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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ㅣ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 이렇게 무모한 도전이 또 있을까? 전직 기자 출신 저자가 1만 2000킬로미터에 해당하는 실크로드를 횡단한단다. 그것도 환갑을 넘긴 할아버지(?)가...... 그것도 두발로 걸어서만...... 대단하다는 생각에 앞서 황당한 생각부터 먼저 든다.
그런데, 여기 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실크로드 두다리 여행"을 당당히 끝마친 젊은 오빠(?)가 있다. 이 여행은 무려 4년에 걸쳐 완성되었고, 그 중 일편에 해당하는 이 책은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이란의 국경을 몇 킬로미터 앞두고 이질에 걸린 저자가 다시 이스탄불로 반강제로 호송되어 병상에 누워 다음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까지를 다루고 있다.
책에는 요즘 여행기에는 으례 등장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사진이나 그림 한장 없다. 게다가 그가 실크로드를 경유하며 지나치는 마을에 대한 특징적인 기록마저도 많이 생략된 듯 하다. 오로지 그가 두발로 걸어 여행한 기록만이 책 빼곡히 서술되어 있다. 여행 기록은 대략 이렇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다음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운다.) -> 길 위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 저녁 무렵 목적한 마을에 도착한다. -> 이상한 이방인으로 인하여 깡촌 마을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 날이 밝아 다시 길을 떠난다." 여행 기록은 위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너무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그가 분쟁 지역인 쿠르드 마을에서 군인에게 호송되는 장면은 스릴감마저 느낀다. 여행기가 스릴있다니 독특하지 않나?
오로지 신성한 육체적 노동(걷기)을 통해서만 이루어진 여행이라는 점이 이 여행의 독특하고 멋진 점이다. 두 발로만 이동하다 보니 고속화 시대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저자의 여행은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서 그는 터키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우정을 나누고, 오래전 실크로드를 지났을 상인들과 교감하며,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순결한 영혼이 한결 성숙하는 경이로움을 맛본다. 마치 생애 마지막 목적을 갖고 성지순례를 하는 경건한 순례자처럼 한발한발 전진하는 저자와 같이 길을 걷다보면 나도 이런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어진다. 저자처럼 멋진 여행은 못 되더라도 그저 남쪽 지방의 어느 낯설고 한적한 시골길이라도 무작정 걷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 이번 여름 휴가에는 나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떠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