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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 처음 만나는 에티카의 감정 수업
심강현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평점 :
16~17세의 유럽은 신의 시대인 중세를 넘어 인간의 이성을 존중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였지만 인격적
신의 존재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런 시대적 정서에 반하는 주장을 하여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쫓겨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스피노자이다. 일반적으로 범신론을 주장한 철학자라고 알려졌고, 그렇게 배웠었다.
스피노자는 인격적 신이 아닌 자연 또는 대우주를 신의 위치에 놓았다.
그는 대자연의 운용되는 질서가 선도 악도 아닌 계속적인 원인과 결과에 따른 필연에 의한 것임을
주장하였다.
물론 극히 소수의 깨우친 자들을 뺀 무지한 인간들의 눈에는 그것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그런 대우주의 질서속에서 대우주의 모습을 닮은, 역시나 선도 악도 아닌, 오직 관계에 의해서 선도 악도 될 수 있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욕망에 휘둘리는 더러운 육체와 신의 모습을 닮은 고귀한 정신을 분리하여 이야기하던 당시의 흐름에
반하여 육체와 정신이 하나이며, 욕망이 진정한 인간의 본질임을 말한다.
이성과 감정의 두말을 욕망이라는 마부가 조정하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피노자는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인생은 그가 맺는 관계에 따라 선도 될 수
있고, 악도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나에게 기쁨을 주는 관계는 선이고, 슬픔을 주는 관계는 악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모든 관계의 중심에 신이 아닌 스스로 움직이는 인간을
위치시킨다.
인간은 고통과 슬픔의 삶속에서 기쁨을 찾아가는 존재이며, 이 기쁨의 최고봉은 사랑이며, 관용이라고 이야기한다. 오직 깨우친 자만이 할 수 있는 무한한 관용.
“이 대자연 속에서는 원래 선한 것도 원래 악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선악은 ‘관계’에 의해서만 가려질 뿐입니다. 그 관계가 ‘결합’이라면 그것은 그에게 선이며, 관계가 ‘해체’라면 그것은 그에게 악입니다.... 이런 ‘관계’의 원리는 인간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원래 악한 사람도, 원래 착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 자체에 선과 악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맺는 인간관계에 따라 가려질
뿐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원래’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그가 맺어 온 관계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은 민감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 P. 90~93.
“이성을 통해 어느덧 상황의 원인을 인식했다면, 이 제 남은 것은 우리가 새로운 원인이 되어 그 상황에 참여하는 행동입니다. 지금껏 정념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는 이성의 빛에 의해 수동적인 ‘겪음’을 벗어나 능동적으로 ‘할 수 있음’으로 향해 가는 겁니다. 외부로부터 일방적으로 ‘작용 받던’ 우리는 스스로 원인으로 참여하면서 이제 외부를 향해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 P. 226.
“우리의 목적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미리 정해진 목적이란 아예 없으니까요. 목적이 먼저 있고 그다음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가 먼저 있고 그런 다음 우리의 목적이 정해집니다.” - P. 287.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한 철학자의 사상을 책 한권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원작에 대한 해석자의 해석이 담긴 책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원저작자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길로 이끌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해석의 책들을 읽어야 한다.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 처음 만나는 에티카의 감정 수업>에서 저자의 글을 따라 스피노자의 철학을 읽어가면 갈수록 동양의 노장사상이나 불교를 느낄 수
있다.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스피노자의 사상을 검색해보면 그가 동양사상에 심취해 있었다는 글들이 있다.
동양인이라면 어쩌면 자주 들었기에 익숙한 개념들이 스피노자의 글속에서 어려운 서양의 철학용어로
다시 태어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는 스피노자에 대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지만, 스피노자가 말하는 철학적 용어들 자체가 쉽지는 않다는 말이다.
예전 <시크릿>이라는 책도 그랬다. 많은 이들이 읽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
하지만 동양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것을, 너무 어렵게 적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실은 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또 스피노자 전문가도 아닙니다. 단지 철학에 관심을 두고 스스로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에티카>를 항상 옆에 두고 반복해서 읽어 왔습니다.... 엄밀함을 요구하는 철학 전공자들에 비해 저 같은 아마추어 철학 애호가가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점이라면, 아마도 스피노자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단어와 접근법을 선택했다는
차이 정도일 겁니다.... 여러 해설서를 접해 보았지만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저만의 해석이 이 책에 포함되어
있음을 수줍게 고백해 봅니다.” - P. 11.
“스피노자의 공로는 물론 많지만 여기서 말씀드릴 것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철학사의 뒷골목에 버려져 오랜 기간 방치된 우리의 ‘몸’을 부활시켰다는 점, 다른 하나는 악의 화신쯤으로 여겨지던 욕망을 인간의 본질로 급부상시켰다는
점입니다.” - P. 70.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철학이 너무나 철학자들만의 말놀이에만 그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현대철학으로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다.
조금 더 쉽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고 글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의 용어는 너무 어렵다. 물론 내 머리의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도 있겠지만.
뭔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손에 잡힐 수 있게 하려다보니 어려운 말들로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분석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천재들의 모습은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그들이 그림을 그려놓았기에 거기에 대해 나같은 무식한 이들도 가타부타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먼저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경험’을 통해 이성의 잠을 깨우라고 언명합니다. 경험에 의해 깨어난 이성은 힘을 발휘할 것이고, 결국 우리로 하여금 상대를 ‘이해’하게 만들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 P. 253~254.
“그러고 보면 우리 삶이란 슬픔에서 기쁨을 찾아내기 위해 우리 자신을 단련시켜 나가는 먼 여정인지도
모릅니다. 잃어버린 자신의 한쪽 날개를 마저 찾아가는 긴 도정 말입니다.” - P. 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