야 속이 시원하다. 문제는 그 욕들이 대개 민족감정에 바탕을 둔 막연한 것들이란 점이다. 그것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열등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격의 빌미만 준다. 욕을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도 좀 아프고 개선의 여지가 생기는 법이다. 그러려면 치욕의 역사를 직시하고 일제가 자행한 만행을 몸으로 느끼는 교육이 절실하다.” - P. 283.

 

<제국의 역습 진격의 일본 아직 끝나지 않은 한일간 비극의 역사>는 일본에 대해서 무조건 까고 시작하는, 그러나 감정적으로만 이야기할 뿐 그들이 만들어놓은 문화적, 경제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아픈 부분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다.

다만 독자로서의 느낌은 저자가 일본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고자 하지만 일본에 대해 조금은 좋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뭐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람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 있으므로.

 

우리는 왜 끊임없이 일본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거덜나고 때로는 나라가 없어지는 치욕을 반복한 것일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한국이 일본을 제대로 바라봐야 할 부분들을 놓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과소평가하는 데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일본은 세계를 움직이고 있고 그들의 힘은 건재하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과거 우리가 일본에 선진문물을 전해주었다는 등 우월한 기록보다는, 한반도가 왜나 일본으로부터 침탈당한 역사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 P. 6~7.

 

누가 뭐래도 일본은 한국에 중요한 나라다. 수천년 은원으로 맺어진 역사가 있다.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이웃이다. 이제 마인드를 바꿀 때도 됐다. ‘있는 그대로일본을 보고, ‘이해득실을 따져일본과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최소한 그들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한 일이다.” - P. 29.

 

광복 70주년을 넘어섰지만 우리는 아직도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 암살이 인기를 끌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염석진(이정재분)의 후손들과 그보다 더한 매국노들의 후손들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다.

친일매국노들의 후손들은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가 친일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거나 오히려 그 시대엔 어쩔 수 없었다거나 누구나 다 그랬다는 식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이제라도 친일청산을 하자고 하는 외치는 이들의 입을 막으려고만 한다.

국정교과서를 보라.

이것은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매국노들과 그들과 그 후손들이 저질렀던 친일과 독재시대를 미화하고자 하는 노력의 최정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를 교육현장에서조차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올바른 역사교육은 잘못된 교육방법을 막고자 하는 학부모 한명한명의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 P. 279~280.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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