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처음 이 책을 읽으며 막연하게 알고 싶었던 것은 과연 '언제' 스스로가 퀴어 혹은 트랜스라는 걸 깨달았을까 였다. 어떤 특정한 계기나 깨달음이 있는 건가 그냥 막연한 무례한 호기심.ㅡ그(he/they)도 이런 궁금증을 아는지 꽤 초반에 이야기해준다. "내가 나를 알게 된 건 네 살 때였다.(...) 나는 내가 여자가 아니라는 걸 애초부터 알았다. (...)그 감각은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그리고 선명한 기억 중 하나다."(35쪽)표지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엘리엇 페이지의 표정이 정말 편안하고 자세도 당당해 보인다. 엘렌 페이지 시절 어딘가 의기소침해보이고 소심했던 긴 머리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다. 이 책은 엘리엇 페이지의 삶을 이리저리 기술해놓는다. 시간 흐름도 따르지 않고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연기하던 시절 이야기를 한다. 이 또한 "퀴어한" 것이리라. 아주 어린 시절부터 왜 스스로가 '소년'이나 '남자'가 아닌지에 의문을 갖던 존재는 커서 레즈비언이 되고 트랜스남성이 된다.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기까지 부단히도 많은 좌충우돌과 고민, 방황, 노력들이 책에 담겨있다.스스로가 느끼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부정당하고 혐오 발언을 듣고 스스로를 숨기고 또 숨겨야만 하는 삶을 살며 견디고 버티다가 자신을 드러낸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고 순탄치 않지만 참 멋있다.특히 매순간 사랑과 감정에 솔직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난 연애 얘기와 가정사를 이렇게 책으로 다 써내는 용기도 대단하다. 연기를 하는 원동력이 그런 것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다.그냥 한 사람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그가 트랜스여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만으로도,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는 세상이 좀더 많은 이들에게 상냥해지기를 바라고있다.*서평단으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함
백억원 상당의 금괴가 할머니 고향집에 묻혀있다는 말에 솔깃해진 남매! 브로커를 찾아서 평양에 들어가는데...!!아무리 돈이 좋아도 목숨 걸고 월북까지 하겠냐마는, 평양에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이 남아있겠냐마는, 소설 속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남매의 우당탕탕 금괴 찾으러 평양까지"가 주된 스토리 같지만, 의외로(?) 삼지연관현악단 가수 '리손향'의 시점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소설 속에는 2018년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이나 판문점으로 넘어간 미군 병사 같이 실제 있었던 일을 담겨있어서 소설의 현장감을 더하는데, 남한에 와서 공연했던 가수 중 하나가 바로 또다른 주인공이다. "원수님의 사랑의 축복을 받은 인민의 행복 끝없네"(61쪽)라는 노래를 부르며 남조선 사람들이 북조선을 부러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북한 세력가 집안이던 손향은 잘나가던 집안이 한순간에 풍비박산나는 것을 겪으며 "세상 모든 별과 바람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겠지만, 결국 내가 저물 땐 그들도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그 동무는 모르는가 보다) 태양(김씨일가) 앞에선 그것들도 아무것도 아닌데."(200쪽)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특히 감탄했던 것은 월북/탈북 과정인데, 탈북민들 수기나 영상, 인터뷰로 들었던 북한의 모습을 꽤나 생생하게 그려냈다. 물론 현실은 소설 속 묘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봉건지주와 노비 계급이 있던 시기에 '자유'와 '평등'을 외치던 것은 공산당이었다는 역사가 참 아이러니하다.지주와 노비 가문 사이 피 맺힌 원한이 후손들 사이에서 서로를 구하고 돕는 식으로 연대하는 엔딩이 인상적이다. 나중에 가문간의 비화를 알게 되더라도 서로 목숨을 구해준 사이니 서로 의지하며 살지 않을까. 남북으로 갈라져 이런저런 과거들이 있지만 한민족이란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작가의 생각이 담긴 듯 했다.허무맹랑할지 모르는 소설 속 이야기 속에 우리의 역사와 현재를 담은 책이었다.#평양골드러시 #고호 #델피노출판사 #지원도서
오랫동안 들고 다니며 어떻게 이 소설을 말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탱크'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신 없는 시대의 종교' 이야기를 할까. 그 공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언니와 삶을 방어하듯이 사는 동생, 자매의 이야기를 해야할까. '마테라'로 이어진 둡둡과 양우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나 성정체성을 인정받고 싶던 둡둡의 기도가 끝내 이뤄진 것 같은 엔딩을 이야기하고 싶기도 하다.각각이 하나의 소설로 다뤄져도 좋을만큼 의미심장한데 그게 잘 연결되어 안정감있게 이 소설 《탱크》를 구성한다. 269쪽의 그리 두껍지 않은 소설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사연과 생각들이 다 어딘가 마음이 가는 구석들이 있었다.이야기에서나마 결말을 얻고싶었던 둡둡에서도, 너무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는 양우에게서도, 믿음을 의심하고 방어하는 것이 삶의 습관인 부경에게서도 나의 일부분을 보게 된다. 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가 인물을 통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소설은 꽤 많은 나를 들여다보게 만든다.유명한 자기계발서 론다 번의《시크릿》을 떠올리게 하는 '탱크'에 대한 믿음은 나 역시도 혹하게 만들었다. 속는 셈 치고서라도 가보게 되지 않을까. 간절함이 부족해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나 듣겠지만 말이다.우리에겐 '탱크'가 필요하다.그 공간이 아니라 '믿음' 그 자체. 믿음과 희망, 그리고 그걸 지지해주고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늘 그랬듯 모든 미래는 빠짐없이 과거가 된다는 사실을 믿으며 그 회망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쓴다.(204쪽)#탱크#김희재#탱크단#한겨레문학상#한겨레출판#지원도서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시나리오 작가 애덤과 유기동물 구조센터에서 일하는 어밀리아의 결혼생활은 위태롭다. 상담사의 조언에 따라 여행을 떠난 둘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스코틀랜드 외진 예배당에서 묵게 되는데...!애덤과 어밀리아의 시점, 그리고 매 결혼기념일마다 남겨놓은 비밀편지가 번갈아가며 스토리를 진행한다. 일종의 서술트릭인데 각 시점이 짧게 구성되어 끊어 읽기 편했다. 망해가는 결혼생활이나 인생에 대한 문장들이 좋았던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라 이유가 없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이다. 누구나 그렇다. 아닌척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19쪽)🔖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지만 슬프게도 내 아내를 매혹하는 방법은 잊어버렸다.(23쪽)애덤과 어밀리아 시선에서 각각 다르게 서술되는 이야기는 '기억은 주관적'이라는 최근 읽은 #예감은틀리지않는다 를 떠올리게 한다.🔖때로 거짓말은 남에게든 나에게든 가장 친절한 진실이다.(370쪽)나는 추리를 못한다. 추리소설을 잘 안봐서 그런가.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얘가 걔를 죽였나?? 아님 죽일건가??? 몇번이고 헛다리를 짚었다. 그게 스릴러를 읽는 재미지 싶다. 너무 쉽게 예상 가능해도 재미가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꼬아놔도 흥이 식는다.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꽤 잘 쓰여진 셈이다. 펼치면 순식간에 나를 눈 속에 파묻힌, 스코틀랜드 예배당으로 더려다놨다.넷플릭스 영상화를 앞두고 있다고 했는데 이 책의 반전을 영상 속에서 극적으로 어떻게 드러낼지ㅡ 내가 떠올린 것처럼일지 기대된다.#가위바위보 #밝은세상 #엘리스피니#이민희옮김 #출판사지원도서
"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이렇게 강렬하게, 한 문장으로 소설 전체의 서사가 궁금해지게 만들다니 작가들이 첫 문장에 고심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서평단 제공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가벼운 내용이 아닌데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슉슉 페이지가 넘어가서 금세 읽었다. 카지노에서 태어나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 하늘이는 병원도 학교도 갈 수 없는 '그림자 아이'다. 전당포에서 새로 만난 가족, 할머니와 엄마, 삼촌과 살면서 카지노와 전당포 거리가 보여주는 세상을 배우고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성장해나간다."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어른들의 희망이자 미래"인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면 세상은 얼마나 부조리한가.아이가 화자인 소설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기도 한 것 같다. 편견이 없는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한다.전당포의 할머니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들, 각각의 사연들이 생생하게 구현되어 있다. 각 캐릭터들이 현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표현되고 나름의 개연성을 갖고 있다. 각 캐릭터가 보여주는 인간성의 단편들이 흥미롭게 느껴진다.배경이나 사건들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소설 특유의 탄탄함인 것일까. 한 아이를 둘러싼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카지노를 중심에 둔 도시의 이야기기도 하고, 사람의 욕망 같은 마음의 이야기기도 하면서 정치와도 떼어놓을 수 없기도 하다. 개인적인 것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어찌보면 뻔할지도 모르는 '출생의 비밀'이나 작위적일 수 있는 '무당의 예언' 같은 얘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개인적으로는 수미상관의 구성이 좋았다.할머니가 해준 말에 대하여 사건들을 겪고 성장한 하늘이가 의미를 찾은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