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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우리나라도 이제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한다.
고령의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퇴직후 약 20~30년의 시간을 더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이들이 더 늘어난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별다른 수입없이 생계와 질병 등에 대처해야만 한다는 말이
된다.
즉, 국가가 복지의 영역을 대폭 확대하지 않는다면 별다른 은퇴 준비없이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붐머
세대부터 완전히 막다른 벼랑으로 내몰리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현실적으로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노령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그
자녀들의 가족까지 전체 가족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
“바야흐로 백세 시대라고들 한다.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은 우리가 겪어야 할 노화와 죽음의 과정 또한 더 길어진다는
뜻이다. 빛이 비치면 반드시 그림자가 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성찰하고 더 많이 익숙해져야 하며, 이 초고령 사회가 장차 어떠할 것인지, 그리고 장차 어떠해야 할 것인지, 신속하고 심도 있는 전 사회적 차원의 성찰과 설계에 나서야 한다.” - P 249.
누구나 오래살기를 소망한다. 이 소망에는 전제가 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라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함을 우리는 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아주 비참하게 병에 찌든채 아무런 도움없이 살아가야
함을. 슬프지만 이런 이들에게는 죽는 것도 쉽지가 않다.
오직 경제적 능력이 있는 이들만이 첨단 의료의 혜택을 받으며 건강을 유지하면서 죽을때까지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작가인 저자가 여든여덟 살이던 해에 병으로 눕게 되어 아흔 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버지와의 1,254일간의 아주 별난 여로를 회상하며 이야기하는 책으로, 3년을 넘는 시간을 아버지를 병간호하면서 점점 작아져가는 아버지에게서 느낀 죽음에 관한 생각들과
우리나라의 허울밖에 없는 현실적인 의료시스템과 의료복지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병든 아버지를 병원이나 요양병원이 아닌 아버지의 집에서 돌아가실때까지 모시며 수발을
하였다. 물론 간병인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먹고 살기에 헉헉대는 현대인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을 하였다.
그 이유는 병든 아버지가 낯선 병원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익숙한 집에서 지내시는 것이
정신적으로 아버지에게 더 좋을 것이라는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저자가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로운 작가라는 직업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남들이 하지 못하는 아버지와의 행복한 정리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노화와 죽음의 과정을 처리하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방법들에 대한 관찰과
성찰, 그리고 생로병사의 극적인 현장에 반응하는 나의 적나라한 내면의 기록을 담고
있다.... 나는 이 책이, 죽음의 과정에 들어선 한 실존 생명의 개별 케이스에 대한 나 자신의 극히 실존적인 체험과 관찰
그리고 성찰의 기록으로 읽히기를 원한다.” - P. 4~5.
“인간은 수명이 다하면 죽는 것이 마땅하다. 누구도 예외는 없으며 이것은 저항할 일이 아니다. 때가 다가오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자기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낯선 병원의 침대 위에서가 아니라, 가능한 한 자기가 오랫동안 살아온 집에서, 익숙한 자신의 방에서, 익숙한 냄새와 분위기 속에서 죽는 게 가장 좋다.” - P. 25.
누구나 편안한 죽음을 원한다.
아주 건강하게 살다가 자다가 죽거나 갑작스럽게 죽는 그런 죽음을.
하지만 그런 행복한 죽음은 모두에게 허락되지는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이들이 나이가 들어 병든 육체와 싸우다 죽게 될 것이다.
그 기간이 짧던 길던.
저자의 아버지와의 3년여의 기록은 이제 70대에 들어선 부모님을 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하는.
또한 나는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미리 자식들에게 억지로 생명연장을 하지 말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어떻게든 더 살게 해달라고 해야
할까?
지금은 자신있게 선택할 수 있겠지만, 과연 죽음을 느끼게 되었을 때의 선택을 자신할 수 있을까?
“과연 어느 선까지 환자 본인의 뜻을 따라줘야 하는 것일까? 나는 본인의 정신이 온전한 한 전적으로 환자 자신의 뜻을 따라줘야 한다고
보지만, 이런 생각을 과연 실천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대부분 그 반대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목숨에 관한 한 우리는 일단 살려놓고 보자는 오래된 타성에 묶여 있는데, 주도권을 쥐고 있는 병원 시스템과 의사들도 이러한 습관적인 흐름에서 벗어날 의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고령의 환자에게 그런 방식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유지하게 하는 것은 무의미한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제 삶을 마무리하려고 하는 사람을 강제로 살렷 인공적인 생명의 감옥에 중죄수로 가둬두는
잔인한 짓이 될 수도 있다.” - P. 46.
이 서평은 [문학동네]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