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강아지의 시간
보스턴 테란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며 행복과 기쁨이 되어주는 생명체,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다. 




#인간의 오랜 친구


나는 몇 해 전 막내처럼 예뻐하던 강아지를 잃었다. 죽음 직전에서 힘겨워 하던, 생의 마지막이 코앞에 닥친 순간에도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내가 먼저 포기하고 내가 먼저 그 줄을 놓아버리고 숨이 멎을 때에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이 아직도 뼛속 깊이 후회스럽고, 문득문득 눈앞에 아른거리는 찰나의 순간들에 그러지 않으려 해도 눈물샘이 절로 열리고 만다. 이런 센티멘털한 감정을 유지한 채로 책을 받아 보았다. 북커버가 예뻐서 여전히 슬펐다. 인간과 개의 교감이 한껏 느껴지는 책 표지를 한참 바라보다가 읽기 시작했다. 



#어떤 강아지의 시간은?


필명으로만 활동하는 작가 보스턴 테란이 쓴 <어떤 강아지의 시간>은 미국에서 2009년에 출간한 작품인데 10년이란 세월을 건너 뛰고 왜 이제야 한국에 들여온 건지 궁금해 해외 웹을 찾아보았더니, 그의 대리자가 만든 공식 사이트에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보스턴 테란은 주로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로 일본에 이미 몇 권의 책이 번역서로 나왔고 이 작품도 2017년 출간 이후로 꽤 반응이 좋았던 듯하다. 한국판이 뒤늦게 나온 이유도 아마 옆 나라 반응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보스턴 테란이 <어떤 강아지의 시간>을 쓰게 된 동기는 우연과도 같은 운명이었다. 미국의 역사적 이슈에도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미국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과 강아지는 어느 날 작가가 우연히 보게 된 로드킬 사고와 연관이 있다. 퇴역 군인으로 보이는 남자의 차에 개가 치이는 것을 목격한 보스턴 테란은 부상 입은 개를 남자의 차에 옮기는 일을 도우면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 공식 사이트의 소개 글이다. 나는 책을 다 읽은 뒤 이 정보를 습득했는데 소설 속 내용이 실화가 아님에도 너무나도 사실적이라는 기분이 들었던 점은 역시 그의 경험담이 녹아들었기 때문이겠지. 


<어떤 강아지의 시간>은 독특하게도 줄거리가 이미 프롤로그에 대부분 다 노출되어 있다. 첫 페이지를 펼쳐 프롤로그만 읽어도 전반적인 내용 파악이 다 되는 거다. 작가는 이런 방식의 배치로 무엇을 말하고자 한 걸까. 소설 전체가 액자식 구성인 이 작품은 이라크 폭격에 부대원을 대부분 잃고 혼자 멀쩡하게 살아남은 채 제대한 해병대 병장 출신 딘 히콕이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쓴 소설이라는 콘셉트로 늙은 개의 마지막 여정과 2세의 탄생, 같은 이름을 지닌 아들 강아지의 험난한 모험을 다루고 있다. 개들의 이름은 GIV, 기브다. 


강아지 기브가 주인공이면서도, 주로 사람들의 이야기 위주로 전개되기에 <어떤 강아지의 시간>을 동물 소설 정도로만 단정 짓기에는 여타 동물을 주제로 쓴 작품과는 그 결이 다르다. 이 책은 영적인 이야기, 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운명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또한 여러 등장인물은 각자 역할에 맞게 설정된 자들이다. 아무런 의미 없이 겪는 고통은 없다. 우연과 필연이 얽히고설켜 운명은 만들어진다.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고 뇌 손상에 의해 개와 비슷한 후각 능력이 생긴 여자, 아버지에게 폭력과 위해를 당한 카인과 아벨의 현신 같은 형제, 홍수 속에서 고양이를 구하다가 죽음을 맞은 선한 소녀, 전쟁터에서 혼자 멀쩡하게 살아남아 자살을 생각하는 남자. 애나 페레나, 이언, 루시 루스, 딘 히콕. 이들이 기브와 운명적으로 만나 교감을 나누고 때론 위기를 겪으며 이야기가 펼쳐짐과 동시에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9/11 테러, 이라크 전쟁 파병, 허리케인 카트리나, 뉴올리언스 홍수, 캘리포니아 산불 이슈가 다뤄진다. 게다가 미국 각지의 지명이 자주 등장을 하는데 강아지 이름 '기브'도 미국의 지명과 관련이 있었다. 이처럼 미국의 역사와 미국의 각 지역 서술은 보스턴 테란이 의도하고 쓴 것으로 보인다.  



#계몽적이고도 교훈적인 이야기


<어떤 강아지의 시간>을 읽으면서 자주 했던 생각인데 강아지 기브의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느껴졌다는 거다. 이는 번역서 제목 어떤 강아지의 시간으로만 놓고 보자면 생뚱맞은 이야기일지도 모르나 이 소설 원서의 원제를  살펴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Giv: The Story of a Dog and America 


저자는 이 소설에서 기브라는 강아지의 여정을 통해 사람, 지역, 역사적 사건. 그러니까 '미국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거다. 그리고 반항심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는데 순수한 반항심이 미국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보스턴 테란은 주장한다. 기브는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 배신과 가해의 상처에도 변함없이 선한 마음씨를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이며 각종 테러와 파병 재난에 의해 상처받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인간의 오랜 친구' 대표였다. 그래서 미국인이 아닌 우리의 정서에는 마치 '인디펜던스 데이' 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무비에서 느껴지는 미국식 내셔널리즘에 대한 정서적 위화감을 조금은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미국을, 미국에 의해, 미국을 위해 쓴 소설이라는 게 내 감상이다. 



#떠나보내며


어쨌거나 <어떤 강아지의 시간>은 동물을 좋아하고 강아지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읽고 싶을 만한 책이고, 또 읽으면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내가 그랬으니까.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작은 요크셔테리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그로부터 1년여의 시간을 견디다 말티즈를 새로운 가족으로 만났다. 마냥 해맑게 퐁퐁 뛰어다니는 지금의 막내도 정말 사랑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작던 몸이, 촉촉하고 순하던 눈동자가 여전히 눈에 밟힌다. 따라서 이걸 읽고 느낀 여러 감정을 차곡차곡 정리한 다음, 무지개다리 건너편 천국에서 쉬고 있을 내 어여쁜 강아지의 보금자리 한편에다 고이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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