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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내가 이 작품, <거울 속 외딴 성>의 존재를 알고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2018년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이기 때문이다.
서점대상은 여타 문학상과는 근본 취지가 다르다. 2004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 15회째 열린 서점대상은 애초에 출판 업계의 부흥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매장에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것'이 설립 경위라고 한다. 이 상의 심사위원도 저명한 작가나 문학계 유명 인사가 아닌, 평범한 서점 직원들이며 현장에서 책을 판매하는 그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상이다. 재미있고, 고객에게 추천해주고 싶고, 서점에서 팔고 싶은 책을 서점 직원들이 직접 읽어보고 투표하는 이 시스템은 어쩌면 다른 문학상에 비해 훨씬 더 합리적이며 실리적인 방식이다.
<거울 속 외딴 성>은 이런 서점대상에서 651점이라는 놀라운 점수를 획득했다. 2위 283.5점의 책과 무려 367.5점이나 차이가 났는데 1위 최고점일 뿐만 아니라 2위와의 점수 차까지 이 시상식 사상 최초의 기록이란다.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역대 최고 점수를 경신하기까지 했으며 무슨 내용이기에 2위와의 점수 차가 그리도 많이 난 건지, 당연하게도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16년 서점대상 1위 도서 미야시타 나츠의 <양과 강철의 숲>과 2017년 서점대상 1위 도서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을 모두 소장하고 있고 이 두 소설의 작품성을 알고 있기에 1위 수상작의 가치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던 거다.
저자 츠지무라 미즈키의 책은 <거울 속 외딴 성>으로 처음 접했고, 솔직히 말하면 이런 작가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야 알았다. 2004년 데뷔작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로 메피스토상을, <츠나구>로는 요시카와 에이지 신인문학상을, <열쇠 없는 꿈을 꾸다>로 나오키상까지 받았었다니. 왜 이제야 알았을까. 2017년 작품이자 2018년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이며 이번 서평 도서이기도 한 <거울 속 외딴 성>이 그녀의 대표작으로 칭송받고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알아가면 될 일이다. 충분히 더 알고 싶어지는 작가니까.
<거울 속 외딴 성>은 크게 총 3부로 나뉘어 있는데 이는 일본 중학교의 학기제가 3학기인 트라이메스터제라서다. 우리와는 학기제가 다르고 -우리나라는 2학기인 시메스터제를 시행 중이다- 일본 학기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므로 미리 알고 읽으면 더 좋을 듯하다. 4월부터 8월까지가 1학기이자 제1부, 9월부터 12월까지가 2학기이자 제2부, 1월부터 3월까지가 3학기이자 제3부이며 1부에 포함되었어야 할 4월은 등장인물들이 각각의 사연으로 인해 학교를 다니지 않게 된 시기여서 한 달의 공백이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중학교 1학년 신입생 여자아이, 안자이 고코로. 1부는 고코로 -'고코로'는 일본어로 '마음'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주인공의 이름도 히라가나로 こころ다- 의 내면 심리에 대한 서술이 주를 이루며 고코로가 학교를 거부하게 된 이유, 친구로 여겼던 전학생 모에와의 엇갈림, 미오리 무리에게 받은 고통, 등교 거부아 대상 대안학교 격인 '스쿨' 소속 기타지마 선생님과의 만남, 늑대 가면을 쓴 소녀에게 선택받아 거울 속 성에 불려가게 된 상황, 자신과 같은 처지인 '학교에 안 가는' 아이들과의 만남이 전개된다.
거울 속 외딴 성, 그곳에 간 고코로는 늑대님에게 열쇠를 찾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곳의 규칙 -단 한 명 만이 '소원의 방' 열쇠를 찾아 소원을 이룰 수 있으며, 만약 누군가가 소원을 이루면 성은 즉시 폐쇄되고 모두의 기억은 사라진다- 과 주의사항 -기간은 내년 3월 30일까지이며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성이 열리고 그 이후에는 늑대에게 잡아먹힌다- 을 전달받는다. 중3인 아키와 스바루, 중2인 후카와 마사무네, 중1이고 고코로와 동갑인 리온과 우레시노. 각각의 사연이 있는 이 여섯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고코로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고 이 성에서의 추억과 친구 관계 또한 잃고 싶지 않게 된다. 다른 아이들도 고코로와 마찬가지여서, 서로 아웅다웅 싸우거나 눈치 보고 경쟁하며 '소원 열쇠 찾기'에만 열중할 줄 알았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평범한 일상처럼 건전하고 바람직하게.
지루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책장이 빨리 넘어가지도 않는 1부였다. 다만, 고코로의 내면 심리를 충분히 이해했고 공감을 했고 안타까웠다. 츠지무라 미즈키는 청소년기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학창시절 본인의 경험이 분명 녹아있을 거란 짐작이 간다. 이런 내면 묘사는 억지로 꾸며서 쓰면 읽는 사람에게 작위적으로 느껴질 소지가 충분한데 그런 거부감이 전혀 없었고 읽으면 읽는 그대로 와닿았다. 이것만으로도 저자의 필력을 체감하기에 충분했다.
일곱 아이가 상황 파악을 시작한 2부와 모든 진실과 반전이 밝혀지는 3부는 자세하게 적으면 스포일러가 될 만한 요소가 가득하기에, 그런 부분을 최대한 쳐내 가면서 서평을 쓰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틈틈이 기록한 노트에는 '본격적으로 흥미진진해지는 전개는 275페이지부터'라고 적혀있다. 정말이지 이때부터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아진다. 지루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몹시 흥미로운 나머지 안 읽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였다. 아키가 다니는 중학교의 교복을 입고 성에 오고부터다.
나는 295페이지 즈음, '거울의 비밀'을 눈치챘다. 마사무네의 입을 빌려 주장을 펼친 저자의 맥거핀 장치 때문에 약간의 혼동은 있었지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373페이지 즈음, '기타지마 선생님'에 대한 소름 끼치는 추측을 해버렸다. 기록 노트를 다시 살펴보고 소름이 다 돋았다. 그 당시에는 엉뚱한 추리였지만 결국 그게 들어맞았다. 385페이지 즈음, '늑대님의 정체'를 눈치챘다. 스포일러 때문에 이렇게밖에 표현 못 하는 게 안타깝고 답답하지만, 아직 읽기 전 이 서평을 먼저 접한 사람들이 스포일러를 밟고 실망하게 하고 싶지는 않기에 최대한 다듬고 다듬어서 그들이 김새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내 기준, 반전이 반전 같지 않고 다 미리 다 유추해버린 바람에, 추리 서스펜스적 요소를 기대하고 볼 사람에게는 아쉬운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아이들의 성장 소설이다.
물론 <거울 속 외딴 성>은 표면적으로는 학교 부적응 중학생들의 성장 이야기지만, 더 넓게 보면 사회 속 군중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민하는, 나약한 우리, 모든 이들에게 작가가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었다고, 몸이 다 자랐다고 해서 마음이 그와 같은 속도로 자라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아픔이 있고 그 아픔은 남들이 전부 이해해줄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며, 나에게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위로를 받고 싶은 거다.
괜찮다. 잘할 수 있다. 어디든 갈 수 있다. 게다가 어디를 간다한들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을 리 없다. 싫은 사람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싸우는 것이 싫다면 싸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돌아가 보자고 생각했다.
학교로.
<거울 속 외딴 성>은 그저 읽은 후 만족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고 싶고 권하고 싶을 만큼 좋은 책이며, 서점대상의 취지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책이다. 읽으면 위안이 된다. 위로받고 싶을 때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라면서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 권장 도서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번역서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초판 1쇄 곳곳에서 발견한 오자와 오역이 꽤 심각하다. 고코로를 '코로토'라고 잘못 친 오자는 애교 수준이다. 601 페이지 우레시노와 후카의 '일 년'은 명백한 오역이다. 동화 제목 《헨젤과 그레텔》은 처음부터 끝까지 '헨델'과 그레텔이라고 나온다.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작곡가 헨델이 타임머신을 타고 동화 속으로 들어가서 그레텔과 함께 빵 부스러기를 뿌리고 다닌 걸까. 그러고 보니, 메시아를 틀어놓고 거울 속 외딴 성을 읽으면 딱일 것 같긴 하다. 책에 묘사된 성 내부 이미지와도 꽤나 잘 어울리고. 어쨌거나 초반까지는 오자겠지 하고 넘겼는데 막판까지 '헨델'과 그레텔이라고 나오니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헨젤을 헨델로 잘못 알고 있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레텔의 친오빠 '헨젤'은 이 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독일어 원어로 이고 일본어로는 ヘンゼル이니 어떻게 읽어도 '헨델'이 아니라, '헨젤'인데 말이다. 역주에도 오류가 있다. 패미컴은 닌텐도사에서 개발한 '비디오 게임기'의 약칭이다. 일본은 특히나 명칭 줄여 쓰기를 잘하기 때문에 패밀리 컴퓨터를 패미컴이라고 줄이지만, 이건 컴퓨터가 아니다. 역자가 이걸 컴퓨터라고 주석을 달아서 어리둥절했다.
그 외에도 중간중간 문맥적으로 매끄럽지 못한 문장이나 탈자, 띄어쓰기 오류가 종종 눈에 밟혔으나, 전반적으로는 책 읽기 불편할 정도의 거슬림은 아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래도 이 좋은 작품을 이렇게 밖에 편집을 못한 건가 하는 아쉬움은 분명 남는다. 출판 전에 많이 급했던 걸까. 작년 5월경 일본에서 출판된 소설이고 서점대상 결과 발표도 올해 4월경인데 뭐가 그리 급했기에 수많은 오자와 탈자와 오역이 가득한 것인지. 종이책 초판 1쇄는 나에게 늘 소장할 가치가 있는 판본이지만, 이런 문제가 있다면 어서 모든 오류가 수정된 다음 쇄가 나오길 바랄 수밖에. 나는 서평을 위해 찬찬히 훑고 정독했고, 단어 토씨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몇 시간씩 집중해 3일 동안 완독했는데 단 며칠간의 교정·교열이 어려운 일이었는지 출판사에 물어보고 싶을 뿐이다. 출판 이후 재수정을 거치는 게 더 골치 아프고 번거로우며 비용도 많이 발생하지 않을까? 그리고 아무리 서평용으로 증정하는 도서라지만, 파본급 내지의 찢김도 아쉬운 부분이다. 만약 활자 부분까지 찢겨져 있었다면 당장에 교환 요청을 했을 거다. 종이 질은 우수하나 책장에 얼룩 자국 같은 것도 눈에 띄었고 인쇄용 표시인 듯한 숫자도 실 제본 부위에서 발견되었다. 구매 전에 한 장씩 직접 다 펼쳐서 살펴볼 수 없다면 이런 책이 얻어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 철저한 책 상태 검수가 필요해 보인다.
이것이 별점 하나를 뺀 이유다.
어쨌거나 교정·교열이나 파본 문제가 아쉽다고 할지라도, 책 외형만큼은 칭찬을 해주고 싶다. 양장본 자체가 아주 견고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거울 속 외딴 성> 종이책을 받은 첫 소감은 '튼튼하다'였다. 비닐봉투에 아무런 완충재도 없이 책 한 권만 달랑 들어있었는데도 모서리에 조금의 찌그러짐조차 없어서 의외였고 신기했다. 완충 처리된 안전 봉투에 싸여 오는 책들조차 모서리가 늘 찌그러져서 교환을 받곤 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아 그만큼 양장 재질이 단단하다는 걸 몸소 증명해주었다. 양장본 제본과 만듦새는 근래 접한 양장본 중에 제일 만족스러웠다. 깨진 거울 조각 느낌이 나는 책 제목 문자도 독특하고 홀로그램 박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책과 잘 어울리는 디자인의 소장본이라고 인식하게 되니 책에 더더욱 애착이 생겼다.
작품 자체도 더할 나위 없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앞서 지적한 번역서의 하자만 아니라면 아무런 아쉬움도 없이, 충만한 만족감만 드는 책이리라. 모든 오류가 해결이 되면 주변에 꼭 추천하거나 선물을 해주고 싶다. 이 책이 왜, 현장에서 직접 책을 판매하는 일본 서점 직원들에게 역대 최고점까지 받고 2위와 엄청난 점수 차로 서점대상 1위에 선정이 되었는지 이제는 안다. 처음에 들었던 궁금증이 싹 해소될 만큼, <거울 속 외딴 성>을 다 읽고 나니 무조건 납득이 갔다.
착한 내용과 기분 좋은 마무리로 정서적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책일수록,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서평을 쓰기가 쉽지 않다. 나에게는 이 책이 그러했다. 무엇으로 서두를 놓고 내용을 채워야 할지 막막해 완독 후 며칠간 서평 쓰기를 주저했었다. 지금도 의식의 흐름대로 타이핑을 하고는 있지만, 평소의 서평과는 다른 전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마냥 좋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여운을 조금 더 만끽하고 싶은 탓인지. 명확하고 적합하게 정의 내리긴 어렵지만, 하나는 확신한다.
<거울 속 외딴 성>을 꼭 읽어야 할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고도 많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수미상관법을 활용하여 여운을 극대화한 플롯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런 꿈을 꿀 때가 있다.
전학생이 다가온다.
그 아이는 뭐든 못하는 게 없는 멋진 아이.
반에서 가장 명랑하고 인정 많고 운동도 잘하고 게다가 공부도 잘한다. 다들 그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아이는 많은 아이들 중에 내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얼굴에 해님같이 눈부시고 따사로운 웃음을 두둥실 떠올리며 나에게 다가와 "고코로, 오랜만이야!" 하고 인사한다.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모두 숨을 삼키는 가운데 "이렇게 다시 만나네. 그치?" 하고 나를 마주 보고서 눈을 깜빡인다.
모두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는 벌써 친구.
나는 운동도 잘 못하고, 공부도 잘 못하고, 특별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장점이 하나도 없는데도, 어쩌다가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그 아이와 알고 지냈다는 인연 하나만으로 반에서 그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로 선택받는다.
그래서 화장실에 갈 때도, 교실에서 교실로 이동할 때도, 쉬는 시간에도,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다.
미오리네 그룹이 그 아이와 아무리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해도 그 아이는 "나는 고코로랑 있을 거야.'라고 나를 선택해준다.
그런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고 고코로는 생각한다.
그런 기적이 일어날 리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담담하게 들려서 더 서글프고 마음 아팠던 고코로의 바람.
고코로가 꾼 꿈, 바라던 기적은. 결국, 일어났다.
예를 들어…….
예를 들어 꿈을 꿀 때가 있다.
전학생이 다가온다.
그 아이는 많은 반 아이들 중에 내가 있는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그 얼굴에 해님같이 눈부시고 다정한 웃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안녕."
그가 고코로를 향해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고코로에게 기적을 선사한 '그 아이'가 누구인지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